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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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 광주!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7. 11.08. 19:46
얼마전에 맨부커상을 수상, 화제를 모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이탈리아의 말라파르테문학상을 수상했다.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써낸 소설이다. 이 상은 광주사람들에게도 큰 위로를 주었다.

최근에 필자는 외지 친구에게 ‘소년이 온다’ 수상소식을 전하면서 한번 읽어보라 권했다. 그러나 뜻밖의 반응이었다. 언제까지 한국현대사를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가둬둘거냐, 광주사람들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영화 ‘택시운전사’ 이후 암매장 발굴 등 부쩍 활기를 띄고 있는 5·18 역사 바로세우기를 곱지 않게 보는 국민도 있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광주의 아픈 역사에 관심 없어서 ‘지겹다’는 일부분이 존재한다해도 역사의 진실을 땅에 묻고 갈 순 없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서야 ‘그래 힘들었겠네~’ 위로조차 37년의 원통함을 덮어주지 못한다. 다시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이 시절,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온다.

‘소년이 온다’에는 막내아들을 잊지 못하는 동호의 노모뿐 아니라 도청에서 함께했던 동네 형과 누나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그랬다. 3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광주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영혼이 많다.

그러나 올해 들어 광주를 옥죄었던 역사왜곡이 속속 진실의 빛을 향해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5·18광주민주화운동 발생 후 정부 차원의 역사 왜곡 정황을 포착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국무총리실과 국가안전기획부의 80위원회 등이 구성됐으며, 전두환 정부가 국가계획안을 통해 정부 차원의 역사 왜곡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 진상을 추적하는중이다.

더불어 지금 옛 광주교도소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1997년에 시작한 5·18 행불자 찾기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2009년을 끝으로 찾으려는 노력조차 중단된 상태였다.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계엄군이 주둔한 곳으로 각종 증언에 따르면 행불자의 유해를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장소이다.

1989년 3월14일 국회광주특위현장검증 속기록에 담긴 이승을씨 증언은 5·18당시 광주교도소 일원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씨와 이웃 일행 4명이 자동차를 타고 교도소 앞 도로를 따라 담양으로 가던 길에 계엄군 총격을 받은 것은 1980년 5월21일 8시께. 일행 가운데 두명이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이때 숨진 고규석씨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한 고영태씨 부친이다. 이 원통한 사연은 고은 시인 만인보 단상 3353편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37년전 교도소에서 사라진 시민은 정확한 숫자와 신원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5월단체는 교도소 의무대 약품 수급대장을 통해 이 시기 하루 100여명 이상 중환자가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국가가 ‘오월 광주’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18기념일을 축소, 왜곡하거나 광주를 폄하해 공공연히 광주사태로 둔갑시키려고 하는 시도가 자행됐는데, 평생 묻혀있을 것 같은 억울함이 이렇게 하나, 둘, 셋, 매듭 풀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약속한 것처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기록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헌법 전문은 국가의 기본 원리와 추구하는 가치, 건국이념 등을 담고 있어 ‘헌법의 얼굴’이다. 이를 통해 그 국가의 정신을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5·18의 최종 명예회복은 헌법전문에 기록되는 것이라고 본다. ‘5·18민주화운동정신’이 한 나라의 최상위법이자 기본법이며 모든 법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헌법에 명기돼야 하는 이유를 유네스코가 잘 설명하고 있다. 2011년 5월에 5·18민주화운동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환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했으며, 나아가 냉전 체제를 깨트리는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불법 쿠데타 세력인 전두환 신군부의 독재와 국가 폭력에 맞서 민중이 사회적·정치적 주체로서 저항권을 행사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고 민주적·법치주의적 국가질서를 회복하려 한 ‘시민혁명’이었다. 특히 5·18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자 민주화의 기폭제로 작용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헌법 전문에 열거된 3·1운동과 4·19민주이념에 비교해 결코 그 의미와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5·18 민주화 운동의 헌법 전문 명문화는 37년간 억울하게 암매장된 광주시민에 대한 예의에 속한다. 더 이상 5·18의 의미를 훼손·왜곡하거나 가짜를 확대·확산시켜 소모적 사회갈등을 일으키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정신으로 승화되는 것이 최선이다.

소설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이 5·18을 빛이 비치는 쪽으로 데려가야 한다.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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