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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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의 흔적·문화 산물 무더기로 찾았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명량대첩로 해역 수중발굴조사 성과 공개
5차 조사서 120여점 추가 발굴
강진産 고려청자·닻돌 등 출수

  • 입력날짜 : 2017. 10.12. 19:29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지난 5월부터 진행한 5차 수중발굴조사·탐사를 통해 토기, 도자기류 등 다양한 유물을 출수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토기, 도기, 백자 등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출수된 유물 일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명량대첩’은 조선 선조 때인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이 진도와 육지 사이인 명량해협에서 일본의 수군을 크게 격파한 해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여러 종의 유물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둬 관심을 모은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2일 오전 진도군에서 올해 시행한 명량대첩로 해역 수중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연구소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차례에 걸친 수중발굴조사와 탐사에서 토기, 도자기류와 총통 등 전쟁유물까지 여러 종류의 유물 790여점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지난 5월부터 5차 발굴조사를 새롭게 진행해 도자기 등 120여점의 유물과 더불어 토기, 도기, 백자 등도 출수돼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을 확인했다.

이곳은 이전 조사들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총통(銃筒), 석환(石丸·돌포탄), 노기(弩機·화살을 추진시키는 무기 중 방아쇠 부분)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이 해역 일대가 당시의 해전지였음이 재확인된 곳이기도 하다.

올해 가장 많이 발굴한 유물은 비취색을 띤 장식과 화려한 문양이 특징인 고려청자다. 생산 시기는 12-13세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강진에서 제작된 접시, 잔, 유병 등이 대표적이다.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 발굴조사 현장.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조사해역의 일부구간(약 200×180m구역)에서 집중적으로 출수된 닻돌들도 주목된다. 5차에 걸친 조사에서 총 60여점이 발견됐는데, 이는 당시에 이 해역이 배들이 쉬어가는 정박지나 피항지의 역할을 해온 결정적 증거가 되는 유물이다.

올해 탐사에선 최첨단 해양탐사 장비인 수중초음파카메라와 스캐닝소나(Scanning sonar·음파를 이용해 주변 해저면의 모습을 2차원적으로 볼 수 있는 장비)를 발굴조사에 도입했다. 시야가 좋지 않은 명량대첩로 해역의 성격을 고려해서다.

본래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은 남해와 서해를 잇는 길목으로 예로부터 많은 배가 왕래하는 해상항로의 중심 구역이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전라·경상지역에서 거둬들인 세곡과 화물을 실어 나르던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해상 고속도로로 활용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4대 험조처(險阻處) 중 가장 항해가 어려워 배들이 자주 난파되던 곳이기도 하다.

명량대첩로 해역의 서쪽은 만(灣)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과거 간척이 이뤄졌던 곳이다. 이에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유물이 넓은 범위에 흩어져 묻혀있고, 물속에서 시야(0-0.5m)가 확보되지 않아 장기적인 연차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

김병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연구관은 “이곳은 정유재란 시기 이순신 장군이 조류를 이용해 일본군을 격파한 울돌목에서 남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으로, 관련 유물을 통해 당시 격전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며 “다음달 2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5차 조사 이후에도 지속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해양문화유산의 흔적을 찾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문의 061-270-2063)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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