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6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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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5) 6·13 지방선거, 두마리 토끼잡기
“농어촌 유휴 공간, 지역 기억하는 재생의 박물관 만들자”

  • 입력날짜 : 2018. 03.21. 19:02
근대 생활사 자료가 거래되고 있는 오프라인 경매 모습.
지난해 출생아 수가 40만명(35만7천700명)도 채 되지 않아 전문가들이 말하는 심리적 저지선까지 무너졌다고 한다. 이는 초저출산 국가(1.30명 이하) 중에서도 단연 꼴찌다. 이에 더해 기대 수명에 다다른 80세 이상 고령 인구는 늘어나 사망자 역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따라서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인구의 자연증가율도 역대 최저로 집계됐다. 반발만 내디뎌도 끝 모를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인구절벽이 코앞에 직면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풍전등화처럼 위태롭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자국보호주의 강화와 같은 총성 없는 살벌한 무역전쟁 속에서 조선, 철강, 자동차, 건설 등 우리경제를 지탱했던 산업군은 재 궤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장기경제 침체, 취업률과 소득의 저하, 거주비 등의 생활물가상승은 가정경제를 위협한지 오래다.

나아질 기미 없는 녹록지 않은 내외부 사정으로 볼 때 단시간에 인구증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인구감소에 따른 공동화현상은 농어촌이 보다 심각해, 신입생 없는 학교가 속출하고 요양원은 늘어나고 있다. 명절은 물론 평시 대낮에도 사람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로 농어촌지역은 황폐해지고 있다.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 문화학 박사
노인들은 겨울잠 든 곰처럼 골방을 지키다 낮이 돼서야, 마을회관으로 나와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면 적막감에 쌓인 집으로 다시 향한다. 여느 농어촌에나 볼 수 있는 일상이다. 최근 농촌지역에는 FTA 등으로 붕괴된 처지를 달래주기라도 하듯 정부가 현대식으로 크게 지어준 마을회관이 생경하게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휑해 보이지만 한분 두 분 노인들마저 떠나게 되면 또 다른 공허함으로 남게 될까 걱정이다.

수년 전 필자는 가톨릭 주교회의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논산, 강경, 익산, 전주, 정읍 등 충남과 전북지역에 산재한 가톨릭 문화유산을 답사한 적이 있다. 이 지역 곳곳에 알알이 박혀있는 옛 공소와 성당도 일요일 미사 때 사람을 채우지 못해 마을회관과 같은 신세로 남아있는 곳이 많았다.

덩그러니 서있는 마을회관과 성당 주위로는 소박한 가족사를 타임캡슐처럼 기억하고 있는 텅 빈 집들이 낡은 세간 살이 만을 끌어안은 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돌담은 무너지고 처마는 기왓장보다 잡초가 주인행세를 하다 사람들의 온기를 잃은 용마루마저 내려앉게 되면 종국에는 가족의 희로애락과 함께해온 생활사자료 모두가 사라지고 만다.

