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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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파리문화기행](完) 도시가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산 자와 죽은 자의 기억 공존하는 공간 ‘묘지’

  • 입력날짜 : 2017. 09.07. 19:06
몽마르뜨 언덕 주변 주택에 둘러싸여 있는 생 뱅상 묘지.
지난 8월에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대한민국을 광주의 1980년 5월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택시가 주인공을 1920년대의 파리로 데려다준 것처럼, ‘택시운전사’에서도 2017년 새로운 정치 지형을 체험하고 있는 대한민국 시민을 태우고 1980년 5월 광주로 갔다. 되살아난 광주 5·18 민주항쟁에 대한 관심과 구 전남도청의 보존 문제는 다시 이슈의 변곡점 위에 놓였다. 광주시민과 이를 기억해주는 소수만이 함께 아파했던 ‘약자의 역사’를, 이제 많은 이들이 그때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두텁고 습한 안개 속에 갇혔던 아픔의 기억이 오랜 망각의 시간을 힘겹게 뚫고 나와 이제 우리들의 두 눈을 마주하고 서 있다.


▶2004 전남대 건축공학박사 ▶2005-2007 전남대 post-doc/청주대 post-doc ▶2009-2011 전남대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4-현재 Paris 8대학, 도시계획 박사과정
▶ 마주 보고 있기에 두려운 죽음

모멘트 모리(Mo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는 무한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죽음 자체를 기억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자리에 죽음의 의미를 명확하게 각인시킴으로써 겸손함과 더불어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함께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죽은 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장소, 이른바‘묘지’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 내 삶의 터전과 거리가 먼 곳에 대부분 위치한다. 죽은 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는 도시 풍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만 한다. 한국인에게 공동묘지는 삶의 영역으로 품을 수 없는 혐오시설이다. 자신의 삶 안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두려움도 내포돼 있다. 만약 도심 한가운데 공동묘지나 납골당을 유치하려 한다면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결코 설립될 수 없을 것이다.

‘택시운전사’를 보고 많은 이들이 광주를 찾고 또 이들을 기리기 위해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는 발길이 증가했다고 한다. 국립 5·18민주묘지가 광주시 외곽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매우 아쉽기만 하다. 국립 4·19민주묘지를 예외로 하고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립묘지, 공동묘지 또는 추모공간은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 한적한 곳에 있다. 특히 국립묘지의 권위적 배치, 삭막함에 대한 문제점이 거론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집합적 장소, 묘지는 우리의 일상과 그렇게 유리돼 있다.


야외 조각전시장 같은 묘지(왼쪽)와 오스카 와일드의 기념비.
▶ 삶의 터전과 함께 공존하는 묘지

파리시 많은 수의 공동묘지는 주택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 서면 바로 앞에 있는 묘지를 마주하기도 한다. 죽음을 맞대고 죽음이 지척에 있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을 서로 공유한다. 파리시에는 동쪽 경계의 페흐 라쉐즈 묘지, 북쪽의 생 방생 묘지와 몽마르뜨 묘지, 서쪽의 파씨 공동묘지, 남쪽의 몽빠르나스 묘지 등을 포함해 많은 묘지들이 삶의 터전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는 어느 날, 울적해질 때 페흐 라쉐즈에 가보자. 이곳에는 쇼팽, 고엽으로 잘 알려진 이브 몽땅, 에디뜨 피아프, 마리아 칼라스, 사이키델릭의 전설 짐 모리슨, 탐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 프랑스 사실주의의 선구자 발자크,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유,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와 등 작가, 음악가, 예술가뿐만 아니라 정치가, 과학자 등 유명한 이들이 잠들어 있다. 1804년에 조성된 페흐 라쉐즈는 언제나 추모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어찌 보면 묘지가 아니라 예술인들의 마지막을 기념해 놓은 거대한 야외 메모리얼 같다. 페흐 라쉐즈는 44㏊에 달하는 매우 큰 묘역이기 때문에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이의 묘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

이곳에는 수많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집단적 기억’의 공간이 있다. 묘역의 동쪽 벽에는 ‘파리 코뮌 전사의 벽’이 바로 그곳이다. 1871년 ‘피의 일주일’ 동안 정부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수많은 파리 코뮌 전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파리 코뮌은 “자유로운 삶,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저항하면서, 밤샘 노동금지, 아동노동금지,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한 벌금을 부과하며 탄압하는 고용주에게 과태료 부과, 임차인과 영세 상인을 위한 보호 조치 등 실험적인 정책들을 제시했다.

쇼팽, 이브 몽땅, 짐 모리슨, 오스카 와일드 등 수많은 예술가, 정치가, 과학자 등이 잠들어 있는 페흐 라쉐즈 묘지 전경.
1871년 3월18일부터 시작해 5월28일까지 약 2달 이상 지속된 파리 코뮌은, 노동자 계급이 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한 파격적인 시민정부였다. 비록 이들이 꿈꾼 사회는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이상이 약 150년이 지난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진행 중인 논쟁거리라는 점은 매우 부끄러운 사실이다. 프랑스 정부군에 의해 자행된 5월21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피의 일주일’동안 파리 코뮌, 파리 시민의 죽음은 정부의 총구에 의해 쓰러져간 1980년 5월18일 시작된 광주 시민의 항쟁과 닮았다고 한다. 이곳엔 가끔 한국의 관광객들이 놓고 간 세월호 리본도 보인다.

