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0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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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 찬란한 꿈을 꾸다
이현
아동문학가

  • 입력날짜 : 2018. 03.08. 18:30
“이제 끝났구나.”

자라는 내내 원하며 꿈꾸었던 대학 입학에 실패했을 때, 원하지 않은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이번엔 반드시 될 거라 믿었던 취업에서 낙방되었을 때, 마음 속 깊이 믿고 의지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 된 것 같고, 울음이 울컥울컥 치솟는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던 일터에서 은퇴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일처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나 듣지 못했던 사람이나, 얼굴이 매우 고왔던 사람이나 평범했던 사람이나 특별히 다를 게 없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뜨겁게 일했던 사람일수록 허탈감이 크다. 은퇴와 함께 ‘끝난 사람’이 된다. 사랑의 상처야 혼자 꾹 참으며 아무도 몰래 견디어 낼 수도 있지만 은퇴는 다르다. 알고 지내는 모두에게 공공연하게 공표가 된다. 나는 이제 끝난 사람이라고.

우치다테 마키코의 소설, ‘끝난 사람’은 ‘은퇴 이후의 삶’을 테마로 하고 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며 출세를 위해 살았던 한 남자의 삶을 추적한 소설로 온갖 역경을 딛고 출세에 성공하는 과정이 아닌, 불완전 연소된 채 회사에서 버림받은 은퇴 이후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나, 아직 끝나지 않았어!”

주인공 다시로 소스케는 도호쿠 지방 출신으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 입사해 한동안 승승장구하지만 임원 진급을 눈앞에 두고 출세 경쟁에서 패해 자회사로 좌천된 이후 정년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강한 엘리트 의식에 아직은 기력도 충분한 만큼, 은퇴한 사람, ‘끝난 사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취미도 친구도 없이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주인공은 은퇴와 함께 주어진 무한정한 시간 앞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실의에 빠진다. ‘나는 아직 젊어, 일할 힘도 의지도 충분해, 젊은 사람들보다 경험도 많잖아’ 못 다 이룬 꿈을 찾아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하고 싶지만, 이미 ‘끝난 사람’으로 취급되는 주변 분위기로 인해 의욕마저 잃게 된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쓴 줄 알았다’, ‘은퇴자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시니어 독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미련과 야심, 공허감, 노년의 삐걱거리는 부부관계 등, 은퇴 후의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누구나 비낄 수 없는 은퇴의 충격과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젬베가 참 신나고 재미있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밝고도 환한 목소리 덕분에 덩달아 즐거움이 된다. 평생을 교직에 머물다 은퇴한 남편과 함께 젬베도 배우고, 걷기도 하고, 도서관에도 가고, 하루가 참으로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지인의 말에 힘이 난다. 특별한 취미생활도 없이, 그저 교직에만 충실했던 분이라 은퇴와 함께 모든 걸 놔 버리면 어떡하나, 의기소침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잘 견디며 함께 해주니 참으로 고맙다는 지인의 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며칠 사이, 햇살이 참 따사롭다.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공기도 어느새 안녕, 봄봄봄 봄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인 것처럼,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이다. 스스로 즐겁게, 담대히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또 다른 세상이다. 찬란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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