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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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3) 박물관, 빵집보다 쉽다
시대 초월한 삶의 궤적…박물관엔 빵보다 더 깊은 향기가 있다

  • 입력날짜 : 2018. 02.07. 18:44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에 위치한 에디슨사이언스뮤지엄 (왼쪽)과 참소리축음기박물관 모습.
몇 해 전,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서민들의 생활권 깊숙이 들어오면서 동네 빵집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사회문제로 번진 적이 있다. 저마다의 세월과 특색으로 빚어진 구수한 빵 내음으로 새벽을 열어줬던 골목빵집은 문화 다양성과 콘텐츠는 물론 관광자원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다른 방식으로 반죽된 밀가루는 발효과정에서 소소한 추억과 스토리까지 가미되면서 단순한 빵의 가치를 넘어 유물의 아우라까지 획득하게 된다.

빵의 본 고장인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빵집은 골목의 한 복판에서 생명의 곳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 문화학 박사
오랜 역사를 지닌 빵집은 지역학이나 향토문화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자산의 관점에서 볼 때 골목빵집의 몰락은 빵만이 아니라 문화와 정신의 소실로도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생계와 결부된 생업의 관점에서 빵집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경 쓸게 많다는 추측이 든다. 유통기한과 신선도 관리, 맛좋고 영양가 높은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해야하는 장사 공통의 문법은 자치하더라도 상권이 우선 좋아야하며, 경쟁업종과의 차별화 전략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객들의 불만에도 대비해야 하며 복장, 간판, 포장지, 전단지 등의 디자인과 포장방식에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위생과 청결은 물론 최신 트렌드에 부합한 커피나 음료도 취급해야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신상품 개발, 대형 빵집처럼 이벤트나 쿠폰, 할인 등의 마케팅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외에도 빵집 밖에서는 도저히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분명히 도처에 숨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쉽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필자에게는 박물관을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것이 빵집의 그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박물관과 빵집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빵집과 달리 박물관은 근본적으로 영리나 생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인들이 친숙하고 수월하게 생각하는 빵집의 사례와 비교하더라도 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관을 포함한 박물관 설립기준이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다. 먼저 박물관에는 꼭 필요한 3가지조건이 있다. ‘자료(유물, 작품)’와 ‘건물(시설과 설비포함)’, ‘사람’이 그것으로, 이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자료다. 이 3대 조건을 포함한 박물관의 정의, 기능, 구분, 사업, 운영 등 가장 기본적인 문법과 공식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박물관은 규모에 따라 1종과 2종으로 나뉜다.

2종보다는 규모가 큰 1종에는 100점 이상이 2종에는 60점 이상의 자료가 필요하다. 전시실은 1종이 100㎡(30.3평) 이상, 2종은 82㎡(24.8평)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1종에는 사무실(또는 연구실)과 자료실(또는 도서실이나 강당)이 2종에는 1종에서 제시한 시설 중 한가지만 갖추면 된다.

반면 1-2종 공통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고 있는 자격취득 학예사 1명 이상 고용과 수장고, 도난 및 화재 방지시설, 온습도 조절장치 등을 마련해야 한다.

자료의 수, 전시장 규모, 학예사 수를 제외한 시설의 기준은 별도로 없다. 박물관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기준인 셈이다. 이처럼 박물관을 설립하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드나드는 동네 빵집보다 더 특별할 것도, 난해할 것도 없다.

이런 생각에서 필자는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박물관학을 강의할 때 박물관장 되기를 강의목표로 제시하곤 한다.

