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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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규슈 올레-히라도 코스
일본 속 서양의 옛 정취 아담한 항구에 스며들고

  • 입력날짜 : 2017. 11.14. 18:27
히라도항 건너로 히라도성이 초병처럼 서 있고, 항구에는 작은 배들이 낮잠이라도 자는 듯 편안하게 정박해 있다.
히라도(平戶)로 가는 관문역할을 하는 사세보(佐世保)에서 어젯밤을 보내고 히라도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사세보 시내를 벗어나자 농촌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우리의 한옥과 마찬가지로 일본식 주택은 산봉우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히라도대교를 건너 히라도 섬으로 들어간다. 히라도버스터미널에 도착했지만 굵은 빗줄기를 뚫고 걸으려니 발걸음이 선뜻 떨어지지 않는다. 규슈올레 히라도코스는 버스터미널 옆 히라도 교류센터에서 시작된다. 히라도항 건너로 히라도성이 초병처럼 서 있고, 항구에는 작은 배들이 낮잠이라도 자는 듯 편안하게 정박해 있다.

히라도는 일본 최초로 1550년 개항돼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과 무역을 했다. 1636년 나가사키가 무역항을 대신할 때까지 하라도항은 국제무역항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일찍이 상업적인 교역을 시작한 히라도는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정도로 풍요로운 과거를 지녔다.

사찰의 동양적인 기와지붕과 서양적인 고딕양식의 뾰족한 교회첨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은 히라도코스의 상징적인 풍경이다.
올레길은 히라도성을 거치지 않지만 우리는 히라도성을 들렀다가 오기로 했다. 히라도 성에 오르면서 보는 히라도항은 ‘ㄷ’자 모양으로 작은 만을 이뤄 아담하고 예쁘다. 잔잔한 항구 주변으로 형성된 건축물들이 바다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히라도성 천수각에 오르니 히라도 시가지와 히라도항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타원형의 히라도항을 둘러싼 얕은 산자락을 따라 일본의 전통가옥과 높지 않은 현대식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비오는 날의 히라도항은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 듯하다.

히라도성에 들렀다가 히라도항으로 내려와 히라도시청 근처에서 올레길과 합류한다. 히라도 시가지를 지나 사이쿄지(最敎寺) 절 입구에 도착하니 아름드리나무들이 사찰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한다. 사이쿄지는 1607년 히라도 번주인 마츠라 시게노부가 건립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사이쿄지 본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사찰은 대체로 법당 앞에 넓은 마당이 있어 여백이 느껴지는데, 일본의 사찰은 당우 앞에 마당보다는 잔디나 나무들을 심어 오밀조밀한 가정집 정원 같다. 사이쿄지 본당 왼쪽 돌길을 따라가는데 수십 기의 돌부처가 길 양쪽에서 호위를 해준다. 보살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파란 지붕을 한 오쿠노인(奧之院)과 빨간 목탑형식의 삼중대탑(三重大塔)이 나란히 서 있다. 오쿠노인 옆의 삼중대탑은 1988년 건립된 목탑으로 높이 33.6m에 이른다.

이국땅 일본의 외딴 섬에서 비를 맞으며 사찰과 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나를 성찰케 하는 순례길이다. 사이코지 뒤편 언덕을 넘으니 아스팔트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서 작은 농촌마을들을 만난다. 올레길은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숲길을 따라 걷기를 반복한다.

가와치토오게는 완만하게 솟은 봉우리들로 이뤄진 30㏊에 이르는 초원지대로 한없이 부드럽고 평화롭다.
오솔길을 벗어나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가와치토오게(川內峠)라 불리는 부드러운 언덕이 나타난다. 언덕 초입에 가와치고개 안내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안내센터 2층 전망대에 올라서니 그 풍경이 가관이다. 가와치토오게는 완만하게 솟은 봉우리들로 이뤄진 30㏊에 이르는 초원지대로 한없이 부드럽고 평화롭다. 낮은 산봉우리들 너머로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붕긋붕긋 솟은 봉우리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바다의 모습이 마치 제주도의 오름을 보는 것 같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까지 그치고 가시거리도 어느 정도 확보되니 일행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한다. 봉우리를 향하여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데 천국으로 가는 것 같다. 해발 200m 높이의 가와치토오게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풍경화 한 폭이다. 잔잔한 바다는 섬을 만들고, 섬은 작고 아담한 봉우리들을 솟구쳐 리듬감을 가미했다. 바다에 발을 뻗은 섬은 리아스식 해안을 만들어 변화를 꾀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다운 마음을 낳고, 아름다운 마음은 아름다운 행동을 낳는다.

