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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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 목격한 새로운 가능성
이정록
전남대 교수·전 대한지리학회장

  • 입력날짜 : 2018. 05.29. 18:48
지역이나 도시가 보유한 문화·역사를 자원화(資源化)하려는 시도는 국내외의 일반적 경향이다. ‘문화·역사 자원화’ 사례는 다양하다. 지역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 건립, 이를 소재로 한 축제와 이벤트 개최, 관련 시설과 장소를 연계한 관광 상품 개발 등이 그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설립은 문화·역사 자원화 전략의 보편적 방법이다. 세 가지 이점 때문이다. 첫째는 전시 효과다. 우리 지역은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화와 고상한 품격을 지녔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거다. 주민에게는 ‘내가 괜찮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정주 만족도를, 방문객에게는 그 곳에 대해 경외감(敬畏感)을 갖게 한다. 둘째는 방문객 유인 효과다. 관련 시설을 보려고 타 지역에서 관광객이 찾아오는 경우다. 셋째는 보완 효과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방문의 효용성을 높이는 보완재 기능이다. 관광지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는 이유다.

고흥군은 문화·역사 자원화 전략을 채택했다. 이를 위해 고흥은 지난 10여 년 간 박물관·미술관·전시관 건립 사업을 지속 추진했다. 도화면 도화헌미술관(2000), 영남면 남포미술관(2005), 연흥도 연흥미술관(2006), 소록도 한센병박물관(2016), 두원면 분청문화박물관(2017)과 조정래가족문화관(2017)이 문을 열었다. 계획 중인 갑재민속전시관, 마리안느마가렛기념관, 남진트로트박물관, 이용덕조각전시장이 건립되면 10개가 된다. 보완재 역할을 하는 관광 관련 시설을 많이 만들어 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타당한 선택이었다. 사실 고흥의 정주 환경은 괜찮다. 연중 온화한 기후, 넓은 농토, 풍부한 농수산물, 수려한 다도해 경관, 남해안에 면한 위치 등이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수퍼 초고령화·인구절벽·인구유출에 처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앞으로 30년 안에 경북 의성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빨리 사라질 자자체가 고흥군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돼 고흥 군민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흥은 ‘우리 지역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라고 대내외로 웅변할 필요를 느꼈다. 문화·역사 자원화 전략을 택한 중요한 배경이다.

전략 선택의 합리성은 또 있다. 방문객 유인과 관광지 보완 효과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흥은 대도시인 광주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먼 곳이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가장 먼 육지부에 해당한다. 타 지역에서 접근이 여의치 않다. 외부 관광객을 고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해선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1+α’ 방식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건립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알파’에 해당한다.

고흥이 10여 년 간 추진한 전략의 효과가 궁금했다. 이를 확인하려고 지지난 주말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찾았다. 국내 최대 분청사기 가마터 중 하나인 두원면 운대리에 자리 잡은 박물관이다. 작년 10월 개관한 박물관 시설과 규모는 광주에 있는 여느 박물관과 비교해도 결코 빠지지 않았다. 관람객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과 단체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필자가 면접한 관람객도 순천·광주·서울·수원·익산 등지에서 온 외지인이었다.

박물관은 방문객 유인 효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개관 이후 올 4월까지 6개월 동안 5만1천여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고흥의 낮은 접근성과 개관 초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관람객수다. 박물관은 보완재 역할도 하고 있었다. 나로도 우주센터를 방문하고 들른 가족, 거문도행 배를 타기 전에 찾은 관광객, 소록도를 보고 광주로 가는 길에 들른 젊은 커플 등의 동선(動線)에서 확인됐다. 박물관이 고흥에 온 방문객을 지역 내에 더 오래 붙잡는 역할을 한 셈이다.

박병종 고흥군수가 예전에 필자에게 한 말이다. “여수-고흥 간 연륙 연도교 사업이 완공되면, 고흥에 있는 10개 박물관과 미술관은 고흥 관광의 효자 노릇을 할 겁니다.” 정확한 진단이다. 실제로 여수와 접근성이 개선되면 고흥엔 지금보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여수에서 다도해 경관을 즐긴 방문객에게 고흥이 더 수려한 해상 경관과 색다른 볼거리를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느냐다. 그런데 고흥은 여러 곳에 박물관과 미술관 만들어 이를 시도하고 있다.

지지난 주말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관람객들로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흥이 택한 문화·역사 자원화 전략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고흥 관광의 가치를 높이는 보완재 역할을 하는 박물관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이란 슬로건이 새삼스럽게 느껴진 고흥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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