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4일(금요일)
홈 >> 특집 > 문병채 박사의 신해양실크로드

[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인도 첸나이의 밀라포르 항구(2)
진주목사 김시민 아들이 도요토미 암살 마법 배운 곳

  • 입력날짜 : 2017. 05.02. 18:32
깔끔하면서도 은은한 성당 내부 모습.
400년 전 임진왜란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직한 전쟁이다. 그런데 그 전쟁 중 일본인이 가장 두려워했던 최고의 영웅이 한 사람 있었다. 바로 김시민이다. 그는 당시 진주 목사로 불과 3천800여명으로 왜군 2만8천명의 대군을 무찔렀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군은 정규군이 아닌 의병이었고, 일본군은 조총의 신무기로 무장된 정예부대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탄에 맞아 비명에 갔다. 그의 한 맺힌 죽음은 그의 아들로 하여금 최대의 전쟁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 암살을 도모하게 만든다. 그의 아들은 오늘날 남인도의 첸나이까지 가서 기독교 마법을 배워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암살 계획을 세운다. 비록 사전에 발각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에도시대 민중극 ‘가부키’로 제작돼 오래도록 일본인 마음에 남게 했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남인도 최대 도시 ‘첸나이’

첸나이! 옛 이름은 ‘마드라스’다. 고대에는 ‘밀라포르’라 불렀다. 시내 중심에서 남쪽으로 4㎞쯤 내려오면 지금도 그 때의 포구 흔적이 남아 있다.

첸나이는 벵골 만의 서쪽 남인도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해 있다. ‘만다 신(神)의 나라’라는 뜻이다. 남인도 최대 도시다. 1640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동방무역기지로 삼으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마리나 비치는 아름다운 거리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인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최대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첸나이 반경 30㎞ 내에 우리 기업이 200개 이상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현대자동차공장이 대표적이다. 길에 다니는 승용차 20%가 한국 자동차고, TV, 에어컨, 냉장고에서 과자류까지 한국 상품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4천여명의 한인사회는 가장 큰 외국인 커뮤니티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인도 경제가 부상하면 놀랍게 커질 것이다.

첸나이 인근에 관광지도 많다. 남인도의 옛 문화와 예술을 담고 있는 ‘타밀나두박물관’, 1653년에 영국이 건립한 ‘동인도회사 요새’, 8세기에 건립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스리빠르티싸르티 사원’, 37m의 거대한 무지개 색의 고푸람(탑문)을 자랑하는 ‘카발리스와르 사원’, 총길이 12㎞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마리나 비치’, 사도 도마의 유해가 보관된 ‘성 도마 성당’ 등이 대표적이다.

첸나이공항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남인도의 첫 인상은 깊었다. 북인도가 밀(빵)이 주식인데 반해, 남인도는 쌀(밥)이 주식이었다. 식용류도 유체기름이 주였으나, 남인도에 오니 온통 코코넛기름이다. 생각보다는 주민들이 부유했고 부자들도 많다고 한다. 북인도 보다는 개방적이고 성적인 면도 자유로웠다. 남자가 치마를 입는 것이 특히 그렇다. 구걸하는 여자도 보였으나, 목걸이는 물론이고 귀걸이와 코걸이까지 하고 있어 신기했다. 인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인생이 다시 보인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지를 알 것 같다. 벵골 만의 파도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듯하다.

최영숙 作 ‘산토메 성당’-김시민의 아들이 이곳에서 기독교 마법을 배워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암살을 도모했다.
▶일본이 두려워했던 영웅 ‘김시민’

임진왜란 때 수많은 영웅들이 태어났다. 이순신도 그 중의 하나지만 김시민 만큼 위협적인 인물로 왜군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순신은 당대에는 조선, 일본, 중국에서 평범한 무장으로 여겼다. 그가 죽고 백년 뒤에 그를 재평가하게 됐고, 최고의 영웅으로 숭배됐다. 그러나 김시민은 임란 때부터 영웅이었다. 당시 왜군은 김시민을 모쿠소(‘목사’의 일본발음)라고 불렀다. 조선군 맹장 ‘모쿠소’에 관한 소식은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알 만큼 영웅이었다. 도요토미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도요토미의 사망과 원귀

1593년 4월17일, 도요토미는 한성(서울)에 집결한 병력을 되돌려 “진주성을 공격해 단 한명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도살할 것”을 명령하는 자못 광기어린 지령을 내린다.

왜군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6월29일 진주성은 함락되고 만다. 분에 받친 왜적은 노약남녀를 막론하고 ‘한 명도 남김없이’ 잔인무도하게 야만적으로 학살했다. 정말 끔찍한 보복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죽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귀나 코를 잘라 갔다.

