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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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발포명령 내렸다”
당시 광주 보안부대 수사관 30년 만에 다시 증언
“시민군 폭도·용공 몰아…군 무력진압·조작 있어”

  • 입력날짜 : 2018. 05.16. 20:23
5·18광주민주항쟁 38주년을 사흘 앞두고 “1980년 5월 광주는 공신 책봉에 눈먼 현지 지휘관이 짠 조작극이었다”는 진술이 30년 만에 다시 나왔다.

어렵게 입을 뗀 주인공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70·사진)씨.

그는 1988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옛 평화민주당사에서 광주사태의 사전 조작 및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는 양심선언을 한 인물이다.

양심선언 후 그는 이른바 ‘보안사 5·11 분석반’의 온갖 회유와 협박 등에 못 이겨 쫓기다시피 강원도 화천에서 30년째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허씨는 “정치군인들의 강압 때문에 군에서 쫓겨나 숨죽여 살아왔지만 이제는 역사 앞에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양심선언 당시 제기한 조작 의혹 중 일부 사건은 아직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에 의구심을 품어 오다가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해 세상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허씨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다녀간 뒤 그날 밤 자위력 구사라는 미명 하에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상관인 모 중령에게 직접 전해 듣고 실탄 무장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탄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자위권 구사가 최종 결정됐다는 말과 실탄 지급은 공식적인 발포명령을 의미하며, ‘우리가 먼저 한 것으로 해서는 안 돼’라는 말도 이어졌다”며 “모든 문제는 (전두환) 사령관이 책임진다는 말도 모 중령에게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광주사태 기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505보안부대 내에서 벌어졌고, 석연치 않은 수사 종료 지시를 상급자에게서 받았다고 증언했다.

광주 시민군을 폭도와 용공으로 몰아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켜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려는 조작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표적으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혹 중 하나인 아시아자동차 차량 탈취 사건과 최초 무기고 탈취로 기록된 나주 반남지서 사건, 녹두서점 북한 찬양 유인물 사건, 전남도청 독침 사건, 도청 옥상 북한인공기 펼침 사건 등을 나열했다.

허씨는 “방산업체인 아시아자동차 차량이 탈취당하고 반남지서 무기고가 최초로 털렸는데도 이를 중점 수사하라는 지시는 전혀 없었다”며 “일반 시민이 무기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무기고가 탈취됐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수사는 이상하리만큼 흐지부지된 점에서 조작을 의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전남도청 옥상에 인공기가 펼쳐졌다는 첩보와 녹두서점 불온 유인물 첩보는 당시만 해도 당연히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우리 부대가 파헤쳐야 할 사안인데도 상부에서는 오히려 수사하지 못하게 했다”며 “이는 ‘광주사태’를 북한군 침투와 연계시키려는 조작 시나리오라고 생각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5·18 관련 재판 과정에서 광주 피해자들이 조작이라고 증언한 ‘장○○ 독침 사건 조작’에 대해 허씨는 “전남도청 시민군 지휘본부 화장실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독침 사용이라는 점에서 ‘북한 간첩 침투’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당시 수사관들 모두 깜짝 놀랐다”며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부에서는 이 사건의 수사를 제지하고 검거된 주범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오히려 두둔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허씨는 “지금이라도 신군부의 공신 책봉에 눈이 멀어 왜곡·조작한 현지 지휘관 등을 조사해야 한다”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광주의 역사를 올바른 선반에 올려놓기 위한 유일한 길은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해 국제적으로 학살범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오승지 기자 ohssjj@kjdaily.com·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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