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4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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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환자 넘쳐났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 <6> 당시 통합병원 진료부장 이정융씨
200여 병상 모두 시민들로 채워져
첫 출근 후 열흘간 퇴근조차 못해

  • 입력날짜 : 2017. 05.18. 19:57
“그때의 광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사방이 피로 물들어 생지옥을 연상케 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국군통합병원 진료부장을 지낸 이정융(73)씨는 18일 1980년 5월 광주를 이 같이 회상했다.

37년 전 이씨는 대구 통합병원 진료부장을 역임하고 5·18 발생 2주 전 광주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의 광주 첫 출근이었던 1980년 5월20일. 첫 출근의 설렘에 가득했던 이씨는 출발부터 걱정이 앞섰다.

출근길에 20사단 병력이 광주시내에 진입을 했다가 퇴각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병력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이씨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첫날 출근부터 죽어가는 환자들이 물밀 듯 실려왔다.

이씨는 “당시 첫 출근 후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열흘간 퇴근하지 못했다”며 “피곤했지만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소회했다.

그는 이어 “시민·군인 가릴 것 없이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했다”며 “총상 환자는 물론 임산부 출산까지 도왔는데 어렵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생명이 탄생하는 모습도 지켜보곤 했다”고 언급했다. 당시 이씨가 돌봤던 환자 중에는 본보가 지난 17일 지면에 실었던 이민오 원장도 포함됐다. 이민오 원장은 이씨가 광주에서 맡았던 첫 환자다.

그는 당시 이민오 원장의 수술 상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는 “배를 열고 보니 췌장이 절단돼 있었고 십이지장 등에 구멍이 나 있어 굉장히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이었다”고 말했다.

밤낮없이 수술을 이어왔음에도 환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보안사가 시위 주동자를 잡기 위해 매일 시민들을 불러 고문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200여 병상 모두 시민들로 채워졌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부상당한 가족들의 생사를 몰라 헤매는 시민이 오면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면회를 시켜주기도 했다.

이씨는 “5·18 당시 시민들을 짓밟은 것은 엄청난 범죄다”며 “선량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정권을 잡기 위한 행위가 5·18민주화운동을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임후성 기자 uyear@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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