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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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규슈 올레 다케오 코스
일본전통 깃든 고요한 길…3천년 된 녹나무 만나다

  • 입력날짜 : 2017. 10.24. 18:47
다케오 문화회관 뒤편의 녹나무. 얼마나 큰지 네 사람이 나무 앞에 서도 절반도 가리지 못한다.
열흘이라는 기나긴 추석연휴를 맞이해 일본 규슈올레 트레킹을 떠난다. 우리는 규슈올레 다케오코스를 걷기위해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다케오온천역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후쿠오카시내를 벗어나자 정겨운 농촌풍경이 펼쳐진다. 황금빛 들판이며 산자락에 기댄 일본식 주택들이 우리나라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다.

하카타역에서 1시간10분 쯤 달려 다케오온천역에 도착했다. 소도시에 있는 역이라서 역사 안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다케오온천역 후문을 나와 도로를 건너니 주택가가 이어진다. 넓은 골목 양쪽으로는 일본식 전통가옥들이 깔끔하다. 다케오천이라 불리는 천변을 따라 걷는데 정면으로 다케오시를 상징하는 미후네야마(御船山)가 뾰족한 두 개의 봉우리를 한 채 우뚝 서 있다. 이 산은 다케오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 다케오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시라이와운동공원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다케오 시민들이 평소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숲길은 잘 정비돼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은 물길처럼 유현하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를 가진 곳이라 숲은 울창한 아열대림으로 뒤덮여 있다. 건장한 남자 팔뚝 크기의 왕대나무숲을 지나기도 한다. 다케오시내가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랐다. 다케오는 인구 5만명의 조용한 소도시로 사가현에 속한다. 다케오 시내는 학교나 관공서 등 주요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층 정도의 일본식 전통가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일본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일본의 사찰은 대부분 마을주변에 위치해 있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기묘지(貴明寺) 절.
다시 숲길을 따라 걷다가 소박한 사찰을 만난다. 기묘지(貴明寺)라 불리는 절이다. 사찰에는 죽은 자를 모신 부도와 묘지도 있어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불이(不二)라 쓰인 소박한 일주문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서는데 6기의 작은 지장보살입상이 빨간 모자를 쓴 채 중생들을 맞이한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절을 올릴 때마다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되새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찰하면 산사를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일본 절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기묘지 역시 절 앞에 민가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사찰과 마을 사이에는 연꽃방죽이 있어 여름철이면 연꽃이 피어 고고한 아름다움이 펼쳐질 것 같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일본식 가옥들은 깔끔하고 정갈하다.

올레길은 마을 골목을 지나기도 하고 마을 앞 자동차도로를 건너기도 한다. 마을을 지나 이케노우치호수 제방으로 올라선다. 호수제방에 올라서니 방금 지나왔던 마을의 기와지붕과 누렇게 익은 들판이 풍요롭다. 이케노우치호수에는 낮은 산봉우리들이 산 그림자를 드리워 호수위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호수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봄철이면 화사한 벚꽃이 호수를 아름답게 치장을 해준다.

이케노우치호수 위쪽에 사가현 현립 우주과학관이 위치하고 있다. 우주비행체험을 할 수 있는 우주과학관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편백나무 숲이 우거진 길은 가파른 오르막 계단길로 이어진다. 257개에 이르는 계단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보니 전망대에 도착한다. 2층 전망대에 올라서자 다케오시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농촌마을의 일본식 전통가옥은 황금빛 들판, 주변의 산봉우리들과 어울려 정겨운 풍경을 이룬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 형성된 다케오시는 오래된 온천마을이다. 아울러 다케오시는 400여년 전부터 시작된 도자기 가마 90여개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도시다. 7층을 넘지 않은 건물들이 있긴 하지만 도시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2층 이하의 일본식 기와집이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전망대에서 낮은 고개를 넘어 도로를 따라 걷는데, 미후네야마의 두 봉우리가 가슴에 안겨온다. 미후네야마 뒤편으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줄기들이 첩첩하다. 다시 숲길로 들어서니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이 숭엄하다. 아름드리 삼나무들은 하늘높이 솟아 위엄을 과시한다. 숲길을 벗어나면 민가나 도로가 나오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곤 하는 길이 반복된다.

