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7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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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영암 기찬묏길
“달은 靑天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

  • 입력날짜 : 2018. 04.10. 19:32
기찬랜드에 자리한 가야금산조기념관 뒤로 월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영암 땅에 들어서자 불꽃처럼 타오르는 봉우리가 시선을 집중시킨다. 영암의 상징인 월출산이다. 매년 몇 차례 만나는 월출산이지만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월출산을 만날 때면 보고 또 봐도 그리운 연인처럼 가슴 설렌다.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을 가진 영암(靈巖)이라는 지명도 월출산에서 비롯됐으니, 영암은 월출산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고장이다.

월출산은 사철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나는 봄철의 월출산을 좋아한다. 월출산에 봄이 오면 동백꽃에서 시작해 매화꽃, 진달래꽃을 거쳐 벚꽃에서 절정을 이뤄 그렇지 않아도 예쁜 산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기찬묏길 2구간을 걷기 위해 영암 ‘기찬랜드’에 도착했다. 기찬랜드에 도착하니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월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월출산 용추골 하류에 자리한 기찬랜드는 월출산 북서쪽 바위봉우리들과 아름답게 어울려있다.

왕인박사유적지 곳곳에서는 벚꽃이 만개해 화사함을 뽐낸다. 사진은 유적지 내에 있는 연못과 월악루.
기찬묏길 2구간은 기찬랜드 표지석 앞에서 시작된다. 표지석 앞에서 바라보니 오른쪽에 품격 있는 한옥으로 지어진 가야금산조기념관이 바라보인다. 기념관에는 여러 가지 악보와 가야금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을 조성하고 가야금산조기념관까지 세운 데에는 가야금산조 창시자인 악성 김창조선생이 이 마을 출신이기 때문이다.

김창조(1856-1919) 선생은 이곳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세습 율객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거 회문리는 풍류객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김창조 선생은 7-8세 때부터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해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대금, 퉁소 등 모든 악기를 잘 다뤘다. 30세가 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890년부터 1895년 사이에 산조라는 음악형식을 완성하게 된다. 1915년 60세를 넘기면서 전주와 광주, 심지어 대구 등지를 오가며 연주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가야금산조기념관 옆에 조훈현바둑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조훈현바둑기념관 앞을 지나 월출산 자락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다. 길가에 빨갛게 핀 동백꽃이 화려하면서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동백꽃은 잘생긴 월출산 바위봉우리들을 쳐다보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힌다. 동백꽃의 유혹에 월출산 바위들은 잔잔한 미소로 답한다. 이렇게 바위와 동백은 서로 사랑에 빠졌다. 바위와 동백의 사랑에 질투심이 생긴 활엽수들은 연두색 잎을 내밀면서 무뚝뚝한 바위들을 유혹한다. 봄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서로 사랑하게 만든다.

도갑사로 통하는 도로 근처에 이르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백색세상이 됐다.
잠시 밭길을 지나는가 싶더니 길은 대동저수지로 이어진다. 저수지 제방 위에 올라서자 누구랄 것도 없이 발길을 멈춘다. 앞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들 만으로도 아름다운데, 푸른 물위에 다시 그려진 모습까지 펼쳐지니 이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빼어난 풍경화 한 폭이 아닐 수 없다.

제방 데크길을 걷다보니 골짜기 뒤로 구정봉이 다가오고, 마지막으로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도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저수지 안쪽 호반에 팔각정자도 있지만, 제방 데크길을 걸으면서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점점 더 넓게 보여주는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월출산을 보고 읊었다는 시구가 떠오른다.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들 만으로도 아름다운데, 푸른 물위에 다시 그려진 모습까지 펼쳐지니 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빼어난 풍경화 한 폭이다.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南州有一畵中山)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

(月不靑天出此間)


