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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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기억해야 할 광주의 딸 ‘천영초’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문학동네 1만3천500원

  • 입력날짜 : 2018. 01.14. 18:35
얼마 전 가족들과 영화 ‘1987’를 봤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루스벨트는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그야말로 격동의 역사다. 독재와 민주주의가 숱한 반목과 대립을 거듭하면서 도도히 흘려왔다. 1961년 5월 박정희 군부쿠데타를 시발점으로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심복의 총에 암살당하고, 국민들은 민주화의 봄을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1980년 5월 광주를 피를 물들고 정권을 차지한 전두환 군부독재의 연장, 또 다른 암울한 시대의 시작이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6·10항쟁을 통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가 오히려 커다란 절망감을 안겨줬다. 패배의 책임을 양김으로 돌리고 특히 ‘김대중’ 때문이라고 주홍글자를 새겼다. 그러나 노태우가 얻은 36.6%는 시대가 바뀌어도 죽지 않고 호시탐탐 민주주의 뒷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이들은 추악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자양분이 됐다.

영화 ‘1987’에서는 6·10항쟁의 도화선이 되는 대학생 이한열과 ‘영초언니’의 주인공 천영초는 공교롭게도 광주에서 자란 인물들이다. 이들 마음속에 뜨거운 정의감을 심어준 것은 1980년 광주의 참담한 봄날이었다.

주인공 천영초는 실존 인물이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72학번으로 당시 운동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작품은 박정희 유신 선포, 긴급조치 발동, 동일방직 노조 똥물 사건, 박정희 암살,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역사적 사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력과 정의감이 유독 강했던, 기자가 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했던, 제가 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문장가였던 한 여자가 어떻게 시대를 감당하고 몸을 갈아서 민주화에 헌신했는가를, 그 폭압적인 야만의 시대에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을 겪었는가를, 그 결과 어떻게 망가져갔는가를 증언하고자 쓰는 글”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기억의 일부를 잊어버린 영초언니에게 바치는 헌사의 책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고려대는 예전부터 남학생 위주의 학교였다. 학생운동에서도 여학생은 조연이나 도우미에 불과했다. 이때 천영초를 중심으로 10명의 여학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가라열’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한다. 가라열의 멤버인 이혜자가 학교 내 9·14시위를 주동하다가 경찰에 잡혀 들어간다. 이로 인해 천영초와 신명숙은 커다란 고초를 당하게 된다. 경찰은 ‘산천초목’ 사건에 이들을 억지로 엮은 것이다.

천영초는 최후진술에서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노리는 철저한 1인 독재정권이다. 유신헌법은 그런 목적을 위해 꼼수로 만들어진 초법적인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가둔 것이야말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천영초 징역 2년6개월, 서명숙·박종원 각각 징역 1년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박정희가 비명횡사하자 이들은 236일 만에 자유로운 몸이 된다.

저자 서명숙(제주올레길 이사장)은 “1979년 겨울, 독재자 박정희는 세상을 떠났지만 내 청춘은 여전히 차압당하고 압류당한 채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할 의욕도 없었다”고 참담한 심경을 밝히고 있다.

1980년 서울의 봄도 잠시, 서울역 회군으로 광주가 고립되고 있었다. 광주의 비극이 끝나고 통행이 허용되자 천영초와 서명숙은 직접 광주로 내려와서 학살의 상황을 상세히 알게 된다. 천영초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더 험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세월이 흘러 천영초는 정문화와 이혼하고 아들 교육을 위해서 캐나다로 이주해서 살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서울대 3대 천재로 손꼽히는 정문화는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먼저 세상을 하직한다.

2013년 3월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위헌적이며 초법적인 조치였음을 밝히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박정희 시대의 왜곡된 향수가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박근혜 때문에 박정희 우상과 신화도 덩달아 무너졌다.

유신시대, 호송차에서 내리면서 ‘민주주의 쟁취, 독재 타도’를 외쳤던 천영초, 그녀는 아직도 민주화 유공자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광주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천영초, 광주시 차원에서 그녀를 도와줄 방안을 적극 찾아보면 좋겠다./도시·지역개발학 박사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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