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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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벵골만 해적의 포구 ‘치타공’ (2)
우리 한민족 후손이라 일컬어지는 ‘차크마족’

  • 입력날짜 : 2018. 02.20. 18:38
해상실크로드의 항구로 번성했던 치타공의 오늘날 모습.
역사 속에 번성했던 해상실크로드의 옛 항구 ‘치타공’! 현재도 방글라데시 최대 항구다. 도시 서쪽은 산악지대다. 미얀마, 인도, 방글라의 3개국의 국경 산악지대(CHT)다. 이 곳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우리 한민족 후손으로 여겨지는 ‘차크마 족’도 살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어렵게 찾아 갔다. 호수와 밀림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랑가마티’지역, 소수민족들의 전통문화를 재현해 놓은 치타공의 ‘민족박물관’, 해상실크로드의 옛 항구 치타공의 재래시장(바자르) 등지에 그들의 모습과 풍습이 남아 있었다.

문병채 (주)국토정보기술단 단장
▶낭만이 깃든 해상실크로드 옛 항구

야자수가 바람에 흐느적거린다. 망고나무가 늘어져 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모든 것이 낯설다. 얽혀있는 전선, 낯선 외국인이 신기한지 시선을 떼지 못하는 까무잡잡한 아이들. 낯선 것들이 귀한 시간을 붙잡고 있다.

파텡가 해변! 치타공 시내에서 약 22㎞ 떨어진 곳에 있다. 도심 속과는 달리 깨끗하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과거 수많은 해상실크로드를 따라 무역했던 상선들이 지나갔던 길이다. 현재는 관광지화 돼 있었다. 다양한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들로 차 있었다. 특히 인근에 있는 포즈다르핫(Fouzdarhat) 해변은 피크닉 객들이 많이 와 있었다.

해질녘에 가면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볼 수 있다기에 저녁 무렵까지 기다렸다. 노을과 함께 검고 진한 모래가 바다를 검은 빛으로 물들였다. 흑백의 멋들어진 사진을 연출했다. 전통의상인 ‘살루아까미즈’를 입고 찰랑이는 파도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방글라데시 여인들의 모습이 이질적이다.


치타공 ‘민족박물관’에서 직원(차크마족)과 학예연구사와 함께 기념사진.
▶ 호수와 밀림…아름다운 ‘랑가마티’

줌머족은 미얀마, 인도, 방글라 국경 산악지대(CHT)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방글라 서부 국경 산악지대(CHT)에서 ‘랑가마티’(Rangamati)지역에 특히 많이 거주한다. 랑가마티 지역은 치타공에서 동쪽으로 약 77㎞ 지점에 있다. 차로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2시간가량 이동해야 한다.

호수(캅타이호)와 밀림으로 둘러싸인 매우 아름다운 경관지역이다. 원시의 자연을 자랑한다. 근래에는 생태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원시림 속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리조트 ‘페다팅팅’이 인상적이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다보면 군데군데 섬들이 떠있고 언저리마다 이들 소수 종족의 어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수상가옥이 많다. 호수 가운데 있는 섬에는 옛 왕궁과 불교사원도 있다. 배를 타고 둘러 볼 수 있게 돼 있다. 원주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민속박물관과 전통시장도 둘러볼 만 하다. 수공예품, 직물, 상아 등의 기념품 질이 우수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줌머족은 다시 12개의 종족으로 세분된다. 차크마, 마르마, 트리퓨라, 탄창갸, 미로, 루샤이, 큐미, 책, 컁, 바움, 팡콰, 링 등이 그들이다. ‘줌’이란 화전농업을 말하며, ‘줌머’는 ‘화전농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12개 세부 종족들은 모두 언어, 혈통, 문화, 종교가 다르다.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선진문화와 고립된 생활을 해 왔다. 지형적 정책적 영향이었다. 때문에 매우 낙후돼 있다. 반면에 그들 고유의 전통문화가 살아있다.

이 지역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버마 땅이었다. 독립과 함께 인도로 포함됐다. 그 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방글라데시를 도왔다. 이 지역을 자치구로 인정해주는 대가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줌마 족이 반기를 들자, 살해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성폭행하고, 주거지를 불태웠다.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 땅이다.


