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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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태안 해변길 1코스 (바라길)
‘한국의 사막’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본 추상화

  • 입력날짜 : 2017. 12.05. 18:43
모래로만 이뤄진 ‘신두리 해안 사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충남 태안군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 이뤄져 있다.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 태안반도는 고운 모래와 빼어난 풍경을 가진 백사장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런 태안반도에 걷기 좋은 길이 있다. 학암포에서 서쪽해변을 따라 안면도까지 잇는 ‘태안 해변길’이다.

학암포오토캠핑장 입구에 도착하니 해변길 1코스를 알리는 출입문이 기다리고 있다. 해변길 1코스를 ‘바라길’이라 부르는데, 바라길이라는 이름은 ‘바다’와 바다의 옛 말인 ‘아라’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 길은 곧바로 해수욕장으로 들어서지 않고 해변의 울창한 곰솔숲길로부터 시작된다.

걷기 좋은 소나무숲길이 끝나자 넓은 갈대밭이 나타난다. 학암포 사구습지다. 사구습지는 해안에 사구가 형성되면서 사구와 배후산지 골짜기 경계 부분에 담수가 고여 습지가 형성된 것이다. 사구습지를 지나 모래언덕에 올라서자 푸른 바다가 가슴에 안겨온다. 학암포 모래해변은 타원을 그리며 바다와 만난다. 해변은 썰물이 돼 드넓은 해수욕장이 됐다.

해변 남쪽에는 분점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 있고, 이 섬에 학암포항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시대 학암포항은 분점포구로 불렸다. 지금은 작고 조용한 어항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날에는 중국 명나라와 질그릇을 교역하던 국제 무역항이었다. 질그릇을 만들어 중국 상인에게 팔아 분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학암포 해변 한 가운데는 분점도라는 섬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분점도에 학암포항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분점포구라 했다.
분점도에는 학바위가 있는데, 학암포라는 이름도 학바위에서 비롯됐다. 분점도가 학의 머리이고 양편 해수욕장은 학의 날개가 된다. 학암포해변은 분점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학암포 북쪽해변이 활처럼 휘어 있어 안온한 느낌이 든다면 남쪽해변은 길쭉하게 뻗어 시원하다. 학암포 남쪽해수욕장 앞에서는 초미니섬 소분점도가 재롱을 피운다. 소분점도는 밀물 때는 섬이 됐다가 썰물이 되면 학암포해변과 연결된다.

학암포해변을 걷는데 소분점도 뒤 드넓은 바다에 대뱅이·굴뚝뱅이·거먹뱅이·수리뱅이·돌뱅이·질마뱅이·새뱅이라는 재미있는 옛말 이름을 가진 크고 작은 섬 일곱 개가 아기자기하게 떠 있다. 사람들이 모래밭을 걸으며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면, 바다는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파도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가 느려진다.

학암포해변을 등 뒤에 두고 작은 동산을 넘어 구례포해변으로 향한다. 구례포해변의 울창한 솔숲은 여름철 이곳을 찾은 피서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돼준다. 해변에는 바람에 의한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지그재그로 포집기를 설치했다. 대나무로 만든 포집기는 설치미술품 같다.

소나무가 푸르게 뒤덮인 동산을 넘어 먼동해변으로 들어선다. 주변 해수욕장 중에서는 가장 짧은 해안선을 가진 먼동해수욕장은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며 푸른 산줄기들이 감싸고 있어 고즈넉하고 편안하다. 20여년 전 ‘먼동’이라는 TV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먼동해변으로 부르게 됐다. 이후 ‘야망의 전설’ ‘불멸의 이순신’ 등 숱한 드라마에서도 먼동해변이 등장했다.

먼동해변의 거북바위와 피라미드를 닮은 바위섬.
먼동해변에 들어서자 거북을 닮은 ‘거북바위’가 눈길을 끈다. 거북바위 등 위에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거북바위 너머로 피라미드를 닮은 바위섬 하나가 겹쳐지면서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이 넘어가면서 바다가 붉은 물결로 춤추기 시작하면 거북바위의 노송은 실루엣을 이루며 우아한 낙조풍경을 만든다. 먼동낙조는 안면도 꽃지해변·운여해변의 낙조 못지않다.

