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8일(월요일)
홈 >> 특집 > 전라도천년의 숨결 호남문화유산 30선

[전라도 천년의 숨결 호남문화유산 30선] (4) 목포근대역사거리
옛 조계지 일대 일제강점기 자취 고스란히
1897년 네 번째로 개항…한때 6대 도시로 발전
원도심 역사문화유산 도시마케팅 자원으로 활용

  • 입력날짜 : 2018. 04.19. 19:14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왼쪽)과 옛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건물.
전라도 사람들에게 목포는 아련한 슬픔이 배어있는 곳이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의 애잔한 가락이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현대사의 굴곡이 깊게 패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목포는 해방 이후 우리민족의 삶의 방식대로 개발되고 현대화하는 과정을 거쳐왔지만 아직도 상당부분 일제강점기 당시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를 놓고 일부에선 일제잔재라며 청산을 부르짖기도 하고, 일부에선 수치의 역사라도 보존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평가와 해석이 엇갈리면서도 목포 원도심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원도심을 역사문화자원으로 개발해 도시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데 모아지고 있다.

목포가 역사의 전면에 떠오른 것은 조선의 국운이 쇠잔한 시기와 맞물린다. 열강들이 봉건주의의 깊은 잠에 빠져든 동아시아에 근대식 군사력을 앞세워 탐욕의 야욕을 드러내면서 한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한산한 어촌 목포의 운명도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것이다.

목포는 개항이전 만호진(萬戶鎭)이 설치된 작은 포구였다. 그런데 19세기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강압에 의해 1897년 조선의 네 번째 개항장이 됐다. 목포 개항은 형식적으로는 타국과의 조약에 의한 조약항이 아니라 조선정부가 스스로 개항을 선포하는 자개항(自開港)의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강요에 의한 개항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개항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개항 이후 목포항에는 일본인들이 다수 몰려와 조계(租界)를 장악하고 무역업과 토지침탈에 열을 올렸다.

일제가 목포를 개항장으로 선정한 것은 영산강의 나들머리에 위치하고 있어 내륙소비지까지 증기선으로 직접 화물 운반이 가능하며, 나주·능주·광주 등의 대시장을 배후에 끼고 있어 화물의 집산장으로 적합하고, 전라도의 쌀을 운반해가기가 가장 편리한 항구였기 때문이다.

개항이 되면서 일본인들은 유달산 남서쪽 아랫자락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송도(지금의 동명동 어판장부근), 서쪽으로는 온금동 어항까지의 약 1㎢의 임해지대를 방조제를 쌓아 매립해 일본인 거류지로 조성했다. 시가지는 격자형 도로망 체계를 갖췄고 도로폭은 대략 10m정도였는데 지금도 당시의 도로폭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한인거주가 금지됐다. 때문에 한인들은 주로 유달산기슭에 터전을 잡고 현재의 북교동, 죽교동, 남교동 등에 밀집해 조선인 마을을 형성해나갔다.

일인거류지중 당시 1급 택지는 유달산 남동측 기슭의 비매립지로 이곳에는 일본영사관이 자리잡았다.

일본영사관 건물은 목포 최초의 서양식건물이면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현재는 근대역사문화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뒤편 산기슭에는 유사시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산에는 봉안전이 설치돼 신사참배가 이뤄졌었는데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운동 일환으로 봉안전 건물이 철거됐다.

영사관 건물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일인 거류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이 일대는 경찰서, 우체국,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등 수탈의 주요 기관들이 한데 몰려 있었다.

이 가운데 동척건물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다. 1920년 건립된 이 건물은 전남 각지에 소재하고 있던 17곳의 농장을 관리했으며, 동척지점 가운데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둔 제1의 지점이었다. 창립당시에는 형식적으로는 한일양국의 이중국적을 지닌 회사로 출발했으나 1910년 국권상실과 더불어 일본국적의 회사가 됨으로써 식민지경영의 수탈창구 역할을 수행하면서 성장했다. 목포지점의 경우 당초 1909년 영산포에 동척출장소가 설치돼 있었는데, 목포가 개항지로 급속히 성장하자 1920년 6월 이곳으로 이전해왔다.

원도심으로 불리는 오거리는 1897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의 주무대가 됐던 옛 조계지 일대로 한 많은 일제강점기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개항장은 기능에 따라 크게 3개의 블록으로 구분된다. 상권의 중심거리인 본정(혼마치), 공장지대인 중정(나까마치), 그리고 환락가인 앵정(사쿠라마치)이 그것이다.

오거리 본정(혼마치)은 일제시대 가장 번화한 거리로 은행과 쇼핑가, 다방 등이 즐비해 신문물이 유입되는 창구였다. 지금도 호남은행(현 목포문화원)-화신백화점(김영자 화실), 갑자옥(현 모자점) 등 당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해방 후 이곳은 하당 신도심이 개발되기 전까지 중심상권으로서 탄탄한 기반을 다져왔다. 은행과 쇼핑가, 병원, 농기계판매소 등이 밀집해 서남권 상거래의 일번지로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이곳에는 술집과 다방 등 유흥가가 구색을 갖춰 1960-1970년대 최하림, 김현 등 걸출한 문인들이 교유하며 문학과 예술담론을 꽃피우던 예향목포의 자양분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유달산의 한 지류인 일명 ‘러시아산’ 아래 일제시대 향락문화의 상징이었던 앵정(사쿠라마치)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곳에 눌러앉은 유곽들은 술과 기생, 가무가 어우러져 밤마다 사쿠라꽃같은 웃음이 피어나는 밤문화의 현장이었다.

