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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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전용기 여담(餘談)
김진수
서울취재본부장

  • 입력날짜 : 2017. 12.05. 18:44
Ⅰ.
국제질서에는 위계가 있다. 겉으로는 대등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국가 간의 의전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지난 ‘2017 APEC 정상회의’ 종료 후 각 국 정상들이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을 떠난 2017년 11월 12일 있었던 기자의 목격담 하나.

가장 먼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떠나고, 뒤 이어 중국 시진핑 주석이 출국했다. 그리고, 일본 아베 총리가 떠난 후에야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출국할 수 있었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순인데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팩트(fact)는 이랬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30여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베트남 다낭 공항의 VIP 출국장을 빠져나와 공항버스를 타고 KAF-001(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1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갑자기 턴을 하더니, 원래 대기하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유는 때마침 일본 아베 총리를 태운 승용차를 비롯해 일본 측 수행원들이 공항으로 들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수행원들은 아베 환송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버스 안에서 대기했다. 날씨는 더웠고, 버스의 에어컨은 한 동안 작동이 안 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물론 문 대통령이 차량 안에서 대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아마도 공항의 VIP 대기실에서 잠시 더 기다린 뒤 별도의 환송행사를 마친 후 KAF-001에 탑승했을 것이다.

나중에 보니 대한민국은 전용기 1대를 띄웠던 반면 일본은 전용기를 2대 띄운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의 비행기는 대형 점보기(보잉 747 기종)였던 반면, 공항에 함께 있던 다른 나라(나라명은 알지만 밝히지 않는다) 정상의 전용기는 중형 비행기 여서 왠지 초라해 보였다.

Ⅱ.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사람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장소는 비행기 안이다.

비행기는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한 승객은 1등석, 그 다음은 비즈니스석, 이코노미석 등의 순으로 사람대접을 받는다. 비행기 탑승 순서부터 먹는 음식, 마시는 음료까지 각각의 승객들은 그들이 앉는 ‘자리’에 따라 각기 다른 대접을 경험한다.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있었던 또 다른 경험담 하나.

첫 방문지였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서 두 번째 방문지인 베트남 다낭 공항으로 이동하는 비행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화장실로 진입하는 복도로 들어서려는 순간 반대편 입구에서 여 승무원이 먼저 화장실 문을 열고 휴지로 세면대 등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정리해도 되는데...’ 하며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일을 마친 그 승무원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죄송합니다. 잠시 후 이용해 주십시오”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누군가에게 들어오라는 정중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반대쪽 통로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한 남자가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필자가 얼굴을 익히 아는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이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그 공직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직급도 높은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앉아있던 공간에는 지난 2003-2006년 필자가 한국기자협회보 편집국장직을 맡았던 당시 내 밑에서 평기자 생활을 했던 J 행정관이 함께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군 1호기라고도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에는 대통령 부부를 위한 공간이 앞쪽에 마련돼 있다. 대통령 공간 뒤쪽에는 참모진 30여명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회의실이 있다. 국무위원, 청와대 수석·보좌관 등은 ‘1등석’에 해당하는 비행기 2층 조정석 뒤편에 앉는다. 1층 회의실 뒤로는 청와대 행정관, 장관 수행원 등이 ‘비즈니스석’에 해당하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뒤 ‘이코노미석’에 해당하는 위치에 취재기자단이 앉는다.

물론 대통령 전용기의 ‘이코노미석’은 일반 항공기 보다 앞뒤 간격이 5cm 더 넓다. 동행한 취재기자단이 적을 때에는 옆 좌석을 비워 가급적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50대 후반인 필자의 입장에서, 나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공직자를 위해 비행기 화장실 사용을 막은 스튜어디스에게 불만은 없다. 진짜다. 그 승무원의 입장에서 ‘이코노미석’ 이용객과 ‘비즈니스석’ 이용객에 대한 대우는 달라야 하니까.

Ⅲ.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해외순방을 따라가는 기자는 소속 언론사에서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 청와대에서는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의 여행경비보다 훨씬 비싸다.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을 갈 때 통상 500만원 이상,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은 무조건 1천만원이 넘는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이렇다. 우선, 호텔비. 통상 대통령과 취재진은 의전상의 문제 때문에 같은 호텔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당연히 최고급 호텔을 이용한다. 그런데 대통령을 수행하는 취재진도 허접한 호텔에서 묵을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호텔방은 모두 1인 1실이다. 과거 2인 1실을 쓰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다음은 비행기 값. 대통령 전용기인데도 기자들은 왕복 비행기 값을 할인되지 않은 원래의 대한항공 이용 가격으로 내야한다. 취재진이 1명이 가든 100명이 가든 대통령 전용기는 떠야하는 것이므로 비행기 값은 그렇게 많이 안 받아도 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런지는 필자도 모른다. 물어도 대답이 없다. /jskim@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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