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4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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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 갈리아의 수탉
김진수
본보 서울취재본부장

  • 입력날짜 : 2017. 02.21. 19:19
새누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과 대선주자 일부가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국민들의 의사를 왜곡하는 작태를 이어가고 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은 지난 19일 대구를 찾아 ‘대구·경북지역 핵심당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인 위원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금년 12월 17일 대선을 하는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며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다른 발언을 내뱉었다.

요즘 ‘얼’이 빠진 것 같다는 비판을 듣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박근혜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 있었나”라고 했고, 김진 전 언론인은 “박정희의 결기와 개혁정신을 부활할 테니 맡겨달라고 외쳐야 유권자가 표를 준다”고 차기 대선을 겨냥한 지역의 표심을 자극했다.


한국당 일부, 진실 왜곡 작태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이번 사태를 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과는 큰 괴리가 있어 보인다.

‘박-최 게이트’와 관련, 박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는 것은 촛불민심이 진보이고, 박 대통령이 보수여서 하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인 것이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다.

열심히 밤을 새워가며 성실하게 대학입시를 준비한 아이 대신 정유라 같이 부모의 빽과 돈을 이용한 아이가 대학에 부정합격하는 것이 납득되는 사회라면 이미 죽은 사회다.

국민들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력을 자신과 평소 친한 어떤 아줌마에게 넘겨 문화, 체육, 심지어 외교까지 국정을 농단한 것을 목도하고도 ‘그게 뭐 잘못됐냐?’고 되묻는 이웃이라면 더 이상 공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한 이른바 ‘보수 꼴통’과 일부 한국당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이러한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차기 대선’을 이용해 ‘박-최 게이트’를 물타기하려는 속내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타기에 성공하면 ‘옳고 그름’의 문제도 얼마든지 이념문제로 변형과 왜곡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그 순간을 탈출구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옳고 그름’을 이념문제로 왜곡


철학을 하는 이들이 종종 사용하는 용어 중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갈리아의 수탉’이란 말이 있다.

미네르바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다. 미네르바는 항상 부엉이와 함께 다닌다. 그래서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 됐다. 마르크스의 스승인 헤겔은 1821년 발간한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든 뒤에야 날아오른다.’고 적었다. 모든 현상과 사건들은 처음 발생한 때가 아니라 그 현상이나 사건이 마무리될 무렵이 돼야 정확하게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헤겔의 이 지적은 지식인의 자세 또는 고뇌를 설명하는 말로 이해된다. 하지만 어떤 지식인이 사회적 현상을 접하는데 있어 가장 뜨겁고 치열할 때는 뒤로 한 발 물러서 있다가,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다 해결된 이후 뒤늦게 나타나 공자왈 맹자왈 한다는 것 같아 마뜩찮다.

이와 달리 ‘갈리아의 수탉’은 마르크스가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비판하면서 차용한 개념이다. 갈리아는 프랑스의 옛 지명. 독일 사람이던 마르크스는 당시 프랑스 대혁명이 독일 해방을 촉진할 것이라면서 “독일 부활의 날은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잘 알 듯, 수탉은 이른 새벽에 남보다 앞서 운다. 마르크스의 이 말은 결국 지식인은 부엉이처럼 뒤늦게 행동하면 안 되고, 남보다 앞서 새로운 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고 보니, 현대사 이후 호남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갈리아의 수탉이었다.


지식인은 ‘갈리아 수탉’ 돼야


자유한국당이 대구·경북을 찾아 ‘박-최 게이트’ 물타기에 나선 것과 달리 지난 15일 경북의 김천고등학교에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천고등학교가 역사왜곡 문제로 말이 많은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하려고 하자 학생들이 8시간이 넘는 토론을 통해 학교장이 추진하려 했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문제를 없던 일로 만들었던 것.

이날 한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학생은 토론에서 “저희가 초점을 둬야할 것은 이념투쟁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작 어른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이념 문제로 물타기를 하는 반면, 우리 청소년들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란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어 대비된다. 김천고 학생들은 ‘갈리아의 수탉’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도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호남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갈리아의 수탉’이 더 많아져야 한다. 때 마침 올해는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 아니던가. /jskim@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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