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9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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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고함’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8. 05.16. 18:38
지난주 칼럼 ‘그날, 그녀 나이 17살’을 읽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 아파해주셨다. 정치권에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저지른 성폭력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콘크리트 벽에 묻혀 영원히 억울할 것 같았던 아픈 진실이 하나 둘 수면위로 떠오르자, 오늘, 광주는 더 고통스럽다. 혼란스럽다.

내일이면 38주년이다. 올해 5·18기념행사 슬로건은 ‘보아라 오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다. 2018년에 맞는 딱 좋은 슬로건으로 보인다. 5·18을 촉발시켰던 전남대학교에서는 내일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에게 고함’을 낭독한다고 한다. 필자도 그 당시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하나 둘 꺼내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80년 휴교령이 내리자 금남로에 나가 주워왔던 항쟁 소식지가 대부분이다. 당시 신문 발간이 중단된 광주에서는 5·18지휘부가 낸 소식지가 매일 뿌려졌다.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에게 고함’은 5월 24일자 항쟁 홍보물로 당시 전남대학교 교수들이 작성했다.

‘…지금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참상은 여러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지난 18일 공수특전단들의 세계 역사상 없는 만행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식인들을 미치고 말게 했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십시오. 총칼 앞에 짓찢겨 죽은 자식을 안고 통곡하는 부모들이 대검에 찔려 죽고, 총상을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또한 죽어가고 있습니다.…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곳에서 내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관망만 하고 있다면, 도대체 학문이, 교육 양식이, 지식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지역사회 내 교수들은 대한민국 지성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여 광주를 좀 도와주기를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살육작전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조선대학교민주투쟁위원회가 낸 1980년 5월21일자 홍보물 ‘전두환의 광주 살육작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3만여명의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시민들의 앞과 뒤를 막아 페퍼포그를 쏘아 대면서 포위망을 좁혀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서울에서 급파된 3천여명의 공수특전단들은 대검을 빼어들고 미친 망나니처럼 무를 짜르듯이 닥치는대로 찔러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체들을 군 트럭에다 내어 던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달아나는 시민들과 어린 여학생들을 대문까지 부수고 끌어내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검으로 난자하였다.…남학생에게 돌을 날라다 주었다는 여학생을 대낮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검으로 난자하였고, 피를 보고 울부짖는 시민들을 향하여, 공수부대는 피묻은 칼을 흔들어대며 죽이겠다고 소리쳤다…’

결국 80만 광주시민 일동은 ‘전국 민주시민에게 드리는 글’을 만들어 발표한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누를 길 없는 설움을 간신히 가누며 이 호소문을 드립니다. 이들은 “전라도 놈의 씨를 말리겠다”고 악을 쓰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금남로를 지나는 사람은 무조건 찔러 죽였고 (중략) 부녀자를 발가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내는 등 차마 지옥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이 백주에 벌어졌던 것입니다.…이같은 공수특전단의 만행을 보고 겪은 시민들은 치를 떨었고 몸서리를 쳤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고립무원. 옆집 시민은 죽어가는데, 그 누구도 광주 구해줄 생각이 없었던 1980년 5월26일. 광주시민들은 다시 ‘광주시민은 통곡하고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글자 그대로 피비린내 나고 절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천인공노! 하늘도 노하고 사람도 함께 분노하는 5·18이었습니다.…미친 이리떼는 미친 이리떼이니 그렇다고 합시다.…벌겋게 상기된 그들의 얼굴에는 처음부터 “시위저지”하려는데 있지 아니하고 이 광주의 젊은이건 시민들까지도 반죽음으로 오금을 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적인 행패인 것을 어린이의 눈에도 역력하였습니다. …쫓고 쫓기고, 붙들리고, 최루탄은 말할 것도 없이 곤봉세계로 매맞고 짓밟히고, 이젠 단검으로 찌르기, 총대로 후려치기, 옷통벗기기, 쫓겨 들어간 건물은 한마디로 박살이 나고, 붙들렸다하면 남녀 관계없이 혹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끌려가고 마침내 거리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대학생, 교수, 시민이 피 토하듯 써서 밤새 등사기로 밀어 뿌렸던 이 ‘호소문’을 금남로에서 주어 밤새 몰래 읽으며 공포에 떨었던 필자는, 이 ‘호소문’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써나가는 초석이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38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의 자유가 한껏 보장된 지금도, 필자는 이런 식의 호소문을 쓰고 싶을 때가 많다. 광주를 향해 외부에서 비아냥, 폄훼, 모욕이 쏟아질 때, 그렇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여전히 미완이다. 최근 헬기에서의 사격 증거가 발견되고, 영화-택시운전사의 흥행으로 5·18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추정지 발굴작업을 통해 국민들은 5·18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성폭력 등 꼭 규명되어야 할 진실이 너무 많다.

5·18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는 꼭 계엄군과 계엄사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의 성폭행·고문 사실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정부는 여성 인권유린에 귀를 기울이고 책임자 처벌, 피해자 치유 의지를 꼭 밝히라.

광주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눈물도 계속 흐르고 있다. 내일 5·18국립묘역에 오시는 분들, 당신들 가슴속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피’가 여전히 흐르고 있는지, 돌아보시길~. /ssnam48@kjdaily.com


ss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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