차크마 족들의 옛날 모습을 찍은 사진(치타공 민족박물관 소장).
▶ 외모·생활양식이 우리와 비슷한 ‘차크마족’

우리 후손으로 일컬어지는 차크마족(Chakma)도 이곳 랑가마티에 가면 볼 수 있다. 카살롱과 카르나풀리 강 중류지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이들은 몽골리안이다. 한국 사람들처럼 태어날 때 몽고반점도 있다. 외모가 우리와 거의 같다. 생활양식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마그족·티프라족·텐충기아족 등과 혈통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들은 선조들이 오랜 옛날 동북아에서 이주해 왔다고 믿고 있다. 여러 학자들이 당나라에 멸망해 중국으로 끌려갔던 고구려나 백제인의 후손일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는 종족이다. 생김새와 풍습 등이 매우 유사하고, 설화로 내려오고 있는 그들 먼 선조들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이들은 다른 부족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씨족 조직’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오고 있다. ‘괭이’와 ‘쟁기’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 여성들은 솜씨 좋은 직물을 짠다. 문양도 독특해 타 종족들 것과 다르다. 오히려 동아시아 국가들의 문양에 가깝다. 신부가 신랑이 사는 마을에 도착할 때 돼지를 잡고 제물로 올리는 전통이 있다. 벵골인이 경멸하는 돼지고기를 먹는다. 개, 소, 돼지, 염소 같은 가축들도 기른다. 뿐만 아니라 이곳 종족 중 유일하게 장자 상속이다. 종교도 샤머니즘을 믿는다. 무당(shamans, 샤만·제사장)이 자연의 영혼들과 함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도 유사하다. 보이(봄) 사비(새해) 등 유사 단어도 많다.


‘소수민족박물관’에 진열된 차크마족 의복과 생활도구.
▶ 차크마 족의 삶을 간직한 ‘소수민족박물관’

치타공에는 소수민족박물관(Ethnological Museum) 있다. 1773년 건립된 영국 동인도회사의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방이 수백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치타공 시내가 잘 바라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야경이 좋아 밤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여기에는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유산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예술작품과 유물들이 각기 특색이 있어서 볼 만하다. 무기, 꽃병, 의복, 배, 가위, 대나무 파이프, 목재 선반 등이다. 부족의 생활과 기록물도 그림,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일부 공간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 당시의 자료도 전시돼 있다. 동부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12개 부족과 29개 소수민족에 관한 자료다. 랑가마티, 반돌번, 카그라추리 지역 등이 그들의 대표적인 거주지역들이다. 특히 차크마족 전시관에 가볼 만하다. 우리와 유사한 얼굴, 풍속과 생활도구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원(Shah Amanat)도 함께 들려보면 좋다. 시 외곽에 ‘2차 세계대전 용사묘역’이 인기 있다. 버마전선에서 산화한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인도, 미얀마, 아프리카, 네덜란드 및 일본 전몰자 묘소(700기)가 있는 곳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당시에 우리나라 위안부 묘도 있다고 한다. 다만 군인이 아니어서 찾을 수 없을 뿐이라고 한다.


▶ 치타공 역사와 한국 진출

치타공 항구의 역사는 매우 길다. 이미 AD 300년경에 유럽(지중해 국가)에까지 알려졌다. 치타공은 티페라(Tippera)지배부터 불교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700년경부터는 아랍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800년 부터는 아랍과 페르시아 상인들에 의해 큰 항구로 발전했다. 1300년경에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됐다. 1340년 소나르가온(방글라데시의 고대 수도)의 술탄이 치타공을 해상실크로드의 거점으로 키웠다. 1400년경에는 아라칸 족에게 넘어갔다. 아라칸 족은 해적 행위를 했다. 1666년에는 무굴제국이 점령했다. 16세기부터는 서구 열강이 쳐들어 왔다. 먼저 포르투갈이 100년 이상 독점하다가, 1685년에는 영국이 들어와 지배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의 중요 항구로 중국과 미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현재 치타공은 방글라데시 수출입 물량의 80%를 담당하고 있었다. 인구는 약 370만명이다. 또한 수출 산업단지에는 38개의 한국 업체가 들어와 있다. 신규 산업단지가 건설되고 있으나, 한국 투자자들이 부지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을 따기라고 한다. 우리에겐 내일을 기다리는 땅이다.

치타공은 우리 인천항과 같이 조수 간만의 차가 엄청나게 높은 지역이다. 때문에 바지선을 이용해 환적 한다. 점점 늘어나는 물동량을 보조하기 위해 항만개발을 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들어와 있다. 일명 일대일로의 ‘진주 목걸이 전략’이 행해지는 항구 중 하나다. 대규모 해군력과 상선들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을 건설하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중국 군함이 배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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