길가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어느덧 노랗게 물들어 가을정취를 듬뿍 풍겨준다. 천변길을 따라 걸을 때는 코스모스가 미소를 지어준다. 다케오시 문화회관에 들어서자 넓고 푸른 잔디밭과 잔디밭 뒤로 우뚝 서 있는 미후네야마가 인상적이다. 다케오시 문화회관은 옛 영주의 정원으로 흙담과 문 등 고풍스러운 일본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미후네야마 자락의 다케오신사로 향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높다란 축대를 돌아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니 다케오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에는 수많은 신을 모신 신사가 있지만 다케오신사는 다른 신사에 비하여 규모도 크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신사를 벗어나 녹나무를 만나러간다. 3천년 된 녹나무 신목에게 가는 길은 하늘높이 솟은 대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곧게 솟은 대나무와 편백나무가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게 해주고, 우리의 발걸음은 무언가 신비한 기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3천년 된 다케오신사 뒤편 녹나무는 밑둥치 빈 공간에 천신을 모셔 놓을 정도로 신목으로 여겨지는 나무다.
거대한 녹나무 앞에 서니 말문이 막혀버린다. 3천년이란 세월동안 비바람에 견디고, 파란만장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지켜봤던 나무 아닌가? 식물과 동물이 나고 죽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을 이 녹나무는 생로병사를 초탈한 신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줄기 가운데는 텅 비어 있으되 가지는 여전히 무성하다. 녹나무 밑둥치의 빈 공간은 이미 사원이나 다름없다. 나무 안에 천신(天神)이 모셔져 있고, 나무 아래에는 천신에게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마련돼 있다.

다테오신사 입구로 되돌아 나와 다케오시 문화회관 뒤편에서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문화회관 옆 둔덕에 있는 3천년 된 츠카사키 큰 녹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다. 녹나무 앞에 서자 다시 한 번 입이 쩍 벌어진다. 다케오신사 뒤편 녹나무는 주변에 펜스를 설치해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는데, 이곳 녹나무는 거대한 나무줄기를 만지기도 하고 줄기 가운데 비어있는 밑둥치를 들락거릴 수도 있다. 다케오신사 녹나무가 범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근엄하다면 이곳 녹나무는 기대고 싶고 품에 안기고 싶다.

사진을 찍으려고 녹나무 밑에 다섯명이 듬성듬성 서도 줄기의 절반도 가리지 못한다. 녹나무는 수천년을 살아오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뽐내지 않는다. 기껏 100년도 세상을 살지 못하는 인간은 마치 수천년을 살 것처럼 오만을 부린다. 득도한 녹나무는 오만한 인간까지도 말없이 품어준다. 이미 신이 된 두 녹나무를 만나고 나오는데, 법당에서 부처님을 참배하고 나오는 것 같다. 시내 골목길을 지나 다케오시청 앞까지 걷는다. 종착점인 다케오온천 로몬(樓門)까지는 2㎞ 남짓 남았는데, 해질 시간이 가까워 오늘 걷기는 여기에서 마치기로 한다.

다케오온천역에서 열차를 타고 사세보로 향하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다케오가 가장 일본다운 모습으로 배웅을 한다. 다케오온천에서 하루를 묵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다케오시의 정경이 서서히 멀어져간다.



※여행쪽지

▶규슈올레 다케오코스는 사가현 다케오시내와 주변을 따라 걸으며 일본의 전통과 산속의 고요한 소도시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길이다.
▶코스 : 다케오온천역→키묘지절→이케노우치호수→다케오시문화회관→다케오신사 녹나무→다케오시청 앞→다케오온천 관광안내소→다케오온천 로몬까지 A코스 기준 14.5㎞ 거리에 5시간 정도 걸린다. B코스는 13㎞ 거리에 4시간30분 소요.
▶교통 : 후쿠오카공항과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JR전철을 이용해 다케오온천역에서 내리면 된다. 후쿠오카공항에서 1시간20분, 하카타역에서 1시간1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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