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림 (주)리얼프로텍 대표이사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안전지대라 여겼던 사무직, 기획, 마케팅 분야까지 위협하며 빠르게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효율’을 명분으로 수만 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있으며, AI가 수행 가능한 업무는 대체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수많은 청년이 채용 공고에 매달리며 마음을 졸인다. AI는 가뜩이나 좁은 취업 문을 더욱 좁히며, 청년들을 ‘불안’으로 내몰고 있다. 그들이 잃어가는 것은 단지 일자리만이 아니다. 자신감과 미래, 그리고 사회적 존재감까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삼국지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흔히 인재를 얻기 위한 유비의 지극한 정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제갈공명의 치밀한 기획이 숨어 있다. 그는 초가에 은둔해 있는 듯 보였지만, 실은 벗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존재와 능력, 그리고 비전을 전략적으로 노출했다.

유비가 두 번이나 헛걸음하고 돌아간 과정조차 우연이 아니었다. 공명은 그 시간마저 자신의 희소성을 높이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심리전으로 활용했다. 결국, 유비가 그를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삼고(三顧)’가 유비의 간절한 노력의 결과라면, 그 발길을 유도한 것은 공명의 ‘치고(致顧)’, 즉 찾아오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AI 시대, 우리가 1800년 전 공명으로부터 배우는 ‘치고’의 지혜는 무엇일까? 당시의 제갈공명은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청년 백수’에 불과했다. 시대는 난세로 자칭 인재들이 차고 넘쳤다. 그가 당대 최고의 CEO인 유비를 융중(隆中)의 초가로 세 번이나 찾아오게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철저하게 계산된 ‘자기 증명’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치밀한 ‘평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는 사마휘, 서서, 최주평 등 당대 여론을 주도하는 인플루언서들과 벗하며 교류했다. 서서가 유비에게 공명을 추천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공명이 의도한 ‘평판 알고리즘’이 작동한 결과였다. 이는 오늘날 AI 도구를 활용한 추천 채용방식과 본질을 같이한다. 나를 증명해 줄 신뢰할 만한 ‘레퍼런스’를 확보한 것이다.

둘째, 철저한 ‘가치 심리전’을 구사했다. 유비가 찾아왔을 때 그는 일부러 자리를 비우거나, 낮잠을 자며 상대를 기다리게 했다. 이는 무례함이 아니라, 자신을 ‘아무나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인재’로 각인시키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포지셔닝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한 것이다.

셋째, 압도적인 ‘콘텐츠‘였다. 우여곡절 끝에 유비를 만난 자리, 그는 “저를 채용해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상투적인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대신 천하의 판도를 읽고 구체적인 해법을 담은 ‘천하삼분지계’라는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유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 것이다.

기업은 ‘열심히 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을 더 갈구한다.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이력서가 아닌 ‘혁신적인 사업 계획서’를 내민 것이다.

제갈량의 트레이드마크인 깃털 부채, ‘학우선(鶴羽扇)’은 마법의 지팡이는 아니다. 그것은 전장의 흐름을 읽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도구이자,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는 강력한 ‘퍼스널 브랜딩’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취준생들에게 AI는 제갈공명의 ‘학우선’과 같다. AI가 취업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의 흐름을 읽게 하고, 남들보다 한발 앞선 해결책을 설계하도록 돕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스펙이 다가 아니다. 변화를 배우는 속도,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치고(致顧)’의 전략이 필요하다.

“바람은 하늘이 내리지만, 그 바람을 유리하게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AI라는 학우선을 손에 쥐고, 기회의 바람을 읽어내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공명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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