2022.05.24(화)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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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나이를 초월해 나처럼 폭넓게 친구를 사귀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앞서 말한 친구는 춘추시대 고사에 나오는 관중과 포숙아와 같은 우정을 말하는 것이고 나중의 친구는 사업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부담없이 만나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후자는 친구라기보다는 동호인이라는 말이 더 적당하지만 나이를 떠나 나처럼 부담없이 사람을 사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골프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그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항상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 말한다. 나이가 양반이란 말도 있지만 나는 '나이'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사업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진취적인 생각을 때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사업을 하고 있기에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으나 그러지 않는 것은 우정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관청이나 검찰 등 이른바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가까이 하려 애쓴다. 그들과 나쁘게 지내는 것보다 좋게 지내는 것이 낫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사업을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저자세로 나가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사업가는 그보다 많은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데는 공무원들 못지 않게 사업가나 근로자들의 피땀이 서려 있는 게 사실이다.
원칙을 갖고 사업을 하면 누구에게나 당당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업가나 기업인들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존경의 대상으로 추앙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재벌 형성 과정에서 부도덕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업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철저히 원칙을 지키면서 성공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공무원이나 권력계층의 사람들과 늘 불편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를 한 사람의 좋은 사업가로 인정해주면 나도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살아왔다.
우리 지역을 위해 일했던 어떤 관료가 어려움에 처하자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지만 나 혼자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위해 옹호했던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1980년대 서슬이 퍼랬던 군사독재 정권시절의 얘기다.
나는 가끔 사람들로부터 성공의 비결을 질문 받고 한다. 그때마다 한결 같이 하는 얘기는 원칙을 지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나의 생존을 위한 법칙이었다.
사실 나는 부모가 많이 배웠다거나 기업을 하는 명문가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나 스스로를 괴롭혔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부모 잘 만나 좋은 학교에 가고 그런 좋은 학연으로 세상을 비교적 쉽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비빌 언덕도 없고 학연도 없다. 그래서 늘 정직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몰매를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긴장하며 살았다. 오죽했으면 '구일회'라는 모임의 좌우명에 새겼을 것인가. '구일회'는 1991년에 결성된 사사로운 골프모임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멤버들이 바뀌었지만 정신은 그대로다. '명문집안·명문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사기를 치지 않으며 어떤 시련과 도전도 극복하면서 정직하게 살아간다.' 는 내용이다.
잠깐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나에게도 정말 좋은 친구들이 몇 사람 있다. 한 사람은 집안 동생이자 친구인 마삼렬 전 광주문화방송사장이고 또 한 사람은 삼렬이 때문에 만난 최승호 전 광주일보 사장이다. 두 사람은 이 지역에서 존경받고 있는 언론인이다. 마삼렬 전 사장은 70년 넘게 같이 살아가고 있고 최사장도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으니 50년 세월을 함께 한 죽마고우인 셈이다.
삼렬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훗날 훌륭한 언론인이 되었다. 광주일보 전신인 전남일보 편집국장과 전일방송국장을 거쳐 광주문화방송 사장을 지냈는데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매우 공부를 잘했다. 70평생을 함께 살아온 터라 지금까지도 자잘한 일을 협의하며 형제이자 친구로써 정을 나누고 있다.
최승호 사장도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학창시절을 지냈으나 일찍이 언론계에 투신해 명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고교시절 의형제를 맺었던 최규종, 손을진 등도 있으나 모두 고인이 되었고 오시율만 남았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한 사람씩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 또한 인생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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