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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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 ‘한자리에’
이강하 타계 10주기 맞아 양림동에 ‘이강하미술관’ 개관…7월31일까지 ‘이강하의 길’展
남구, 옛 양림동사무소 리모델링
유작 400점·유품 134점 등 보관
생전 작업실 구현 ‘화가의 방’ 눈길

  • 입력날짜 : 2018. 02.12. 18:43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됐던 이강하 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가 이강하미술관 1층 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이강하미술관 제공
딱 10년이다. 무등산 화가, 영산강 화가로 불렸던 고(故) 이강하(1953-2008) 작가는 마지막 작품 ‘무등산의 봄’을 남겨놓고 2008년 3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무등산의 봄’은 끝내 보지 못했다. 5년간 직장암 투병을 했고 더 이상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결코 붓을 놓으려 하지 않던 그의 치열한 예술혼은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가 떠난 세월만큼 작품들도 함께 잠자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강하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이강하미술관’이 지난 9일 개관했다.

광주 남구청이 옛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해 만든 이 곳은 지상 2층 규모이며, 1층은 70평 규모의 전시장, 2층은 학예실, 수장고, 회의실, 자료실 등으로 사용된다. 이곳에는 지난해 11월 유족이 남구 측에 무상 기증한 고인의 유작 400점과 유품 134점 등이 보관돼 있다.

이 작가는 1953년 영암에서 태어나 서른 살이 넘어서야 조선대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1980년 당시 5·18 운동에 참여해 대학에서 정치선전물 등을 만들고 배포하다 지명수배자 신세로 2년 동안 도망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양림동에 사는 친척집에서 숨어살면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작품활동을 하면서 30여년간 지냈다. 양림동에서 보낸 시간 동안 ‘무등산 연작’, ‘영산강 사람들’, ‘맥’ 등을 그리며 화가로서의 화풍이 정립됐다. 딸 이선(현 이강하미술관 학예사), 아들 이조흠 작가도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작가가 생전 머무르던 양림동 작업실 모습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미술관 입구에 마련된 ‘화가의 방’을 통해서다. 작업실 그대로의 모습을 구현해 둔 곳이다.

작가가 실제 사용했던 이젤, 해외여행이나 작품을 담고 다녔던 트렁크, 의자, 작업복, 하다못해 다 닳아진 붓과 몽당연필, 커터칼 하나까지도 소중히 보관돼 있다.

광주와 양림동을 사랑한 ‘무등산 화가’로 알려진 고(故) 이강하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이강하미술관이 지난 9일 문을 열었다. 사진은 이강하미술관 외관. 작은 사진은 ‘화가의 방’ 내부 모습.
/이강하미술관 제공
유품 뿐 아니라,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참고한 책, 모아뒀던 자료, 음반, 인문·사회·문화 분야별 신문 스크랩까지 작가의 손길이 닿은 유품도 심혈을 기울여 정리했다.

미술관 개관을 맞아 ‘이강하의 길’이란 주제의 전시가 오는 7월3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에선 양림동에 거주하며 작가 본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렸던 작품 ‘무등산’을 비롯해 ‘영산강 사람들’, ‘맥’ 등 2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인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도 전시장에 내걸린다. 무등산을 지키는 다양한 인종의 12명의 여자 누드가 12.5m 크기의 캔버스에 펼쳐져 있어 압권이다.

이강하 작가의 딸 이선씨는 “미술관이 기념관 형식으로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이강하 작가의 예술정신으로 끊임없이 생동하는 공간이었으면 한다”며 “원화 작품도 중요하지만 유품도 함께 보면서 작가가 인간, 화가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공감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전시 문의 062-674-8515)/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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