진주목사였던 서예원의 목도 잘렸다. 왜군이 확득한 최대의 전획물(戰獲物)이었다. 소금에 절인 목은 도요토미에게 바쳐졌다.(실은 김시민의 목이 아니었다. 김시민이 죽은 후 새로 임명된 진주목사 서예원의 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인을 위해 상자 뚜껑을 연 순간 그는 움찔했다. 원귀가 살아 있는 듯 덮쳐왔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도요토미는 김시민의 원귀(寃鬼)가 씌워졌다. 밤마다 원귀가 그를 괴롭혔다. 어쩔 때는 너무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몽이 이어졌다. 도요토미의 몸은 날로 비실비실 여위어 갔다. 결국 그는 4년 만에 죽고 만다.

성당 지하에 재현해 놓은 ‘성토마 무덤’.
▶마법 수련 위해 천축국으로…

김시민이 죽은 후, 김시민의 아들은 어느 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난다. 원수를 갚아달라는 꿈이었다. 아들은 결심한다. 민족의 최대의 원흉(元兇)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치밀한 계획을 짰다. 우선 잠입해서 일본으로 들어간 후, 무역선을 타고 천축국(인도)로 가서 기독교 마법을 배워 와서, 도요토미를 암살하기로 한다.

포로가 된 척 일본 잠입에 들어갔다. 먼저 이름부터 일본식으로 바꿨다. 덴지쿠도쿠베(天竺德兵衛)가 그것이다. 스미노쿠라료이(角倉了以) 상단(商團)에 들어간 그는 드디어 1626년 베트남 호이안에 도달한 후 ‘미선왕국(MYSON)’에 머물렀다. 호이안은 당시 베트남 최대의 실크로드 거점항이었고, 인근의 미선왕국은 시바신을 숭배하는 참파힌두교가 최고로 번성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신비스러운 힘을 부릴 수 있는 ‘힌두참파의 마법’을 배웠다.

▶실패로 돌아간 암살 계획

그는 여기서 네덜란드인 항해사 얀요스텐반로덴스타인(Jan Joosten van Loodensteyn)을 만난다. 그리고 그의 배를 타고 천축(天竺), 즉 남인도 첸나이까지 갔다. 첸나이에는 당시 기독교가 번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첸나이는 AD 52-72년 예수의 12사도인 ‘토마’가 복음을 전파한 곳이다. 그가 순교한 곳에는 ‘성토마 성당’이 세워져 있었고, 아직도 그를 신봉하는 네스토리우스파(景敎)가 실존하고 있다. 그는 이 성당에서 기독교 마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천축(덴지쿠)’이란 말이 들어갔다고 한다.

마법 수련을 마치고, 그는 일본으로 향한다. 귀국 후, 자신의 경험담을 ‘천축도해이야기(天竺渡海物語)’라는 제목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가 손을 요상하게 하고 주문을 외우면 두꺼비가 나온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깝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천축도해이야기’에 따르면, 복수가 실패하고 그의 조선인 정체가 탄로 나 처형되기 직전, 처형을 기다리는 그에게 김시민의 영혼이 다시 나타나 “내가 너의 아버지다. 너는 조선인이고 조선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가부키’ 민중극으로 다시 태어나다

덴지쿠도쿠베 이야기는 일본인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대단한 충격을 줬다. 그의 이야기를 쓴 ‘천축도해이야기(天竺渡海物語)’ 책은 널리 읽혀졌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 사이에 ‘민중극’으로 만들어져 공연돼 큰 인기를 끌었다. 바로 임란 후 일본에서 유행했던 가부키(歌舞伎)가 그것이다. ‘덴지쿠도쿠베 이국이야기(天竺德 兵衛韓)’는 일본 가부키(歌舞伎)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가부키에서 “덴지쿠 도쿠베는 일본에서 악의 상징인 ‘두꺼비’를 타고 기독교 요술을 부리며 일본을 전복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스토리다.

이 가부키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 맺힌 조선인의 울분을 조금이라도 식혀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들 일본인들의 흥미만 채워주기 위해 희생적 인물로 설정된 가공인물일까?

역사 기록에 의하면, 김시민은 후손이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 지금껏 양자에 의해 대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37세까지 산 김시민이 후손이 없을 리 없다. 김시민에게는 실제로 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가 정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일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의 단순한 이야기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너무 쓸쓸함이 느껴진다.

▶토마가 묻힌 곳에 세워진 ‘성토마 성당’

성토마 성당! 첸나이 산토메 지역에 있어서 ‘산토메 성당’이라고도 했다. 이 성당은 순교한 토마를 기리기 위해서 그의 무덤 위에 세운 성당이다. 가톨릭 성지다. 크고 첨탑이 높아 어디에서나 잘 볼 수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니, 작은 동산이 나온다. 거기에 서있는 성모상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성당의 하얀 건물이 정갈하게 보였다. 은은한 상아빛 외관과 신고딕 양식의 곧게 뻗은 직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세웠던 것을 1893년 영국이 신고딕 건물로 다시 건설했다고 한다.

성당 내부도 깔끔했다. 제일 안쪽에 ‘토마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에는 이 성당의 역사와 기독교에 관한 유물이 전시돼 있고, 지하에는 토마의 무덤과 그에 관한 많은 자료가 있었다. 모두들 참배하는 매우 엄숙한 공간이었다.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