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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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벵골만의 황금도시 ‘소나르가온’
중국 황제가 칙사까지 보내 교류하려 했던 황금도시

  • 입력날짜 : 2018. 03.20. 18:40
도심 곳곳에 자리한 건축물. 화려한 유럽풍의 문양과 조각, 건물 구조 등이 이채롭다.
고대도시 소나르가온!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남쪽으로 30㎞ 지점에 위치한 도시다. 두 강(라키아 강·달레슈와리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해 수운이 편리했다. 벵골의 여러 지역으로 쉽게 연결된 곳이었다. 당시 지리적 요충지였다. 이곳에 옛 해상실크로드 상인들이 ‘황금의 도시’라 불렀던 도시가 있었다. ‘판암’은 그 중심지였다. 지금도 화려했던 고택들이 즐비해 당시를 반영하고 있다. 해상무역으로 돈을 번 힌두상인들이 세운 시가지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벵골 만 역사 품은 ‘소나르가온’

방글라데시의 옛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다. ‘소나르가온’(Sonargaon)이란 이름은 ‘수바르나그라마’(Suvarnagrama)라는 고대 이름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곳은 이미 BC 269-232년 아소카와 마우리아 왕조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여 융성의 기틀을 다졌다. 8-17세기 뱅골지방을 다스린 ‘팔라 왕조’(8-12). ‘찬드라 왕조’(13-15), ‘데바 왕조’(16-17)의 수도였다. 당시에 ‘황금도시’라 불렸던 곳이다. 한 때 세상의 모든 물건을 사고 팔았다.

한 시대를 찬란하게 보낸 실크로드 포구였다. 당시 중국 황제가 칙사까지 보내 교류하고자 했던 곳이다. 한 시대를 찬란하게 보냈던, 오래된 해상실크로드 항구다. 그러나 1611년 이곳을 정복한 무굴제국이 포르투갈과 해적들에게 노출되기 쉬운 위치라는 이유로, 보다 깊숙한 오늘날의 수도 ‘다카’로 왕궁을 천도시킨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번화함은 온데간데 없고, 무너져가는 옛 건물만 텅 빈 채 남아 있다. 마치 유령도시 같다.

이 도시에는 지난 역사의 흔적들은 담고 있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옛 왕궁이었던 자이날아베딘 민속박물관(Jainal Abedin)과 고알디아 모스크(Goaldia)는 꼭 가 봐야 할 곳이다. 지난 역사의 흔적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이날아베딘 민속박물관에는 데바왕조 시대의 찬란했던 문화를 볼 수 있다. 공예품과 역사 유물들이 당시를 대변하고 있다. 특히 술탄 지아수딘(1399-1409)을 모신 ‘판즈피르 사원’은 꼭 봐야 한다. 거대한 석조건축물로 손상되지 않은 채 잘 보존돼 있다. 이 사당은 단단한 거대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방글라데시 모스크의 대표적 건축물이기도 하다.

‘고알디아 모스크’는 물라 히자바르 마크바르 칸이 세웠다. 파이남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사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방글라데시 모스크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소나르가온의 중심 시가지인 ‘판암’. 해상무역으로 돈을 번 힌두상인들의 저택이 즐비하다.
▶화려한 영광 간직한 ‘판암’

판암 나가르(Panam Nagar)는 ‘소나르가온’의 중심 시가지이다. 판암은 해상무역으로 돈을 번 힌두상인들의 거주지였다. 그들은 이곳에 아름답고 화려한 저택들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영국의 힌두-무슬림 분리정책으로 힌두가 떠나기 시작한 후 사람이 살지 않는 죽은 도시가 돼 갔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이 나온다. 방글라데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건물들은 모두 찬란하게 화려하다. 여태까지 이슬람 도시만 보다가 ‘힌두교 도시’를 보니 무척 색다르다. 당시 부유했던 힌두 상인들이 건설했다. 술탄의 무덤, 모스크, 사원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은 대부분 중세 건물과 무굴제국 시대의 것이다.

옛 유적 속을 걸으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 건물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산책하듯 걷는 맛이 좋다. 왕이 살았던 궁궐은 박물관이 돼 있고, 그 앞으로 거상들이 살던 저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곳곳에 힌두사원도 자리하고 있다. 고택은 총 52채에 이른다고 한다. 폭 5m의 600m 거리에 줄지어 있다. 시가지에는 당시 번성했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세월의 흔적이 담겨 고풍스럽다. 야외 건축박물관이다.

계속 걷다보니, 내부를 공개하는 건물들도 있다. 건물마다 관리 번호가 붙여 있어,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마치 유령도시 같이 사람이 살지 않는다.