아담한 먼동해변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를 거슬러 솔향기 그윽한 숲길을 따라 걷는 길이 포근하다. 바다에 인접한 산길을 걷다보면 갯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부딪친다. 나무 사이로 해조음이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가는 길을 멈추고 전망대에 서 있으니 모나리자 같은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혼자서 조용히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일행들과 다정스럽게 수다를 떠는 시간도 이때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간 듯 청순·발랄해진다.

곰솔숲길을 벗어나자 신두리 해변이 드넓게 펼쳐진다. 혓바닥을 길게 내놓듯 신두리 해변의 모래사장이 길손을 맞이한다. 잔잔한 바다에는 서쪽으로 기운 태양이 햇살을 비춰 반짝반짝 윤슬을 만들어낸다.

파란 바다는 금빛으로 바뀌면서 신두리 해변의 모래까지 우아하게 해준다. 물결모양이 만들어진 백사장 위에 누군가가 남긴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걸어왔던 인생의 흔적을 보는 것 같다. 저 발자국들도 바닷물이 들어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사람도 죽고 나면 한줌 흙으로 돌아갈 텐데 더 많이 가지려하고 더 많이 누리려한다.

학암포 남쪽 해변에서 본 분점도와 소분점도. 소분점도는 썰물 때는 학암포해변과 바닷길이 열린다.
신두리 해변안쪽에는 광활한 모래언덕(사구)이 형성됐다. 이곳 사구는 서해를 건너온 거센 바닷바람이 파도에 밀려온 곱디고운 모래를 실어와 쌓은 ‘바람의 언덕’이다. 사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풀이 자라 초원이 된 곳도 있고, 모래언덕 그대로를 보여주는 곳도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해변을 따라 길이 3.4㎞, 해안선에서 육지까지의 폭 50m-1.3㎞로 국내 최대 규모의 사구이다. 신두리 해안사구 탐방로는 초원 한가운데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사구는 평평한 초원도 있지만 작은 동산을 이루어 곡선미를 자랑하기도 한다. 부드럽게 붕긋 솟은 모래언덕에는 억새가 피어 은빛으로 반짝인다.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억새는 쓸쓸한 듯 우아하다.

억새동산 위에서는 드넓은 신두리 해안사구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해안사구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푸르다 못해 시리다. 솔향 그윽한 숲길을 지나 사구전망대에 올라 알몸 그대로를 드러낸 모래언덕을 바라본다. 모래로만 이뤄진 사구는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펼쳐진다. 언덕표면의 고운 모래에는 바람이 물결모양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빼어난 감수성을 지닌 바람이라는 화가가 만든 대형 추상화다.

모래언덕은 물결모양의 바람자국과 함께 한쪽이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경이롭다. 이곳 사구전망대에서 바라본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이다.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 최대 해안사구로 흔히 ‘한국의 사막’이라 불린다. 이색적인 사막이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경관미는 극대화된다. 초승달 모양의 사구를 아래쪽에서 바라보니 섬섬옥수처럼 부드럽고 세월의 오묘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사막 한쪽으로 설치된 데크형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바람과 모래가 만든 풍경화에 흠뻑 빠져든다. 드넓은 해안사구 탐방로를 걷는 사람들도 풍경화의 소재가 된다.

해안사구 아래로는 신두리해수욕장이 파도와 만나면서 유유자적한다. 바다와 바람이 만든 이 모든 풍경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해맑게 해준다. ‘바람의 언덕’에 서있는 나는 행복하다.


※여행 쪽지

▶태안 해변길은 태안반도 서쪽 해안선을 따라 학암포에서 안면도 영목항에 이르는 길로 97㎞ 거리에 7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태안 해변길 1코스(바라길)는 학암포→구례포해변→먼동해변→능파사→신두리해안사구→신두리해변까지 12㎞ 거리로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출발지 네비게이션 주소 : 태안 학암포 오토캠핑장(충남 태안군 원북면 방갈리 37-41)
▶태안에서는 박속밀국낙지탕이 별미다. 원북면 소재지에 있는 원풍식당(041-672-5057)에서는 박으로 맛을 낸 국물에 낙지를 살짝 익혀 먹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걸쭉하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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