최근 인터넷 옥션이나 작은 오프라인 경매, 일부미술품 상에게 근대생활사자료가 새로운 거래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봄이 됐는데도 한산하기만 한 농촌마을.
수준 높은 고미술품은 이미 고갈됐고 경기마저 좋지 않아 거래가 뚝 끊겼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따라서 새로운 활력을 근대생활사자료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딱지, 1960-1970년대에 입었던 교련복과 책가방, 국회의원들이 제작해 배포했던 한 장짜리 달력과 포스터, 어느 집이나 어김없이 TV 위에 놓여있던 못난이 삼형제 인형, 누구나 습관처럼 간직했던 빛바랜 졸업앨범 등,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의 흔적들이 신 유물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이런 자료들 대부분은 폐가와 함께 사라져갔으며, 일부는 고물상으로 팔려나가 재활용되거나 분리수거의 대상이 됐다. 그나마 세월을 버텨낸 시골집들이 당시의 시간을 붙잡은 채 패총(貝塚)처럼 이들을 끌어안고 있어서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주요 박물관의 진열장에는 5천년 역사를 이끌어온 지배계층의 증거물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기층민들의 것들은 민속이나 민예(民藝)라는 이름으로 구분지어 가치 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기층민을 대변하는 이것들은 지배층의 그것에 비해 뛰어나거나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대중성이나 소소한 감동, 체감적인 친근성을 주기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또한 다원적인 콘텐츠의 확보가 제반 영역에서 큰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날의 트렌드와도 잘 부합한다. 그럼에도 기층민들의 자료가 부족한 것은 잦은 전쟁과 외침 등에 따른 질곡의 역사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유교관과 장례풍습, 빈곤과 더불어 이를 보존과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낮은 인식 등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여행자유화, IT를 통한 감각의 진화, 삶의 질 추구, 주5일제 시행, 여가기회 확대 등으로 우리도 자아를 적극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자존적 인식의 틀도 갖춰지게 됐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농어촌 지역의 마을회관과 폐교, 교회나 성당 등에 지역사회의 소소한 기억을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버려지는 각종 생활사 자료들.
마을회관에는 마을 사람들의 회갑, 칠순, 돌잔치 사진을, 폐교에는 기수별 졸업이나 운동회, 소풍 사진, 졸업장을, 성당과 교회에는 교우들의 세례식이나 성탄절 사진, 주보 등을 전시해보면 어떨까?

만약,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라면 마을에 터를 잡기 시작한 역사를 추적해 성씨 계통도를 전시하는 것도 특별할 듯하다.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마을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록물, 농기구, 가제도구와 같은 생활사 실물을 함께 전시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기증도 적극적으로 받아 수집된 자료가 풍부해지면 명절이나 시제(時祭) 등 특별한 시기에는 집집마다 순서를 정해 단출하게나마 특별전을 개최할 수도 있다. 또한 고향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이 소싯적에 연마했던 특기를 살린 서예나 공예품 등을 전시한다면 마을은 또 다른 활기와 온기로 채워질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단편적인 이벤트들이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이를 단초로 입체적 시너지를 확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운영경비는 도회지에 나가있는 동향인들의 능동적인 모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들에게는 고향과 관련소식을 정기적으로 알려줘 관심을 높일 수 있으며, 지역 농산물의 판로와도 연계할 수 있다. 이렇게 활력을 되찾게 되면 출향인들은 고향을 찾게 될 것이며, 귀향이나 귀촌할 동기도 제공하게 된다. 소박한 볼거리에 목말라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관광과 여가의 질적 고양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현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싶다.

이를 더 발전시켜보면 ‘○○리(里)생활사전시관’이나, 각 마을별로 정체성이 분명하면서 의미가 큰 자료를 취합한다면 ‘○○군(郡)생활사박물관’으로도 확장할 수도 있다. 물론 모바일에서 볼 수 있는 사이버뮤지엄으로의 연동은 말할 필요도 없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에 도전하는 후보자들의 단골공약으로 공립박물관 건립이 부상할 시기가 됐다. 당선이 되고나면 큰 고민 없이 제시한 공약을 짧은 임기 내에 완결하기 위해 실행을 서두르게 된다. 그러나 박물관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따라서 ‘거창한 건물, 텅빈 박물관’, ‘방향성의 부제, 소장품의 부족’은 늘 언론을 통해 말썽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박물관의 외형과 규모에 관심이 없다. 작지만 소소한 감동과 체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만족한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제 몸에 맞아 편하고 입을수록 정이 가는 옷과 같은 그런 박물관을 원한다. 그래야만 지속적인 유지와 운영도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농촌은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몇 안 남은 노인들마저 돌아가시게 되면 우리들의 탯줄이 묻힌 어머니 같은 터전이 사라지겠다는 불안감이 크다. 힘겹게 유물을 품고 세월을 버티고 있는 농어촌 곳곳에 산재한 낡은 수장고들을 하루빨리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네 소소한 일상의 기억들을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보존하고, 소외된 농어촌 지역도 살려낼 수 있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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