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0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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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권력에 취하면 타락한다
‘완장’ 윤흥길 지음 현대문학 1만2천원

  • 입력날짜 : 2017. 12.17. 18:52
나의 말에는 힘이 없다. 글 또한 울림이 적다. 다소 과장해서 이유를 들자면 나에게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는 바람에 버티는 것도 벅차다. 4년 전 다니던 위원회가 폐지되고 나의 운명은 초라함을 드러냈다. 국가정책의 변화에 이직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어지럽게 진행됐다. 나는 미처 준비가 덜 된 상태였기에 전혀 다른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때로는 신분상 모멸감과 참담함을 견뎌야 했다. 이는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만 마음은 몹시 흔들렸다. 괜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미워했던 내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권력을 빼앗긴 자는, 권력을 잃어버린 자는, 지나간 권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는 빨리 잊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내 안의 권력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완장은 또 다른 권력의 상징이다. 필자가 다니던 학창시절의 반장이나 선도부는 늘 학생 위에 군림하는 존재였다. 가끔 선생님을 대신해 같은 학우들을 처벌하는 권력자였다. 군대에서 완장은 처벌과 구타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징표였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식민지 시절의 일제는 헌병과 순사를 동원해 가혹한 통치 수단으로 삼았고, 6·25 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완장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한편으로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절대 반지가 됐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갑질 문화는 이러한 배경에서 성장한 것이다.

소설 ‘완장’은 1983년 출간됐다. 저자 윤흥길은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잘못된 권력을 비판할 목적으로 쓴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정치권에서 완장을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인용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한다.

주인공 임종술은 무식하고 표리부동한 인물이다. 그가 약 47만평에 달하는 판금 저수지의 감시원이 되면서 요절복통의 사건들이 시작된다. 임종술은 과거 목판 들고 장사할 때 시장경비나 방범들의 완장으로 숱한 고초를 당했다. 그에게 완장은 원한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감시원으로 임명된 후 얼마만큼 권위를 세우느냐에 따라서 선생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완장의 위력이 마을 밖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판금 저수지를 운영권을 가진 최 사장이 낚시하러 왔다가 융통성 없는 임종술에게 큰 봉변을 당한다. 그 현장에서 임종술은 감시원직을 박탈당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완장을 계속 차고 감시소를 지킨다.

완장은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저수지의 물을 빼기로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양어장 구실을 못한다면 더 이상 감시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임종술은 노발대발 반발했다. 익삼이는 해코지가 두려워 서둘러 피신했다. 운암댁은 인공치하의 붉은 완장을 찼던 남편이 연상돼 치를 떨었다. 남편은 자신의 오른손을 불구로 만든 일본 헌병 앞잡이 박씨를 인민재판으로 때려 죽였다. 이로 인해 박씨네 집안의 원한을 사고 결국에는 빨갱이로 몰려 국군 토벌대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완장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지서장과 순경이 난동을 부리는 임종술을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폭행을 당한다. 지서장은 운암댁을 찾아가 종술의 자수를 권유한다. 벼랑 끝에 몰린 운암댁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부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부월은 저수지 근처에 숨어있던 종술을 만나고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지금까지 불행의 상징이었던 완장을 시커먼 저수지 위로 던져버린다. 소설은 임종술과 부월이 조용히 도망간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나방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완장을 얻으면 이를 믿고 거만하게 행동한다. 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명함 속 직급이 올라가면 목에 잔뜩 힘을 준다. 올 한 해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감옥에 들어갔다.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알려진 우병우 역시 구속됐다. 드디어 정권이 바뀌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올 줄 알았다.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만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의 완장들은 이때다 싶어 권력에 마음껏 취하고 있다. 프랑스 사상가 알튀세르는 “히말라야 높은 설산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추위와 배고픔이 아니다. 저 아래 평원에 사는 코끼리가 자기보다 작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라고 했다. 권력은 잠시 머물다 가는 뜬 구름이다./도시·지역개발학 박사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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