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4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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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에 떠올려 보는 서서평의 삶
이현
아동문학가

  • 입력날짜 : 2017. 05.11. 19:34
“이름이…….”

누군가의 이름을 알고 나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선 느낌이다. 자신의 이름과 똑 같은 사람이라도 만나면 웃음이 절로 난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며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다. 모든 일을 느리고도 천천히, 평평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천천할 서(徐)자에 평평할 평(平)자를 더하여 만든, ‘서서평’이라는 이름도 모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만들어진 이름이다.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요즘 상영되고 있는 서서평 선교사의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약 100여 년 전, 가난하고 억압받던 조선 땅에 간호 선교사로 파견해 온 독일인,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1880-1934)은 조선에 왔으니 조선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언어도 다르고 얼굴 색도 다른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조선말을 배우기에 힘쓰며 이름도 서서평으로 하였다. 누렇게 바랜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통치마를 입고, 발이 커 맞는 신발이 없어 남자 고무신을 신고 밥에 김치에 된장국을 먹으며 소외된 자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서서평 선교사에게 주어졌던 하루 식비는 3원. 서서평은 10전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머지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었다. 당시 조선인들도 돌보지 않았던 한센병자와 걸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입히고 먹이며 재웠다.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고아가 된 아이들 14명을 자녀로 삼고,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나거나 오갈 데 없는 과부 38명과 한 집에 살며 그들을 돌보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덮고 있던 이불과 요마저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푸른 눈의 여인 서서평이 남긴 유품은, 담요 반쪽에 동전(銅錢)7전(錢), 강냉이 2홉이 전부였다. ‘Not Success But serve’ 성공이 아닌 섬김의 삶을 원했던 그녀의 삶은, 소유가 아닌 나눔의 삶이었다.

조선간호부회(대한간호협회 전신), 여전도회연합회 등을 창설하여 여성운동과 간호 분야에도 힘쓰며 여성들의 자립적 삶을 위해 힘썼다. 무지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위한 배움터로 이일학교를 세웠으며, 졸업 후에는 자립할 수 있도록 양림동에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두어 양잠과 제사와 직포 기술을 보급했다. 수예품의 제조와 수출까지 도와 자활과 기술교육에도 힘썼다.

“어머니, 어머니…….”

그녀가 세상을 떠나던 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목 놓아 울었다. 선교사, 간호사란 이름보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불리었던 푸른 눈의 어머니, 서서평의 장례는 광주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장기도 기증했다. 한국의학계의 발전을 위해 장기까지도 기증한 그녀의 뱃속은 볏짚으로 채워져 떠나갔다.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번에 만난 여성 500명 중 이름이 있는 사람은 열 명뿐입니다. 1921년, 조선 여성들은 이름 없이 큰년이, 작은년이, 언년이, 간난이, 개똥이 등으로 불립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전라도 일대를 한 달여간 순회한 뒤 남겼던 서서평의 글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이름으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며,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참으로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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