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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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녀 나이 17살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8. 05.09. 19:52
필자는 광주경신여고를 졸업했다. 몇 주 전 동창생들과 나누는 단톡방에 ‘5·18당시 계엄군에게 성폭행 당한 동기가 있는 것 같다. 혹 아느냐’는 친구 글이 올라왔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접한 광주민주화운동은 평생 억장무너지는 슬픔이 되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 성폭행까지 당한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오늘,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얼마전 단톡방에서 우리 동창들은 그녀를 찾지 못했다. 최근에 알고 보니, 그녀는 우리 동기가 아니고 1년 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고 1학년 17살 그녀. 갓 입학한 여고를 3개월 다니고 5·18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9일자 한겨레신문에 단독특종 기사로 그녀 이야기가 실렸다. 차마 다 읽기 전에,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광주 정대하 기자의 ‘5·18때 군인들에 집단 성폭행당한 여고생, 결국 승려가 됐다’는 기사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10대 여고생이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병을 앓다가 여승이 됐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적고 있다. 이어 ‘소문으로만 떠돌던 군인들에 의한 집단 성폭행에 대한 증언과 증거자료가 나옴에 따라 계엄군과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의 성폭행·고문 사실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썼다.

이 사실을 한겨레신문에 공개한 이는 5·18민중항쟁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지현(예명 이세상·65)씨다. 이씨는 1989년 2월20일 고향의 한 식당에서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경신여고 1학년이었던 1980년 5월19일 집으로 걸어가다가 군인 5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1989년 국회 5·18 광주청문회를 앞두고 후배의 오빠가 증인으로 출석하려던 이씨를 찾아와 “청문회에서 동생의 사연을 공개해 동생과 어머니의 한을 풀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만나게 됐다고 한다.

후배의 오빠는 이씨에게 공수부대 여러 명한테 성폭행을 당한 후배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뒤 미쳐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절로 보내서 여승이 되었다”는 사연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후배의 이런 이야기는 1991년 5월 여성연구회가 펴낸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이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이 책에는 “성폭행을 당한 O양은 뒤 혼자 웃어대거나 동네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기도 하는 등 불안 공포증을 보였다. 점차 상태가 악화돼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기도 했던 O씨는 1987년 3개월여 동안 나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광주사태 관련자 부상 정도 판정위원회’의 추천으로 진료를 받기도 했다”고 쓰여 있다.

#미투(me too)운동 덕분일까.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안내방송을 맡았던 김선옥씨도 당시 수사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김선옥씨는 5·18 당시 전남대학교 음악교육과 4학년이었다. 책을 사러 나갔다가 학생수습대책위원회를 맡아 도청에 들어갔다. 여기서 안내방송 등을 맡았던 김씨는 계엄군의 진압 후 체포돼 옛 광주 상무대로 연행됐다. 그리고 악몽같은 일을 당했다. 60여일 고문뒤 석방 전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시민을 무차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성폭력까지…. 여성이어서 두 번 죽은 이들의 이야기는 위 두 사람을 넘어 더 많을 것이다. 차마 얘기를 못한 사람, 숨어버린 여성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전쟁도 아닌데, 자국 내에서의 국가공권력에 의해 집단적으로 혹은 소규모로 자행된 성폭력 사건이라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1980년 5월18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특전부대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 중 여성의 피해는 사망, 부상, 구타가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한 피해에 더하여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와 그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후유증은 더 심각했다. 여성 피해자는 항쟁이 끝난 이후 보상과정에서의 남성 피해자와의 차별성(예를 들어 피해자에게 취해진 의료보호조치는 남성세대주를 기초로 지원되었다), 가족내 이중적 부담, 가부장제의 억압하에서의 정신적 부담 등 이중의 피해를 겪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공권력의 여성에 대한 집단적 성폭력은 국가가 여성에게 행한 집단적 1차 성폭력 이후 다시 또 집단적 2차 성폭력이 오랫동안 행사된 정말 끔찍한 학살이다.

왜 그녀들은 38년 만에 입을 열었을까.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지금도 숨어있는 수많은 학살범죄가 밝혀지길 바라면서 얼굴을 드러냈다. 38년이 됐지만 우리는 아직도 암매장, 집단발포, 성폭력 등 끔찍한 학살범죄를 단죄하지 못했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5·18특별법은 이런 학살범죄를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큰 관심을 갖고 민간 학살 지휘부를 꼭 처벌해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 38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계엄군과 수사관의 성폭행 사실은 1980년 당시 광주에 갇혀있었던 모든 여성의 마음에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그 강간폭력을, 우리 대신해 치렀던 그녀들….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5월, 필자는 17살 그 후배의 바윗돌 하나를 또 가슴에 얹게 되었다. 아~광주여! 무등산의 십자가여! /ssnam48@kjdaily.com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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