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0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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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의 숨결 호남문화유산 30선](1) 천년도읍 나주목
목사골 나주, 전라도 숨결 깃든 역사문화도시 탈바꿈 한창
나주읍성·나주목관아 복원 전통체험 공간 조성
특색있는 관광콘텐츠 개발로 200만 관광객 유치

  • 입력날짜 : 2018. 02.08. 18:31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나주목 관아 일대 전경. 나주목 객사 금성관 주변 옛 관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나주시청 제공
900년간 전라남도의 본향이었다가 역사의 후면으로 밀려난 나주가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나주는 영산강문화권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적 자원이 풍부하고, 특히 조선시대 관아를 살펴볼 수 있는 문화자원이 구도심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 전국 제일을 자랑하는 나주목 객사 금성관을 비롯해 나주향교, 목사내아, 나주관아 정문 정수루, 향청, 주사청 등 관아건물이 도심에 밀집해 문화관광자원의 보고가 되고 있다.

나주시는 나주읍성과 나주목 관아를 중심으로 전라도 숨결이 깃든 목사고을 역사복원 사업을 한창 진행중이다. 나주목 관아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나주읍성은 둘레가 3.7㎞로 동점문, 서성문, 남고문, 북망문 등 4대 성문과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초기에 축조되어 600여 년 동안 호남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93년 12월 남고문 복원으로 시작된 나주읍성 정비사업은 2006년 10월 동점문이 복원되었고 2007년 6월에는 서성문터 발굴조사가 착수돼 2011년 10월 완공됐다. 마지막 북망문은 2014년 12월 공사가 발주돼 오는 8월 성문복원이 모두 완료된다.

나주시는 성문과 연결된 3.7㎞ 성벽을 정비해 읍성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성벽을 따라 천년 둘레길을 만들어 탐방로와 작은정원, 주변 음식점·카페 연계루트 등을 꾸밀 예정이다. 작은공원에는 라일락과 금목서, 은목서 등 나무를 심어 향기나는 쉼터로 가꾼다.

1872년 당시 나주목 고지도.
나주목 관아 복원은 객사인 금성관과 동헌(제금헌), 향청, 주사청, 내아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성관은 왕을 상징하는 지방궁궐로서 동서 양쪽에 붙어 있는 부속건물(동익헌·서익헌)은 객사로 사신이나 중앙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 왕께 충성을 다짐하는 망궐례를 치루던 곳으로 현존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며 2m가 넘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구한말 명성황후가 시해 당했을 때 빈소가 설치되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군청사로 사용되다가 1977년 원형대로 해체 복원되었다. 나주시는 금성관의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올해 10월 문화재(보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목사가 집무했던 제금헌은 2016년 동헌터 발굴을 시작으로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며 육방관속 건물도 복원될 예정이다. 특히 400평 규모 연못과 정자터가 발견돼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또한 관아 인근에 있는 나주향교도 주변 부지를 매입해 전통조경 정원으로 단장할 계획이다. 조선 초에 건립된 나주향교는 한번도 화재피해를 입지 않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임진왜란 중 한양의 성균관이 불타 없어지자 나주향교를 본받아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나주시는 복원된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해 관광객 200만시대를 열 방침이다. 나주목 동헌의 복원과 주변지역을 전통먹거리, 체험공간 등으로 조성하여 역사문화도시의 상징성 부여 및 나주향교, 나주읍성 등 인근 문화자원과 연계하여 전통 도시체험 관광의 명소로 가꿀 예정이다.

강인규 나주시장은 “전라도 정도 천년 역사의 중심지이자, 전남을 대표하는 최고의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주요 관광지 기반시설 확충과 미등록 신규 관광지 발굴을 통해 나주만의 특색있는 관광콘텐츠 개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나주목 객사 금성관은 현존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며 2m가 넘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나주시청 제공
나주역사는 전라도의 역사

고려 개국에 협력 900년간 목사고을
단발령에 맞서자 1896년 관찰부 폐지

나주는 약 900년간 전라남도의 수도였다. 1018년(고려 현종 9년) 전국 8목의 하나로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라도라 칭할 때 나주는 전남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로 말미암아 나주는 천년에 이르는 두터운 역사의 지층을 품고 있다. 그리고 전라도의 숨결과 문화를 잉태하는 발원지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나주는 역사의 땅으로 불린다.

영산강 유역에 자리한 나주는 선사시대 이래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어 고대문화를 꽃피웠다. 구석기~철기까지 시대별 유적이 고르게 발견되었으며, 특히 철기시대 옹관고분군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고분양식으로 독자적인 세력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뿐만아니라 나주는 고려 왕실과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후삼국 당시 나주는 견훤이 아닌 왕건과의 연대를 선택해 고려 건국에 힘을 실어줬다. 이후에도 나주출신 장화왕후에게서 혜종이 탄생해 어향으로 불리웠으며 거란 침입시에는 고려왕실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나주는 전남의 변함없는 중심지였다. 나주읍성은 1237년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나주목사로 부임한 인물은 모두 42명이었다. 또한 사족간의 대결인 기축옥사, 을미옥사에 휘말리는가 하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들이 큰 활약을 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나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게 됐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진압한 공로로 위상이 오르지만, 뒤이어 단행된 단발령을 계기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1896년 나주 유생들이 단발령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참서관 안종수를 처단하였다. 그해 6월 조정은 관제를 개정하면서 나주 관찰부를 폐지하고 이를 광주로 옮겼던 것이다.

/박준수기자 jspark@kjdaily.com

/나주=김관선·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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