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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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동지(驚天動地)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8. 04.25. 19:53
내일, 남북한 정상은 21세기 세계사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흔든다)할 사건을 만들어낼까?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D-1, 미리 나온 정보를 종합해보면, 경천동지할만한 대사건, 지구촌을 뒤흔들만한 대전환의 드라마가 연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의 소원인 ‘광주 송정역에서 기차타고 유럽가기’ 소원이 곧 성취될지 모른다. 필자는 살아생전 아들·딸 손잡고 대륙열차 타고 지구촌을 횡단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반도라는 대륙에 살면서도 일본처럼 비행기를 타야만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섬나라 같았던 남한이 드디어 북한의 철길과 고속도로를 달려 평양 거쳐 신의주~베이징~울란바토르~파리~런던을 원스톱으로 달릴 수 있는 날, 정말 현실이 될지 모른다.

초등학교때부터 간절히 두 손 모아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2018년 4월27일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3월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이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내일, 그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공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상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하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치러질 예정이어서 국내외 취재진 규모도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울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전 세계 41개국 460개 언론사에서 2천850명의 언론인이 취재 등록을 했다. 준비위는 정상회담 당일 현장에서도 기자 등록을 받을 예정이어서 남북 정상회담을 취재하는 기자는 3천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촌 모든 도하 언론이 27일 오전 판문점 북측 지역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을 생중계한다. 일단 판문각 앞에서 김 위원장의 등장을 기다리는 남측 취재진의 모습과 그 시각 판문점 일대가 먼저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펼쳐진다. 이어 군사분계선 이북의 판문각에서 통일각 방향으로 멀리 김 위원장이 탄 차량이 북한의 개성과 판문각을 잇는 72시간 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온다. 김위원장이 판문각에서 내려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을 경우 판문각과 자유의집 사이 일렬로 놓인 두 푸른색 건물인 중립국감독위원회(T2)와 군사정전위원회(T3) 사이에 서게 된다. 여기에 콘크리트판으로 만들어진 군사분계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한다. 판문각에서 그대로 차량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화의집까지 이동하게 되면 그대로 차량 이동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한 뒤 북측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남측에 방문하는 ‘방명록’을 작성하게 된다. 이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환영의 인사를 전하고, 두 정상은 함께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한다. 메시지 전달이 끝나면 두 정상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평화의집으로 이동하게 된다.

전 세계에 이 광경을 생중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구촌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의 해빙을 알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동당 중앙위원회전원회의를 통해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담은 결정서를 채택했다.

이제 4월28일 이후 한반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뒤이어 북미정상회담도 5월 말이나 6월 초에 개최될 예정이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취한 정책노선 전환은 분단과 냉전의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크지만 관계개선을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봄이 온다’에서 ‘가을이 왔다’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했던가. 인내한 시간만큼 더 많은 인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1945년 2차대전 패전으로 분단된 독일이 1990년 10월 통일되기까지 일곱 차례의 동·서독 정상회담이 있었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전 네번, 동독정권 소멸이 시작된 후 화폐·경제·사회 통합과정에서 세번이다. 동방정책을 표방한 서독 빌리 브란트와 동독 빌리 슈토프의 1970년 3월 동독 에어푸르트회담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그 해 5월 2차 대좌를 했고, 3차 회담은 11년이 지난 1981년 12월 서독 헬무트 슈미트와 동독 에리히 호네커 간에 이뤄졌다. 그리고 통일의 방아쇠가 된 가장 극적인 헬무트 콜과 호네커의 4차 회담이 1987년 9월 서독 본에서 열린다. 콜은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의 연설을 동독 주민에 한마디도 빼지않고 생중계할 것을 요구했다. 콜은 이 때 “독일민족은 자유로운 자결권(自決權)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동독 주민들에 강한 어조로 전했다. 그리고 불과 2년 뒤인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리라. 필자는 더도 덜도 말고 살아생전 비행기 안타고 열차나 버스로 대륙을 횡단해보고 싶다. 서울~신의주 경의선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완성된 상태다. 오랜 방치로 인해 녹이 슬었겠지만, 평창 합의처럼 남북이 의기투합하면 재개가 가능한 노선이다. 2015년 벽두, 박근혜 정부도 ‘서울~신의주·나진 한반도 종단철도’를 추진하겠다고 천명하지 않았나. 남북철도 연결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일관된 대북 정책이었다. 당시 정부는 군사분계선으로 잘린 한반도 종단철도를 먼저 잇고, 이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중국대륙 횡단철도(TCR)와 연결해 유럽으로 간다는 구상이었다.

남북정상간에 전화선이 연결됐다. 그리고 만난다. 철도, 고속도로, 하늘길 트이면…. 그래서 문재인·김정은 정상이 노벨평화상 타는 날 되면…. /ssnam48@kjdaily.com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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