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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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내가 미쳤째 수필 박인순

  • 입력날짜 : 2018. 05.07. 18:38
어느 홀어머니가 고명딸 하나를 애지중지 키우는 낙으로 살았다. 생김새도 예쁜 것이 하는 짓도 기특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모친의 원대로 좋은 직장도 가졌다.

이제 시집만 보내면 딸의 시중에서 벗어나겠다 싶어 시집을 보내려 했지만 효도 한답시고 딸이 한사코 독신을 고집했다.

계절 없이 들어오는 청첩장에 축의금만 나갈 뿐, 딸년은 사십이 내일 모레 건만 시집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남독녀 외동딸인데다 일찍이 애비 사랑도 못 받고 자란 자식이다. 딸년 뒷바라지 문제가 아니라 시집보낼 것이 급선무였다.

모친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내가 너, 시집가서 아이 낳으면 내가 키워 줄께” 시집 좀 가라고 애원을 했다. 엄마 성화에 못 이겼는지, 연분을 만났든지 사십 턱밑에서 결혼을 하자 바라던 외손녀딸을 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예뻐하지 않던 사람도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법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달덩이 같은 아이 보는 치사랑에 푹 빠졌다.

그런데 건강하고 예쁜 아이가 엄마 아빠만 부를 뿐 다섯 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손가락질과 고개만 끄덕이며 교감을 나눈 것이다. 할 때 되면 하겠지 하면서 또래 아이들은 못할 말이 없고 웬만한 노래도 하고 동화책을 읽는 아이도 있는데 보통 근심이 아니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영민한 아이인데, 늦게 본 아이라 부모들이 전문병원 진단을 여러 곳을 다 다녀봤지만 정상소견이었다.

유아원 갈 나이에 엄마 아빠 소리밖에 못하니 기르는 당신 탓인가 싶어 푸념으로 “아이고 내가 미쳤째” 가사 일을 하면서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모친은 딸 뒷바라지에 중년의 세월을 보내다 외손녀 까지 키우다보니 있던 친구도 멀어져 제대로 된 여행 한 번을 못가보고 집안에 갇혀 자기 사생활이 없었다. 자신도 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남이 하는 취미 생활도 하고 모임에도 나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싶었다. 아무런 장애가 없이 건강하고 온갖 재롱을 부리며 탈 없이 커가는 아이가 말이 늦으니 또 하나의 근심거리가 당신 탓이란 자책감이 들었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면서 발목 잡힌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한심스러워 무심코 ‘아이고~호 내가 미쳤~째’ 탄식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뛰어 놀던 아이가 갑자기 할머니 앞으로 달려오며

“그렁께 내가 미쳤 째~!!”

아이가 태어나 다섯 살이 되어 첫 번째 쏟아낸 탄성이 ‘내가 미쳤째’였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말이 터진 기쁨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대화와 언어 중에 왜 하필이면 그 말이 아이의 뇌리에 박혀 첫마디로 그 말이 튀어 나왔을까. 무심코 자신이 입버릇처럼 내뱉은 말이…. 아이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생각 없이 부지불식간에 쏟아놓은 말로 후회와 어리석음으로 가슴 치는 일이 한두 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중국의 5대 명재상 중에 풍도(馮道·822-894)가 그의 설시(舌詩)에 재앙을 불러오는 입이라 하여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이라 했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했다. 언어학자들은 욕은 일반 언어보다 4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사향노루는 배꼽 아래 향 때문에 죽고 호랑이는 고운 가죽 때문에 죽는다. 고기는 그 맛있는 살 때문에 죽고 인간은 입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언어폭력은 한 번 박히면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때에 맞는 격려와 사랑스럽고 살가운 말은 희망이요 기쁨이자 감동을 줘 얼음장 같은 마음도 녹여준다. 때에 맞는 말이 천금과도 같고 고운 말은 천 냥 빚도 갚는다는 고금의 진리다.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타고난 기질이 늘 통탄케 하는 어리석음에 자책을 하는 나 자신이 미운 것이 어디 한두 번이든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간곳없고 무시로 터져 나오는 입방적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말’은 언변이 좋고 달변이 아니라 때에 맞게 남을 배려하며 의중을 살펴 상대방이 받아줄지를 헤아려야 한다. 거기에 말을 전달하는 태도가 진실하다면 가장 잘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상대 의중을 알고 이치에 합당한 말은 참으로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약점인 핸디캡은 한두 가지는 다 가지고 산다. 천성적으로 이기적이어서 자기 기준에서 하는 말 때문에 신용과 믿음을 얻기도 하고 미움과 불쾌감이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또한 상대방도 자기 기준에서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고 싶어 하는 특성이 있기에 말 잘해서 뺨 맞을 일은 없다 했으나 ‘아와 어를’ 골라들어 말로 입은 상처는 의사도 못 고친다고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쏟아낸 말이 아차 하는 순간에 깃털처럼 날아가 버린다. 무심이건 작정이건 감쳐진 그늘에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의 중요성과 책임의 후유증을 겪어왔고 때에 맞는 말의 값어치를 실감하며 살아들 간다.

한 마디의 말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말, 생각 없이 푸념으로 내뱉은 말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새겨둘만한 귀감이다.

<약력> 수필문학 등단,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등단, 광주문협·광주수필·서은문학 회원, 수필집 ‘어느 날 거울 앞에서’, 현 아시아 문화시민네트워크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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