정상에 서 있으니 동남쪽에서 히라도 해협과 208개에 달하는 작은 섬들로 이뤄진 구주쿠시마(九十九島)가 우아한 풍경을 연출해준다. 여기에 뒤질세라 북서쪽에서는 후루에만과 이키쓰키 섬이 소꿉장난하듯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도 조망이 된다고 한다.

기와지붕을 한 일본전통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아래로 히라도항이 잔잔하다. 푸른 히라도항 뒤로 히라도성이 자리하고 있다.
초원지대를 벗어나 숲으로 뒤덮인 임도를 따라 걷는다. 숲길을 걷다가 야영장을 만났지만 이용하는 사람의 흔적이 희미하다. 다시 들어선 숲길에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붉가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길쭉한 붉가시나무 도토리 열매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붉가시나무 군락을 지나 삼나무숲을 지나기도 한다.

산자락에 기댄 마을과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벼들이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마을 언덕 너머로 자비에르기념교회의 첨탑이 윗부분만 고개를 내밀면서 손짓을 한다. 히라도항 쪽으로 고개를 넘어서자 히라도 자비에르 기념교회가 기다리고 있다. 이 교회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한 프란체스코 자비에르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1931년 건립됐다. 프란체스코 자비에르 신부는 1550년 해외 교역과 동시에 네덜란드·포르투갈 선박들이 히라도에 들어온 후 히라도를 방문해 처음으로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한 분이다.

카톨릭 교회 아래에는 두 개의 사찰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교회에서 내려오다가 뒤돌아보니 사찰의 동양적인 기와지붕과 서양적인 고딕양식의 뾰족한 교회첨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조화를 더욱 고조시킨 것은 사찰담장 위 기와지붕의 곡선미다. 이러한 어울림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이자 직선과 곡선의 조화다.

올레길은 사찰 마당을 거쳐 지대가 높은 언덕중턱을 따라 이어진다.

길 아래로 기와지붕을 한 일본전통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아래로 히라도항이 잔잔하다. 푸른 히라도항 뒤로 히라도성이 자리하고 있다. 길 주변은 오래된 골목이라 희라도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들이 많다. 수령 400년의 거대한 소철나무도 그중 하나다. 이 소철나무는 이 자리에 있던 무역상의 정원에 있던 나무라고 한다. 이곳은 에도시대 초기 부유한 무역상이 많이 살던 곳이다.

육각우물 또한 이 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것이다. 히라도항 해변으로 내려와 네덜란드 상관을 만난다. 나가사키 데지마로 무역거점을 옮기기 전까지 무역항 역할을 했던 히라도에 1639년 축조된 네덜란드 상관 창고를 2011년 복원해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일본식 건축물로 이루어진 상가가 이어진다. 사키가타초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히라도가 무역으로 번창하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거리를 재현해 놓았다.

사키가타초 거리를 지나 길가에 있는 히라도온천 팔탕·족탕에서 발을 담근다. 악천후 속에서 걸었던 오늘의 피로가 따뜻한 온천수에 스르르 녹아들어가는 것 같다. 지그시 눈을 감으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히라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여행쪽지

▶규슈올레 히라도코스는 일본 나가사키현 서북부에 위치한 히라도섬(平戶島)에 있는 올레길로 일본 속의 옛 서양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코스다. 아울러 제주도의 오름을 닮은 언덕과 다도해의 풍광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규슈올레 히라도코스는 히라도교류광장→사이쿄지(절)→가와치토오게→히라도시 운동공원→자비에르 기념교회→네덜란드 상관→히라도온천 팔탕·족탕(13㎞, 4시간 30분 소요)
▶히라도는 광어회·오징어회가 유명하고, 소박한 음식으로는 히라도 짬뽕이 담백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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