몽마르뜨 언덕 주변엔 생 뱅상 묘지와 몽마르트 묘지가 있다. 1825년 조성된 몽마르뜨 묘지에서도 유명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삼총사’의 작가 뒤마,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 ‘적과 흑’의 스탕달, 발레리나를 그린 ‘스타’의 에드가 드가,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인 프랑수와 트뤼포, 독일에서 망명한 시인, 하이네 등이 잠들어 있다.

파리 남쪽에 위치한 몽파르나스 묘지는 1824년 7월, 약 19㏊ 면적으로 조성됐으며, 1931년에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됐다. 사르트르와 보봐르, 보들레르, 모파상, 세르주 갱스부르, ‘죽음의 무도’를 작곡한 생상스 등이 잠들어 있다.

친구를 위한 니키 드 생 폴의 조각 작품.
파리 퐁피두 센터 옆에 스트라빈스키 광장이 있다. 그곳에는 화려한 설치미술 작품들이 놓여 있는 분수가 있다. 이 분수를 디자인한 치유와 예술의 조각가 니키 드 생 폴(Niki de Saint Phalle)이 조각한 ‘나의 친구 장 자크를 위한 새’라는 작품과 ‘너무나 일찍 죽은 나의 절친한 친구 리카르도를 위해’라는 헌시와 함께 세워진 알록달록 한 ‘고양이’ 조형물을 볼 수 있다.

파리의 공동묘지는 묘역은 넓지만 아기자기하다. 가족이나 지인이 갖다 놓은 꽃, 책, 사진을 보며 이 가족의 생전 행복했던 순간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유명인들을 찾은 추모객들의 흔적은 산책하는데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향기로운 수많은 나무, 독특한 묘비명과 독특한 조각상이 가득한 묘지를 걸으니 야외 전시공원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비 오는 날, 때론 벚꽃 가득한 봄 공기, 초록이 가득한 어느 늦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누군가의 삶을 내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을 하며 걷다 보면 이곳은 어느새 치유의 장소가 된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묘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기억의 공유를 통해 유쾌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집합적 기억의 장소이다.


▶ 죽음과 역사를 기억하는 도시 풍경

프랑스인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빅토르 위고의 이름을 딴 거리(Rue Victor-Hugo)는 프랑스에 셀 수 없이 많다. 작가인 에밀 졸라(Emile-Zola) 거리, 초현실주의자이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던 시인이자 소설가인 루이 아라공(Louis-Aragon) 거리, 발자크(Balzac) 거리 등 작가, 음악가, 화가, 철학가, 정치가 등 유명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도 17세기 이전엔 장소적 특성을 지시하는 거리 이름을 사용했으나 18세기부터는 유명인의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역이나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 거리 이름이 많은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유명인의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선택된 인물들의 스펙트럼을 보면, 역사적 평가가 완료된 위인뿐만 아니라 근대 20세기의 인물들과 외국인들까지 망라한다.



또 한편으로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을 기념하는 ‘11월11일 거리’(Rue du 11 novembre)는 프랑스의 많은 도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리 이름 중 하나이다. 1945년 5월8일 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항복날짜를 기념하는 ‘Rue du 8 mai 1945’ 도 마찬가지이다. 혁명기념일 ‘7월14일 거리’(Rue du 14 Juillet)는 프랑스 내에 2017년 기준으로 적어도 143개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역사적 인물을 거리 이름으로 지정한 경우는 퇴계로, 세종로, 소월길, 겸재길 등 몇 개 존재한다. 아직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이들을 거리 이름에 차용한다고 할 경우 정치적 논쟁에 휩싸일 것이 두려운걸까?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의 이름만 보일 뿐이다. 특정일을 기념하는 거리 이름은 과연 존재하는가? 광복절, 6·25, 종전기념, 여러 민주항쟁의 기념일을 사용한 거리는? 5·18민주항쟁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강조하고 있는 광주시에서조차 5·18의 이름을 가진 거리는 찾을 수가 없다.



도시가 역사와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에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풍경은 한쪽은 덤덤하기도 하지만 유쾌하며 재잘거림이 있는 도시다. 다른 한쪽은 슬프고 엄숙하고 숭고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도시이다. 죽음은 어느 누구의 산 자의 역사이다. 이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차이는 도시 풍경을 바꾸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역사적 인물과 기념일을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길들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을 씨실과 날실처럼 도시 공간을 조직화한다. 역사는 그렇게 도시의 일상으로 현재화되고 도시는 스토리가 넘쳐난다. 이는 우리에게 도시에 죽음과 삶,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기록돼야 하는지 방향을 잘 보여준다.



광주 5·18 민주항쟁과 그 정신 위에 세워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 사회가 안고 가야 할 무거운 숙명으로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앞으로 광주의 도시 풍경은 아마도 이 두 개의 화두가 어떻게 기록되는지가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광주와 아시아 두 문화권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유쾌하게 기억하고 추모하는 도시, 빛고을 광주가 되길 희망해본다. 도시여, 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도시는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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