저수지 아래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마을의 가옥들이 옹기종기하다. 마을 아래 도갑사와 왕인박사유적지로 통하는 도로에는 벚꽃이 만개해 하얀 물결을 이루며 흘러간다. 산비탈에는 곳곳에 진달래가 붉게 피어 미소를 보낸다. 간간이 만나는 산수유와 매화도 꽃을 피웠다. 예년 같으면 동백-산수유-매화-진달래-벚꽃 순으로 꽃을 피울 텐데, 올해는 2월까지 엄청 추웠다가 3월부터 갑자기 따뜻해져 하순에는 늦봄에 가까운 날씨가 되다보니 봄꽃들이 꽃피는 순서를 잃어버리고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

밭에서는 겨울을 견뎌낸 보리가 푸릇푸릇 생명력을 과시한다. 푸른 보리는 무뚝뚝한 바위에도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초록색은 무생물에게도 봄옷을 입혀준다. 구림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벚꽃행렬은 봄의 환희다. 길은 밭길을 따라 이어지다가 임도를 따르기도 한다. 임도 곳곳에 핀 벚꽃이 우리의 마음을 화사하게 해준다. 정말 산뜻한 봄나들이다. 벚꽃이 만개해 구림리를 거쳐 왕인박사유적지로 가는 도로는 자동차가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지만 월출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기찬묏길은 한적해서 좋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출가한 절로 알려져 있는 월산사.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주변의 작은 돌로 쌓아놓은 돌탑들이 눈길을 끈다. 길가에 줄줄이 돌탑이 서 있나 싶더니 월산사라는 조그마한 절이 나온다. 월산사는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출가한 절로 알려져 있다. 월산사에 들어서니 월출산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가 출가한 사찰답게 그 터가 범상치 않다. 요사채 옆에 피어있는 수선화와 할미꽃이 사찰에도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도갑사로 통하는 도로 근처에 이르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백색세상이 됐다. 도갑저수지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건너 운치있는 숲길로 들어선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숲 사이에 활엽수들이 연잎을 내어 산뜻하고 예쁘다.

이제 길은 왕인박사유적지로 이어진다. 중간 전망대에 서니 도갑사 입구 구림리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넓은 영암들판도 펼쳐진다. 들판 뒤로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른다. 왕인박사유적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예쁘게 핀 동백꽃들이 미소를 보내준다.

왕인박사유적지로 내려서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벚꽃만개시점에 맞춰 전국에서 모여든 상춘인파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벚꽃이 피면 왕인박사유적지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월출산 문필봉 자락에 자리를 잡은 왕인박사유적지는 왕인박사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왕인박사유적지는 왕인박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왕인묘(王人廟)와 전시관을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시설물을 갖추고 있고, 이곳에서 1.3㎞ 떨어진 문필봉 중턱의 문산재·양사재·책굴·왕인석상까지도 포함한다.

유적지 곳곳에서는 벚꽃이 만개해 화사함을 뽐내고 있다. 형형색색의 튤립이 하얀 벚꽃과 어울리니 금상첨화다. 아름다운 꽃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도 꽃으로 활짝 피었다. 왕인박사유적지 출입문인 영월관을 나서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휘날리는 꽃잎이 머리위에 살포시 앉는다. 행복하다.


※여행쪽지

▶영암 기찬묏길은 월출산 북쪽에서 서쪽자락을 잇는 길로 월출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트레킹 코스다.
▶1구간 : 천황사주차장→기체육공원→기찬랜드→용추폭포→기찬랜드(7.4㎞/2시간 소요)
▶2구간 : 기찬랜드→월산사→도갑저수지 아래 삼거리→왕인박사유적지→용산천(10.9㎞, 3시간 소요)
▶왕인박사유적지 근처에는 식당이 많다. 월출산이야기(061-472-0507)의 토종닭코스요리(육회, 주물럭, 백숙)가 일품이고, 소박하면서도 신선한 음식을 맛보려면 군서면소재지에 있는 초수동순두부(061-471-5137)가 제격이다. 이 식당에서 직접 만든 해물순두부가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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