도심의 건물들은 300년 가까이 방치된 탓에 곳곳에 손상이 나 있고 붕괴 위기에 처해있다.
텅 빈 적막함이 옛 번영의 허무감을 준다.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쉽다. 200년 가까이 방치된 탓에 곳곳에 손상이 나 있다. 붕괴 위기에 처해 있는 곳도 있다.

옛 실크로드 상인들의 생활공간을 멋대로 상상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건물마다 스토리가 있을 법한데….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서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내부를 공개하는 건물보다 입구를 막아 놓은 건물이 더 많다. 허물어져 있어 안전성 문제와 거지들이 몰래 들어와 생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폐쇄했다고 한다. 이 역사지구는 출구가 따로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줄지어 선 오랜 된 건축물들이 다시 새롭게 보인다.

▶다수의 역사인·여행가들 방문

‘황금의 도시’에 걸맞게 이곳에 역사적으로 많은 여행가들이 방문했다. 그들은 흔적을 남겼고 그들 저서를 통해 외부 세계에 이곳의 찬란한 문화를 알렸다. 이들의 역할은 침략자를 몰고 오기도 했지만 때로는 희망과 꿈의 땅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1281년에 무슬림 성직자(Sharfuddin Abu Tawwamah)가 처음 도착했다. 그는 무슬림 거주지(Khanqah)를 만들고, 이슬람학교(Madrasa)를 개교했다. 이후 술탄이 지배하는 무슬림국가가 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곳은 이븐바투타(IbnBatuta), 마후안(MaHuan), 피치(Fitch) 등이 다녀갔다. ‘이븐바투타’는 1346년 이곳에 왔다. 그리고 이곳이 중국, 자바(인도네시아), 몰디브 등과 활발히 교역하는 항구라고 했다. 또한 이곳 술탄이었던 파크루딘(Fakhruddin)을 ‘낯선 사람, 특히 수피를 사랑한 저명한 주권자’라고 묘사했다.

‘마후안’은 이곳을 1432년 정화원정대가 7차 항해 시에 방문했다(정화원정대는 1405-1433년 7차례 원정을 했었다). 홍바오(Hong Bao)를 팀장으로 한 정화함대의 별동대의 일원(이슬람 통역가)이었다. 당시 그는 저서 ‘해안조사서(Yingyai Shenglan, 1451)’를 썼다. 그 저서에는 이곳을 성곽이 매우 견고한 곳이라 소개하고, 특히 이곳 최고급 옷감을 처음 중국에 알렸다. 그는 이곳에서 생산된 여성 옷인 ‘무슬린’(Muslin), 그 중에서도 귀족층이 입던 ‘하사’(khasa)라 불리는 최고급 천을 소개했다.

‘피치’는 1586년경 이곳에 왔다. 그는 이곳에 온 최초의 영국 상인이었다. 그가 목격한 기록(자료)은 동인도회사 설립에 귀중한 자료가 됐다. 그는 인도를 거쳐 육로로 이곳에 온 후, 미얀마를 거쳐 말라카에서 포르투갈 배를 타고 영국으로 귀향했다.

▶ 정화원정대의 별동부대 ‘홍바오 함대’

1431년 정화원정대는 제7차 원정을 떠났다. 정화의 7차 원정에는 두 명의 정사(正使)와 다섯 명의 부사령관이 함께 했다. 그 부사관 중 하나가 ‘홍바오(HongBao) 함대’였다. 이 함대는 처음 떠날 때부터 별동대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때문에 항해코스를 달리했었다.

정화가 탑승한 메인 함대가 벵골만을 가로질러 캘리컷을 거쳐 호르무즈에 정박하는 동안에, 이 함대는 참파, 자바, 팔렘방, 시암을 거쳐 방글라데시(소나르가온)에 도착했다. 그리고 벵골, 치타공, 손갈가온, 가우울 등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어서 캘리컷에 도착해서, 마후안(Ma Huan)을 포함한 7명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로 가는 원주민 배를 태워 ‘메카와 메디나’에 보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함대는 아프리카 동해안 ‘모가디슈’ 일대까지를 원정했다.

당시 마후안(Ma Huan)은 무슬림(아랍어) 통역담당 이었다. 그는 무슬림으로 개종한 중국인이었다.

그는 불경 번역을 위해 아랍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원정 중에 지리, 정치, 기후, 환경, 경제, 풍속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의 여행기는 1451년 완성됐다.

책 제목은 ‘해안조사서’(Yingya Shenglan)였다. 이 책은 동남아와 인도의 역사에 대한 중요 자료다. 또한 생물학자에게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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