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5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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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생사 길목서 마주한 이성과 본능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1만4천원

  • 입력날짜 : 2017. 12.10. 19:13
인생은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다. 잔잔한 바람도 잠시, 거센 파도가 몰아치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배에는 이성과 본능이 어지럽게 공존한다. 인간은 외적인 환경 보다는 내 안의 두려움과 공포에 의해 무너진다. 그것은 절망이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인간은 고난 속에서 성장한다는 교훈적인 소설이 아니다.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담론과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담고 있다. 주인공 파이는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가톨릭 등 여러 종교를 믿는 소년이다. 여기서 파이가 믿는 종교는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간의 종교들은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기 보다는 다툼과 불화의 원인이었다. 파이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부모와 형,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찾았던 비슈누님, 마호메트님, 예수님, 마리아님은 신에 대한 원망과 신에 대한 구원의 외침이었다.

파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물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몇몇 동물들과 함께 캐나다 이주를 결심한다. 그의 가족들은 파나마 선적의 일본 화물선 ‘침춤 호’를 타고 마드라스를 떠났다. 어느 날 침춤 호가 미드웨이 제도 부근에서 악천후를 만나고 폭발음과 동시에 침몰한다. 파이는 간신히 방수포가 덮인 구명보트 덕분에 살아남는다. 32인승 구명보트에는 세 살배기 벵골 호랑이(리처드 파크), 부상당한 그랜트 얼룩말, 암컷 오랑우탄, 수컷 점박이 하이에나가 타고 있었다. 살아있음에 대한 안도감도 잠시, 작은 공간에는 숨겨진 본능과 약육강식의 참혹함이 드러난다. 하이에나는 우랑우탄을 죽이고, 호랑이는 하이에나를 죽인다. 마지막에는 인간과 호랑이만 남는다. 파이는 호랑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구명보트에 딸린 작은 뗏목으로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공포심에 한동안 사로잡혀 지낸다. 인간에게 닥친 공포심은 관대함도 없고, 법이나 관습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비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생명의 끝에 마주하는 진짜 공포는 모든 것을 썩게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죽음의 공포에서 진정시켜준 것은 리처드 파커였다. 오히려 평온함을 가져다 준 것이다.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것은 절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난이 길어질수록 그의 정신력도 나약해지고 더 이상 리처드 파크를 보살필 수 없다는 슬픔에 빠진다. 파이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듯 “아버지, 어머니, 라비 형을 생각하면서 한순간도 가족을 잊은 적이 없다고, 이젠 신의 손에 맡긴다”고 기도한다.

한동안 정신을 잃고 기괴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그의 구명보트는 이상한 초록색 섬에 도착해 있었다. 해초로 뒤덮인 섬에는 미어캣 수십만 마리로 가득했다. 여러 연못가에는 물고기가 예외 없이 죽어 있었다. 바다로 통해서 들어온 물고기 떼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담수에 갇혀서 죽은 것이다. 놀랍게도 밤이 되면 낮에 봤던 죽은 물고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검은 열매가 달린 나무 탓이었다. 자세히 보니 뿌연 초록빛 열매는 과일이 아니었다. 잎사귀가 공 모양으로 들러붙은 덩어리였다. 그 속을 열어보니 충격적인 ‘인간의 치아’가 들어 있었다. 열매마다 이빨이 들어 있었다. 그곳은 식충 섬이었다. 파이는 육체는 편하고 정신은 죽은 쓸쓸한 반쪽 인생을 사느니, 삶을 찾아서 여길 떠나 죽는 편이 낫겠다고 결심하고 죽음의 섬을 벗어난다. 아침이 되자 섬은 사라졌다.

소설 말미에 주인공 파이는 앞부분과 다른 섬뜩한 반전을 들려준다. 실은 구명보트에 어머니(우랑우탄), 요리사(하이에나), 선원(얼룩말), 파이(호랑이) 네 명의 사람이 살아남았다. 비열한 요리사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선원의 다리를 절단하여 미끼로 사용한다. 나중에는 파이의 어머니까지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를 지켜본 파이가 요리사를 죽이고 그의 심장을 먹었다는 것이다.

동물보다 잔인한 것은 인간이다. 작은 배 안의 비상식량이 밑바닥을 드러낼 때 숨겨진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설상가상 시시각각 다가오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한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지배한다. 어느덧 누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분간할 수 없다.

진실을 헤아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어쩌면 인생의 거친 바다에서 맞서기를, 생을 포기하지 말 것을,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를 통해 읽는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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