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9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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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정가춘추] 정치꾼과 정치가의 차이
김진수
본사 서울취재본부장

  • 입력날짜 : 2016. 11.29. 19:54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치권 일정과 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날 담화와 관련 여야 정치권은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온 ‘박근혜 퇴진’ 목소리가 결국 박 대통령으로부터 “물러나겠다”는 선언을 받아낸 원동력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의 5천년 역사 중 평범한 서민대중들이 왕이나 대통령 같은 권력자에게 ‘맞장 뜬’ 사례는 얼마나 될까?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진성여왕시대 때 농민들이 중앙정부와 지방 토호세력에 저항하며 일어난 ‘원종 애노의 난’(서기 889년)이란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고려시대에는 ‘묘청의 난’(1135년)이 발생했다. 이 난은 승려 묘청 일파가 음양도참설에 의거해 당시의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자는 천도운동을 전개하다 실패하자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고려 명종 때는 억압된 신분제 타파를 목적으로 충청도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망이 망소이의 난’(1176년)으로 불리는 이 민란은 공주 명학소를 중심으로 발생해 ‘공주 명학소의 난’으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명종 때인 1193년에는 경상북도 청도의 김사미, 울산의 효심이 연합해 일으킨 ‘김사미 효심의 난’이란 농민봉기가 발생했다. 5년 뒤인 고려 신종 때는 ‘만적의 난’(1198년)이 일어났다. 이 난은 노비 출신인 만적이 중심이 돼 일으키려다 미수에 그친 노비해방운동이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1811년)과 전라도에서 전봉준을 지도자로 내세운 동학농민운동(1862년)이 대표적인 농민봉기로 꼽을 수 있다. 녹두장군으로 잘 알려진 전봉준은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민중의 지도자란 이미지로 오늘날까지 각인돼 있다.

어쨌거나, 각 시대를 거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가슴 아프게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상 권력자에게 맞선 민중봉기는 모두 실패했다. 그 결과 저항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조리 참수되거나 사지가 절단되는 등의 극형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역사적 민중봉기 모조리 실패



그만큼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천부적이다.

자신의 힘이 부족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외세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동학혁명을 제압하기 위해 명성황후가 청나라를 불렀으며, 친일파는 또 일제를 끌어들였다.

통한의 5·18 민중항쟁(1980년)도 전두환을 필두로 한 정치군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그러고 보면, 한반도에서 민중이 최고권력자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최초의 시민혁명은 4·19였다. 하지만 4·19혁명(1960년)의 성공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혁명의 결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민주정부가 수립됐으나, 1년 뒤인 1961년 일본장교 출신의 다카기 마사오, 즉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로 막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기간인 1970년대에도 민중의 저항은 이어졌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970년 11월13일 발생한 대구 출신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이다. 그는 유서에서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했다. 전태일의 분신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큰 줄기를 이루는 노동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청계피복노조투쟁(1971-79), 반도상사 노조운동(1974), 제일제당 노조투쟁(1977), 동일방직 노조투쟁(1976-79), 방림방적 권익투쟁(1977), 남영나일론 임금투쟁(1977), 해태제과 혹사 반대투쟁(1979), YH무역 폐업반대투쟁(1979) 등 이루 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이다.

두 번째로 성공한 시민혁명은 1987년의 6월항쟁이다. 6월항쟁은 운동권 출신 대학생들뿐 아니라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일반 계층과 정치지도자가 혼연일체가 돼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한 승리였다. 하지만, 이 승리 또한 6·29선언이란 군부집권세력의 전략적 후퇴와 당시 민주진영의 유력 지도자였던 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승리해도 민주진영 분열하면 ‘낭패’



박 대통령의 3차 담화에도 불구하고 광주 금남로를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타오르는 ‘촛불 민심’은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현재 진행형인 이 항쟁은 연인원 수천만명을 넘어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구나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남녀노소, 일반 가족단위 참가자 등, ‘피’(Blood)가 없는 하나의 축제로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찰 정도이다. 후세사가들은 아마도 2016년 11월에 일어난 우리의 항쟁을 한민족 5천년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명예혁명이라고 기록할 지도 모르겠다.

국민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박근혜 들어가고, 책임총리와 거국중립내각 나와라. 그런 후 뉴라이트 역사왜곡 중단, 사드배치 철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무효화, 남북간 화해협력 재개 등 역사와 민족 앞에 떳떳한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제1야당인 민주당이 책임총리 문제는 당분간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 이유는 ‘책임총리가 등장해 이 난국을 잘 헤쳐 나갈 경우, 현재 여론조사 1위인 문재인 전 대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란 소리도 들린다. 사실인가? 정녕 사실인가?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격언이 있다. 전국 곳곳에서 불타오르는 촛불들을 보면서, 문재인과 친문세력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jskim@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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