몇 해 전 서울의 모 대학에서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학부생 80여명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의 얘기다. 자동차공학, 국문학, 경제학, 생물학, 정치학, 도예학 등 전공도 다양한 학생들에게 박물관을 이야기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박물관과는 특별히 상관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박물관에 관심을 가지고 이 과목을 선택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강신청 전에 공지한 강의계획서에 ‘박물관장 되기’라는 생경한 목표가 신선했고, 유물의 이해, 미술관 탐방, 박물관 기획연습 등 세부강의 계획이 재미있을 것 같아 신청했다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강의초기, 박물관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은 이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기는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실제 유물도 가져와 보여 주기도 했고 박물관에 직접 데려가서는 시스템도 쉽게 설명하는 등 관심을 갖게 하려고 나름 애를 써보곤 했다. 그렇게 해도 마음을 닫고 있는 아이들은 여전히 있게 마련인데, 이럴 때 쓰는 특효약은 학생 한명을 지목해 가상의 박물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학생은 이름이 뭐지?” “네 성춘향입니다.” “그렇다면 춘향이는 입거나 바르거나 끼거나, 차거나, 신거나, 두르거나 하는 개인 물건이 몇 종(種) 몇 점(點)이나 될까?” “네? 음! 립스틱, 반지, 스타킹, 머플러, 머리핀 뭐 이런 거 말씀이신건가요?” “응 그래” “그런데 종은 뭐고 점은 어떻게 구분하는데요?”, “종은 의류, 신발류, 장신구류 등을 말하며 점은 그 종에서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예컨대 의류에서 셔츠, 니트 등을 말하지” “아! 그럼 다섯 종 300점은 되지 않을까요?” “응 그렇다면 소장품 수로만 볼 때 자네는 이미 박물관장이 됐네!”(1종 박물관 자료 기준 100점 이상) “네? 제가요?” “그럼! 바로 박물관을 차릴 수 있다네. 박물관의 이름은 ‘성춘향 의장신구(衣裝身具)박물관’ 어떤가?” “네?” “여기에는 어머니 꺼나 동생 것, 제아무리 명품이라도 자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필요가 없지. 그저 성춘향의 것이면 낡았건 구멍이 났건 상관없이 다 좋다네. 그렇다면 자네는 어느 정도 크기의 집에서 사나?” “네! 34평 아파트요.” “오, 그래! 딱 거기에 잘 정리해 진열하면(1종 박물관 전시실 규모: 30.3평 이상)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1종 박물관이 된다네. 다만, 한 가지 고민은 관람객이 없다는 게 문제겠구만.” 이 대목에서 아이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대신 자네가 유명해 지면 ‘톨스토이기념관’이나 ‘고흐미술관’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될 걸세.” 이렇게 하면 학생들은 박물관을 훨씬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수업은 끝났고 종강 후 반응을 조사해보니 수강인원의 반 이상이 나중에 박물관을 차리겠다고 답했다.

이러한 강의를 수년간 이어온 필자는, 훗날 이들에 의해 들어설 각양각색의 박물관을 떠올리는 행복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동네 빵집 여는 것보다 박물관 만드는 것이 더 쉽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곁에 좀 더 친근하고 새로운 박물관이 많아질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설립에는 간단치만은 않은 다양한 계기와 과정도 거치게 된다.

먼저, 국립과 공립은 국가나 지방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건립되며 여기에 소장될 자료는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짧은 구입과 기증, 교환과 기탁 등의 방식을 통해 수집된다. 또 개관을 한 후에도 공적자금을 투여해 보완하는 단계를 거쳐 더 완결된 형태를 만들어가게 된다.

반면, 민간의 영역인 사립은 장기적인 기간을 거친 개인의 수집품이 정제되고 정리돼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동생을 낳을 때 얻은 산후 후유증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의기소침해 있던 어린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사준 중고 축음기 한대가 계기가 된 세계적인 수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손성목 선생으로 그는 60년 가까이를 에디슨의 핵심 발명품과 세계 희귀 축음기, 영화자료 수만 점을 수집해 오늘날 미국에서도 부러워하는 3개(참소리축음기, 에디슨사이언스, 손성목영화)의 박물관을 설립했다.

30대 때 부산에서 한국전쟁으로 버려진 자료가 가슴 아파 한 점 두 점 모은 것이 국보와 보물 10점을 비롯해 40만여점의 출판·인쇄 자료로 이 분야 최초의 박물관(삼성출판)을 설립한 김종규 선생. 역시 30대 초반, 외교관이던 남편을 따라나선 중남미에서 내전의 혼란과 경제난으로 거리에 내몰린 예술품들을 보호하기위해 특유의 문화적 안목으로 수집한 것이 시발이 돼 오늘 경기도 고양시에 중남미 문화의 산실, 중남미박물관을 설립한 홍갑표 선생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먹고살기도 힘든 어려운 시절에 선각자적인 식견으로 우리 문화와 박물관 부흥의 초석을 놓아왔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입지를 확고히 한 이러한 박물관들도 그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한 계기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무형(無形)의 자료까지도 박물관의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는 오늘날, 박물관은 과거의 그것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세분화된 자료와 내용으로 우리들에게 소통과 교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SNS를 통해 하루에도 수없는 디지털자료가 생산되고 있다. 거기에 담기는 줄임말, 은어, 문자표, 이모티콘, 이미지, 영상 등은 트렌트, 스토리, 편년(編年)으로 드러나며 그 어떠한 수사보다도 잘 형언된 시대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자료 또한 이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 박물관의 자료로서 충분한 유물적 가치가 있다.

이쯤 되면 박물관이 빵집보다 쉽다고 믿어줄까….

아무리 그래도 박물관이 빵집보다 쉬울까?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의 ‘의기소침해있던 어린 아들을 위해’, 삼성출판박물관의 ‘한국전쟁으로 버려진 자료가 가슴 아파’, 중남미박물관의 ‘내전의 혼란과 경제난으로 거리에 내몰린 예술품을 보호하기 위해’와 같은 컬렉터들의 숭고한 동기와, 영리와는 무관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박물관에는 빵 보다 더 깊이 밴 향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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