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수요일)
홈 >> 기획 >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
강변 벼랑길 걷다보면 낙동강이 유유히 다가오고

  • 입력날짜 : 2018. 05.08. 18:17
개비리길을 걷다보면 아름답게 흘러오는 낙동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자락에 기대고 있는 강변마을이 평화롭게 바라보인다.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을 걷기 위해 경남 창녕군 남지읍으로 달려간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산줄기는 어느새 옅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개비리길 입구 창나루주차장에 도착하자 ‘산과 들의 억새향연’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형물이 서 있다. 주차장 아래쪽 고수부지에는 유채밭이, 위쪽에는 억새밭이 펼쳐진다. 개비리길은 낮은 산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시작된다. 숲속에서는 소나무와 사이좋게 자라고 있는 활엽수들이 잎을 활짝 피워 산뜻한 기운을 전해준다. 2층으로 된 창나루전망대에 올라서니 낙동강에 합류하는 남강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솔숲길을 걷는데 육남매나무와 삼형제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다섯 줄기의 소나무 가운데에 산벚나무가 한 그루 있어 하나의 나무처럼 보인다. 한 형제인 소나무 다섯줄기와 산벚나무의 모습이 여섯 남매 같다고 해서 육남매나무라 불렀다. 육남매나무를 지나 만난 삼형제소나무는 같은 크기의 세 줄기가 나란히 솟아올라 사이좋은 형제 같다.

남지읍 낙동강 고수부지에는 유채밭과 억새밭이 펼쳐진다. ‘산과 들의 억새향연’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형물이 서 있다.
마분산 삼거리에서 일행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는 삼거리에서 지척의 정상을 다녀온다. 마분산(180m)의 원래 이름은 창진산이었다. 마분산이라는 이름에는 의병장 곽재우의 호국정신이 깃들어있다. 곽재우장군은 자신의 말에 벌통을 매달아 몰려오는 적진에 뛰어들게 했다. 난데없이 벌떼의 공격을 받은 적군은 대열이 흐트러졌고, 우리 군사는 혼란한 틈을 이용 왜군을 기습공격해 대승을 거두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말이 적탄에 맞아 숨지게 됐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곽재우 의병장은 토성 안 의병무덤 뒤에 말 무덤을 만들어줬다. 이후로 창진산은 말무덤산(마분산·馬墳山)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토성은 그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고, 말 무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강변으로 내려서니 경상남도 의령군과 창령군을 가르며 흘러오는 낙동강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낙동강 주변 산봉우리들은 강물위에 그림자를 내려놓는다. 산자락에 기대어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강 건너 마을이 평화롭다.

강변에는 작은 배 두 척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위쪽에 박진교라는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다. 지금이야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능은 사라졌지만 작은 배 두 척이 이제는 사라진 나루의 추억을 되새겨준다.

다섯 줄기의 소나무 가운데에 산벚나무가 한 그루 있어 하나의 나무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육남매나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하류에 창녕함안보가 있어 강에서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보 일부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아직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래도 보 일부를 개방한 후 죽어가던 강이 복원되고 있다니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인공적으로 설치된 보를 철거하고 강을 재자연화 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고즈넉한 강변길을 따라 걷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길 아래로는 낙동강이 푸르고 길가에서는 연두색 나무가 싱그럽다. 지금 걷고 있는 강변은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는 지형이라 4대강 사업을 하면서도 제방을 만들 필요가 없어 원래 모습대로 살아남았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영아지마을 중학생들은 남지중학교까지 10리가 넘는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영아지마을 사람들이 남지에 장을 보러갈 때도 이 길을 걸었다. 하지만 영아지마을 위쪽으로 도로가 뚫린 이후로는 이 길을 이용하는 주민이 없어짐에 따라 길은 잡초만 무성해졌다.

묵어가던 옛길을 되살려 낸 것은 ‘개비리길’이라는 이름의 트레킹 코스를 만들면서부터다. 개비리길이라 부른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영아지마을의 황씨 할아버지가 기른 강아지 한 마리를 산 너머에 사는 딸에게 줬는데, 어미 개가 매일 산 너머 마을까지 찾아가 젖을 먹이고 오곤 했던 것이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어미 개는 새끼 개에게 젖을 먹이러 나타났고, 사람들은 어미 개가 어느 길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밟아보니 낙동강변 벼랑을 따라 가더란다.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강변 벼랑에는 눈이 쌓이지 않고 강으로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벼랑을 이루고 있는 강변 오솔길은 어미개의 새끼 개에 대한 헌신적인 모성애의 전설이 스며있어 ‘개비리길’이라 부른다.
이후 사람들도 산을 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이 벼랑을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후로 ‘개가 다닌 비리(절벽)’라 해서 ‘개비리길’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개’는 강가를 의미하고 ‘비리’는 벼랑을 뜻하니, 강가 벼랑을 따라 난 길이라는 뜻에서 ‘개비리길’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강변의 가파른 지형을 지나지만 허리를 돌아가는 길이라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편하다. 발아래로 낙동강이 출렁이고, 멀리서 산자락을 굽이돌아오는 강줄기는 실타래처럼 유연하다. 개비리길을 천천히 걷고 있으면 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소리 고적하고, 연두색 품에 안겨 노래 부르는 새소리 청아하다. 강변에 앉아 이러한 강의 운치를 즐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인이 된다.

대나무 숲이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곧게 솟은 대나무들은 강변에서 숲을 이루며 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다. 천천히 대숲 길을 걷고 있으니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나무소리가 내 마음을 씻어준다. 남지 개비리길은 벼랑길을 걷다가 숲길을 만나고, 숲길에 마음을 맡겼다 싶으면 대숲이 나타나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초가지붕을 한 사각정자 앞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중년 남자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색소폰 선율이 강바람을 타고 감미롭게 퍼져나간다. 대자연속에서 마음껏 불어보는 색소폰 연주자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남지 개비리길은 벼랑길을 걷다가 숲길을 만나고, 숲길에 마음을 맡겼다 싶으면 대숲이 나타나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에는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도 깃들어있다.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고 2개월이 채 못 돼 낙동강 북쪽까지 북한군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이 때 최후의 방어선이 이곳 낙동강이었다. 그리고 한달 이상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남지철교 중앙부가 폭파됐으며 낙동강물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지난 4월27일 열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상기한다. 65년 만에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남북정상의 선언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핵 없는 한반도’를 이뤄 평화와 번영을 누리자는 ‘판문점선언’을 지켜보며 모든 국민은 열광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남지철교를 바라보며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는 희망열차가 빨리 출발하기를 기원해본다.


※여행쪽지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은 낙동강변 벼랑을 따라 조성돼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코스 : 창나루주차장→창나루전망대→영아지쉼터→영아지주차장→죽림쉼터→창나루주차장(6.4㎞/2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창나루주차장(경남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159-2)
▶창나루주차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창녕군 남지읍소지재에는 식당들이 많다. 화덕본가(055-521-8592)의 갈비탕, 장여사생선구이(055-521-3492)의 생선구이 등.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