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4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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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비린한 바람 전쟁터 죽은 사람 뼈에 불어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66)

  • 입력날짜 : 2018. 03.13. 19:00
定州途中(정주도중)
원재 정추
정주관문 우거진 풀 자갈밭에 사람 없고
바다의 비린 바람은 죽은 이들 뼈에 불어
흰 느릅 많은 곳에서 말들이 자주 운다.
定州關外草萋萋 沙磧無人日向西
정주관외초처처 사적무인일향서
過海腥風吹戰骨 白楡多處馬頻嘶
과해성풍취전골 백유다처마빈시

정주가 평안북도 남부해안에 자리 잡은 지역인 만큼 전쟁의 참화를 가장 많이 받았던 지역이 아니었나 싶다. 가는 곳마다 전쟁이 남기고 간 흔적이요, 열려져 있는 것마다 흩어져 정비되지 못한 고을의 흔적을 볼 수 있어 지나는 과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것이 혼란스러운 고려 말 시대를 잘 반영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주관문 밖은 풀이 우거지고, 자갈밭엔 사람이 없고 해는 서쪽을 향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바다의 비린 바람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 뼈에 불어’(定住途中)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원재(圓齋) 정추(鄭樞·1333-1382)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1353년(공민왕 2) 이제현을 지공거로 한 과거에 급제한 이후 예문검열 및 여러 관직을 거쳐 좌사의대부에 올랐다. 1366년(공민왕 15)에 인척인 이존오와 함께 신돈의 죄를 탄핵하다가 도리어 큰 고초를 당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정주관문 밖은 풀이 우거지고 / 자갈밭엔 사람이 없고 해는 서쪽을 향하는구나 // 바다를 지나온 비린 바람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 뼈에 불어 / 흰 느릅나무 많은 곳을 지나니 말이 자주 운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정주로 가는 도중에’로 번역된다. 정주는 평북 남부 해안에 있는 시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토탄(土炭)과 금이 난 곳이다. 홍길동의 작가 허균도 같은 ‘시제’로 다음 시를 썼다. [사신길 가고 또 가 서관을 벗어나(王程??出西關) / 어젯밤에는 꿈속에 고향에 돌아갔소(昨夜鄕園夢裏還) // 날 덥고 말도 지쳐 걷기가 정말 괴로워(暖日羸?行正苦) / 하늘가 어느 곳이 정주의 산천인가(天邊何處定州山)]라고 했다. 시제는 같지만 시상은 다르다.

정주는 그만큼 평양을 이어서 가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거쳐 가는 한 길목이었던 같다. 시인은 ‘정주로 가는 관문 밖은 지금 풀이 자욱하게 우거져있는데, 자갈밭에는 사람은 없고 해는 서쪽을 향해가고 있다’고 했다. 유독 밭이 많고 산지를 개간한 곳이어서 자갈밭이 많은 것은 지금의 북한을 생각하게 된다.

화자는 전쟁의 회오리가 가시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황해 바다를 한 바탕 지나온 비린 바람이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 뼈에 불어, 흰 느릅나무 많은 곳을 지나니 말이 자주 운다는 시상이다. 시적인 흐름의 여운이 6·25전쟁을 방불케 하는 스산한 느낌을 받는다.

※한자와 어구

定州: 평양북도에 있는 지명, 몽고 침략을 물리쳤던 전쟁터. 關外: 관문 밖. 草萋萋: 풀이 우거지다. 沙磧: 자갈밭. 無人: 사람이 없다. 日向西: 해가 서쪽으로 향하다. // 過海: 바다를 지나다. 腥風: 비릿한 바람. 吹: 불다. 戰骨: 전쟁 유골. 白楡: 흰 누릅나무. 多處: 많은 곳을 지나다. 馬頻嘶: 말이 자주 울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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