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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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희생된 광주 학생들 재조명
16교 초·중·고생 18명…대부분 계엄군 총탄 사망
시교육청 “학생들 단순 피해자나 희생자 아니었다”

  • 입력날짜 : 2018. 05.16. 20:23
5·18 38주년을 맞아 1980년 5월 당시 희생된 광주지역 청소년 희생자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부분 청소년 희생자들은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민을 구하던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6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육청이 현재까지 파악 중인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광주 학생들은 16개교 18명이다. 첫 학생 희생자는 동신중 3학년 박기현 군으로 1980년 5월20일 계림동 책방에서 나오던 중 계엄군에 끌려갔다.

계엄군은 박 군을 ‘데모꾼 연락병’으로 지목하며 진압봉으로 구타해 끌고 갔다. 이후 박 군은 다음날 다발성 타박상으로 사망한 채 전남대병원에서 발견됐다.

특히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21일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무등중 3학년 김완봉, 전남여상(당시 춘태여상) 3학년 박금희, 숭의중 2학년 박창권, 대동고 3학년 전영진, 동성고(당시 광주상고) 2학년 이성귀, 송원고 2학년 김기운 학생이 21일에 희생됐다. 사망원인은 전부 총상이다.

박금희 양은 기독교병원에서 헌혈을 마치고 나오는 중 헬기 사격으로 요부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박창권 군은 도청 앞에서 ‘비상계엄령 철폐’를 외치다 총상으로, 전영진 군은 노동청 앞에서 도청 옥상에서 발사한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김완봉 군과 이성귀 군, 김기운 군 모두 이날 도청 인근에서 총상으로 희생됐다. 이 중 김 군은 22년 동안 무명열사로 시립공원 묘지 3묘역에 묻혀 있다가 2001년 10월 유전자 감식으로 가족을 찾기도 했다.

이후에도 학생들의 피해는 이어졌다.

숭의고 1학년 양창근 군은 22일 공용버스터미널 앞에서 두부 관통 총상으로 사망했다.

23일에는 지원동 주남마을에서 송원여상 3학년 박현숙 양과 방송통신고 3학년 황호걸 군이 화순으로 관을 구하러 가던 중 계엄군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24일에는 진월동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전남중 1학년 방광범 군과 마을 동산에서 고무신을 주우러 돌아서던 효덕초 4학년 전재수 군이 총상으로 사망했다. 당시 인근에 11특전 여단, 7특전 여단과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이동 중이었다.

같은날 살레시오고 2학년 김평용 군은 남구 송암동에서, 조대부고 3학년 김부열 군은 지원동 부엉산에서 각각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김평용 군은 101 사격장에 암매장됐다가 부모님·담임교사·시청 직원이 함께 찾아냈다. 총을 들고 계엄군과 싸우다 사망한 김부열 군의 시신은 처참하게 난도질당해 유가족들이 사타구니 점으로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27일 최후 항쟁의 날에는 친구집에 가던 서광여중 3학년 김명숙 양이 전남대 용봉천 주변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이날 도청에서 부상자와 시신들을 돌보던 동성고 1학년 문재학·안종필 군과 조대부고 3학년 박성용 군이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단순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니었다”면서 “그들은 우리의 선배고 보호받아야할 학생이었으며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않은 시민이었다”고 안타까워 했다./박은성 기자 pes@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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