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0일(화요일)
홈 >> 사설/칼럼 > 문화난장

예술가의 아내로 살아가기
김차순
우제길미술관 관장

  • 입력날짜 : 2017. 04.27. 19:34
엊그제까지 꽃이 흐드러졌다. 만발한 꽃 더미에 마음이 온통 흔들리더니 꽃이 진 자리에 순하디 순한 촉이 터 나온다. 신록인 것이다. 천지는 꽃 세상에서 신록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세상 구경하겠다고 고개를 내미는 촉이 반갑다. 가만히 들여다 볼라치면 눈이 개안해진다. 복작이는 삶 속에서 찌든 때로 더렵혀진 눈이 깨끗해진다. 그 눈으로 대하는 세상까지 맑아진다. 저절로 마음이 정갈하게 다듬어진다. 그게 바로 신록이다. 꽃과 신록의 차이다. 이제 그 신록이 점점 더 고개를 들고 있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소리다. 한껏 익은 봄은 이제 곧 저만치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초여름으로 우릴 데려다 놓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빛의 작가, 우제길 화백의 아내로 살아온 세상은 결코 꽃 세상이 아니었다.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화가의 아내라면 화려하게 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곤 한다.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퍽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퍽퍽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세상이 내게 주어졌다. 굳이 정리하자면 화려한 꽃 세상이 아닌 신록세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처음부터 신록은 아니었다. 그 신록의 세상은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 그 안에서 눈이 개안해지고 마음이 정갈해졌다. 그로 인한 행복한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이다.

빛의 작가, 우제길 화백의 작품 경향은 비구상이다. 소위 잘 팔리지 않는 작업을 해왔다. 그림 팔아선 밥을 굶어야 할 지경이었다. 굶을 지경에 작업을 계속하도록 뒷받침해야 했고 어엿한 미술관도 지어 광주를 대표한 빛의 작가로 우뚝 세우게 하고 싶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우선 먹고 살아야 하는 정도의 자금 융통만이라도 필요했다. 때에 따라선 유혹도 있었다. 1천호짜리 대작은 헐값에 사가겠다고 하는 컬렉터에게 우화백이 돈을 받아왔다. 도저히 그럴 순 없었다. 다음 날 컬렉터에게 곧장 송금시켜 주었다. 애써서 그린 작품을 싼 값에 팔면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우제길 화백의 예술정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단호하게 돌려주었다.

작업을 위해 재료를 구입해야 했고 쌀도 팔아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제길 화백의 작업이 비구상임에 따라 대중에게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제길 화백의 예술세계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이해시킬 방안이 필요했다. 사나흘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고민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우제길 화백의 작업을 토대로 한 ‘아트상품’의 탄생이다. 90년대 초반의 일이니 벌써 20년을 훌쩍 넘긴 일이다. 여성들에게는 스카프, 남성들에겐 넥타이가 대표적이었다. 미술을 일상 삶으로 끌어들인 아트상품의 개발은 우제길 화백이 처음이었다. 그걸 이광희 패션디자이너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으로 선보여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 다시 말해 검증을 받은 것이다. 1994년 광주시립미술관 ‘우제길 회화 40년전’기념전 때의 일이다. 작가의 예술작품을 아트상품화한 것은 물론 공립미술관에서 패션과 미술의 만남을 시도한, 대한민국에서의 최초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우제길 아트 상품은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빅 히트를 쳤다. 이후 긴 세월을 거치며 아트상품은 우제길 미술관을 대표하는 한 줄기로 자리 잡았다. 다른 작가들은 물론 미술관들이 뒤이어 아트상품 개발에 나섰다. 우제길 미술관은 흔들림 없이 아트상품의 원조로서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기업화할 욕심도, 많이 내보낼 의욕도 없이 우제길 화백의 작가정신을 부담 없이 전하는 매개체로 활용하고 있다. 자연히 덤으로 경제적인 도움이 뒤따랐다. 아트상품의 히트로 물감, 액자 등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크게 벌이지 않는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 다만 우제길 화백의 예술세계를 대중에게로 보여주는 가교역할을 차분하게 한다. 그 작업을 화가의 아내로서 필자가 떠맡고 있다. 꽃처럼 화려한 일은 아니지만 신록처럼 마음을 씻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즐겁고 행복하다. 아트상품으로 신록세상을 열어간다.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