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월요일)
홈 >> 기획 > 류재준박사 책으로 세상읽기

[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어른들은 누구나 어린아이였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J.M.바스콘셀로스 지음 동녘 1만원

  • 입력날짜 : 2018. 01.28. 18:43
사람은 철이 들면 순수함을 잃는다. 어느새 탐욕에 눈이 멀고, 오지 않는 먼 미래까지 고민하는 어른이 됐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학교 수업 후 따로 남아서 공부해야 하는 부진아이자 말썽꾸러기였다. 한번은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 과자를 훔치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했다. 배고픔과 농사 돕기는 고달픈 일상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농사일을 너무나 싫어했다. 특히 소 여물용 풀베기는 여간 난처하고 곤혹스럽다. 피부가 약한 나는 풀독 때문에 아픔을 반복해야 했다. 탈출구를 찾고 있던 나에게 희망을 준 것은 마징가Z였다. 내 망상 속에 있던 마징가Z를 불러내 소똥 치우기와 거름 나르기를 시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지나고 보니 비록 가난했지만 젊고 건강하셨던 부모님이 계셨고,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던 그때가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다. 새삼스레 작은 악마 ‘제제’를 통해서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라는 물음처럼 아련한 상념에 젖어본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저자 바스콘셀로스는 브라질 출신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권투선수, 바나나 농장 노동자, 술집 웨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주인공 제제는 또 다른 저자의 분신이다. 소설의 제목 라임오렌지 나무는 제제가 사랑한 밍기뉴(새끼손가락)라고 부르는 작은 나무에서 기인한 것이다.

제제의 가족은 실직자 아버지와 혼혈인 어머니, 심술궂은 큰 누나(잔디라), 친절한 작은 누나(고도이야), 셋째 누나(랄라), 이기적인 형(또또까), 귀여운 동생(루이스)이다. 불행히 고도이야와 루이스는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제제는 실수하기 일쑤였고 걸핏하면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 이러한 제제를 이해해준 친구는 라임 오렌지 나무(밍기뉴)와 뽀르뚜가 아저씨였다.

밍기뉴에게 고민 상담과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말 타기를 하고 놀았다. 제제가 밍기뉴를 사랑스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난 애를 열두 명 낳을 거야. 거기다 열두 명을 또 낳을 거야, 알겠니? 우선 첫 번째 열두 명은 모두 꼬마로 그냥 있게 할 거고 절대 안 때릴래. 그리고 다음 열두 명은 어른으로 키울 거야.”

다정한 뽀르뚜가는 외롭고 상처받은 제제의 마음을 안아주고 돌봐준다. 어느날 제제가 자살을 하고 싶다는 고백을 듣고는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말고 그런 말도 하지마. 네가 그러면 난 어떡하니? 날 별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날 사랑한다고 했던 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마라.” 제제의 눈물을 닦아 줬다. 어느 날 제제가 학교 수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슬픈 소식을 듣는다. 뽀르뚜가의 차가 건널목에서 기차에 부딪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기 예수, 내 뽀르뚜가를 돌려줘. 내 뽀르뚜가를 다시 달란 말이야.” 제제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제제가 슬픔에 힘겨워 할 때 밍기뉴가 첫 번째 꽃을 피웠다. 제제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밍기뉴도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 있었다.

어느덧 마흔여덟 살이 된 제제는 사랑을 가르쳐 준 뽀르뚜가 아저씨를 여전히 그리워한다. 그 역시 사랑 없이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눈물로 고인이 된 아우와 누이를 그린다. 루이스는 스무 살에 생을 접고 고도이야 역시 스물넷에 목숨을 끊었다. 여섯 살 내게 다정함을 알려준 뽀르뚜가 아저씨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이 책의 헌사를 바치고 있다.

뭔가 부족하고 철없던 시절은 너무나 짧은 봄날이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어른이 되고,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에게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모진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는 자동차가 있는 집이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허름한 사글세 자취생의 입장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자동차와 작은 집도 있지만 그리 즐겁지 않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왜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풍요로움 속에서 상대적 빈곤감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듯 정말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문득 평생을 배우기만 반복하다가는 정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배움도 잠시, 행복을 찾는 것도 잠시, 번잡스러운 인간관계도 잠시 뒤로 미루고 철부지 시절로 되돌아 가보면 어떨지. 나 역시 한발 짝 뒤로 물러서 긴 호흡을 해본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고 그립다.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도시·지역개발학 박사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