홍성철이 쓴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1930년대 금화동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유곽으론 주길정, 현해루, 만직지루, 삼교루 등이 있었고, 조선인이 경영하는 유곽으로는 일출정, 명월루, 영춘정 등이 있었다. 1936년 목포에는 요릿집이 12개소, 음식점이 336개소, 카페가 20개소, 청루가 7개소였는데, 이들 업소에 수용된 도색노예는 모두 425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온금동 조선내화 공장 뒷편 주택들은 공장직원의 사택이거나 어부들의 살림집이었다. 그래서 다순구미 마을의 아이들은 동갑내기가 많고, 제삿날이 같은날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마을 남정네들이 휴어기(休漁期)에 집에 머물며 아이를 잉태하고, 출어중에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 때문이다.

‘조금새끼’란 말은 바로 휴어기때 낳은 아이를 말한다. 이처럼 목포는 어느 곳에나 서민들의 애환이 구절구절 녹아 흐르고 있다. 아리랑고갯길을 넘어 이훈동정원을 지나 다시 시내쪽으로 향하면정혜원이 유달산 오르막길에 자리하고 있다. 기와지붕이 가파르게 솟은 일본식 법당건물과 요사채가 고작인 아담한 사찰이다. 정혜원은 일제강점기 창건돼 불교 포교활동의 거점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해방후 목포 유명인사들의 교류장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인 고은 시인과 불교정신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과의 첫 만남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당시 승려였던 고은시인이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정혜원으로 포교를 나왔다가 전남대 상대생이던 재철(법정스님 속명)을 만나 출가하는데 도움을 줬다. 또한 고 시인은 재철학생을 ‘현대문학’에 수필을 발표하도록 도왔으며 효봉스님에게까지 소개했다고 한다.

정혜원을 나와 다시 오거리로 시선을 향하면 동본원사(목포별원)가 나온다. 동본원사는 목포에 세워진 최초의 일본식 불교사원으로 1898년 4월 일본영사관 부지에 임시로 포교소를 설치하고 포교에 착수했다.

그러나 초기 목포거류지에서 포교활동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거류민 자제의 교육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무안동에 자리한 동본원사는 1930년대 지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양식으로 일제패망후 목포중앙교회건물로 사용됐으며, 2007년 목포시가 매입해 전시공간(오거리문화센터)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방된 지 73년, 항구도시 목포는 일제 강점기 호남수탈의 창구로서 영욕을 간직한 채 역사의 유산들을 걸머지고 있다. 오늘날 그 유산들이 새롭게 재해석되고 도시발전의 요소로 활용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화기 풍속을 재현한 물지게 체험 장면.
‘1897개항문화거리’ 활용 관광도시로

개항기 300여 건축물 테마 박물관 조성
근대문화거리 야간 탐방 프로그램 운영

목포시는 올해부터 원도심의 역사문화 유산을 활용한 뉴딜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시는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2017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 지자체서 2개 사업이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1897개항문화거리’에 산재한 근대건축물 등 역사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해 도시의 장점과 차별성을 적극 부각시켰다는 분석이다.

‘1897개항문화거리’ 사업은 목포시 만호동 일원 29만㎡에 2022년까지 5년간 총 사업비 326억5천만원을 투입해 근대문화거리 복원, 선창복합타워·테마이야기관 조성, 주거환경 정비 및 청년창업지원주택 건설 등을 통해 낙후된 원도심을 재생하게 된다.

‘1897개항문화거리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중심시가지형 단위사업전략 및 목표를 바탕으로 중심상권 회복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집객시설 조성 등을 통한 쇠퇴 도심의 중심기능 회복, 문화·예술·역사 자산을 연계·활용한 지역 정체성 강화를 목표로 한다.

쇠퇴한 상권의 회복을 위해 사업지역에 산재한 개항 전후에 조성된 건축문화 자산을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해 역사문화 기반을 통한 도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근대 및 개항시기의 300여개의 건축물의 가치와 테마를 재조명해 체계적인 보존 및 활용으로 전국 최대 규모의 건축자산 박물관으로 조성한다.

또한 시는 이달부터 ‘응답하라, 1897년 목포 모던타임즈’라는 주제로 만호동 목포진 역사공원을 중심으로 원도심 일대에 산재해 있는 근대문화재를 야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개항기 밤거리를 걸으며 구루마 투어, 물지게 지기 등 색다른 문화체험과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는 ‘문화재 야행’ 행사다.

임진택 목포시 문화유산책임관은 “목포 근대유산은 보존상태가 양호해 활용가치가 큰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 유치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박준수기자 jspark@kjdaily.com

/목포=강효종·정해선·손일갑 기자


목포=강효종·정해선·손일갑 기자         목포=강효종·정해선·손일갑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