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7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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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역사를 거스른 대통령의 교훈
박준수
본사 기획실장

  • 입력날짜 : 2016. 12.05. 19:46
2016년 끝자락, 촛불 앞에 사위어가는 정권의 운명을 지켜보며 피플파워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지금 온 국민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한 때는 ‘행복한 대한민국’의 아이콘이었다. 정계에 진출 한 이후 ‘선거의 여왕’이라는 아우라를 발산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한 그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줄 것처럼 위엄을 과시했다. 그러나 어느새 권력의 위장된 장막이 걷히자 마지막 잎새처럼 떨고 있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4년 전 취재수첩을 펼쳐보니

권력의 정점에서 ‘질서있는 퇴진’을 기다리는 최고통치자의 부침을 지켜보면서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그러면서 필자가 2012년 대선기간 중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와 인터뷰한 취재수첩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 해 7월26일 광주시내 한 한정식집에서 지역 신문사 편집국장들과 함께 가진 인터뷰는 1시간 남짓 이어졌다. 대화는 주로 호남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 당시 언급한 내용들을 보니 지금 정치상황과 역설적인 함수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허탈한 심정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발언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투명한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밀실에서 빅딜하지 않겠다”

“5·16은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일이다”

“불통과 소신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호남발전 서운한 느낌 들지 않도록 하겠다”

“호남은 문화가 강점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콘텐츠를 개발할 인재를 육성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문화메카로 만들겠다”

“공교육을 내실화해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

그러나 이날 후보로서 언론을 통해 밝힌 공약들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에는 어느 것 하나 액면대로 실현된 것이 없다. 대신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들이 일관되게 추진되어왔다.

최순실 등 측근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대기업 총수들과 밀실에서 만나 빅딜이 이뤄졌다. 5·16은 역사와 국민의 평가 대신 정부가 만든 국정교과서에 의해 미화되고 소신과 불통은 동의어였다.

호남 발전은 서운한 느낌을 넘어 소외감만 깊어갔고 호남 인재등용은 탕평은 고사하고 영남편중이 심화됐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잘못된 예산으로 낙인찍혀 찬바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공교육은 정유라의 부정입학으로 공정성이 무너진 것은 물론 흙수저 학부모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결국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의 공약은 헛된 수사에 불과하고 대통령 개인과 소수 측근만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 4%로 곤두박질한 이유이다.

2012년 7월26일 날짜가 선명히 적힌 취재수첩을 다시 읽어가면서 그 당시 발언들이 역사에 길이 빛나는 어록으로 승화되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애통하게 생각한다.

지도자는 역사에서 교훈 얻어야

그리고 지도자의 발언에 대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생각한다. 만일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한 공약을 재임 중 절반이라도 실천했더라면 대한민국이 이처럼 혼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명한 정부를 만들고 밀실에서 빅딜하지 않았다면’,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호남을 서운하게 하지 않게 배려했더라면’, ‘소통하고 타협했더라면’ 이 같은 파국은 닥쳐오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그의 말은 청사에 길이 빛나는 어록이 되었을 텐데.

오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는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화가가 담벼락에 그린 잎사귀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희망을 품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마지막 잎새가 바람에 떨어져도 담벼락의 잎새는 지지않고 남아 있듯이 주권자인 국민의 마음 속 희망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후 새 봄이 오면 누가 차기 지도자가 될지 모르지만 2012년 나의 취재수첩에 적힌 미완성의 약속들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지역패권 청산, 호남차별 해소, 서민경제 회복, 공정한 사회 건설이다. 패권정치, 독선정치는 박 대통령과 함께 역사에서 영원히 퇴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권 주자들이 마음 깊이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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