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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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사람을 만나다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 입력날짜 : 2018. 05.31. 19:05
광주의 뜨거운 오월이 봄날이 가듯 가고 있다. 오월 광주 민주광장에는 매일 사람들로 붐볐다. 5월26일, 100명의 예술가들이 광주에 와서 오월정신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춤을 추며 창작으로 광주정신을 표현했다. 그 창작의 장소가 광주 민주광장이니 작업실이 광장으로 옮겨진 것이다.

작업실이 된 광장은 문이 없다. 100명의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것을 구경하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미술평론가가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과 예술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너희가 5·18을 알아!”하시며 똑바로 하라고 호통 치시는 광주의 할아버지, 주먹밥을 만드는 광주 아줌마, 파전을 공중으로 날려 묘기를 부리듯 부쳐서 노릇노릇 구수한 냄새로 광장을 잔치분위기로 만드는 광주언니들, 생김치를 비벼서 수육과 함께 작가들에게 내어주는 붉은 손, 홍어를 무쳐서 손으로 맛보라고 입에 넣어주는 손맛의 대가들... 나는 그 손길에서 광주정신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광장은 정이 넘치고 있었다. 구 도청 앞 오월창작가요제 무대에서는 가수 강산에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진짜 강산에여?”하면서 우르르 몰려갔다.

작가들은 퍼포먼스로 자신의 오월을 표현하기도 하고 100명의 화가들은 걸개그림으로 오월과 한반도의 평화를 표현했다. 글을 쓰는 작가는 시민과 함께 바닥에 글을 썼으며, 춤꾼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네 박자 춤을 즉흥으로 만들어냈다. 춤을 추는 춤꾼의 몸짓에 따라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일어나 저절로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글을 쓰고, 또 어떤 사람은 홍어를 무치고 김치를 담아서 나누고, 다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광장에서 흥겹게 하고 있는 모습, 모두 함께 춤을 추는 광장!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뭔가를 표현하고 있는 광장은 소란스럽고 시끄럽지만 아름다웠다.

문이 없고 금이 없는 광장은 이렇게 누구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광주 민주광장은 가운데 둥근 분수대가 있다. 우리는 분수대 주변에 100명의 작가가 빙 둘러 흰 천을 하나씩 놓고 화지 삼아 그림을 그렸고, 그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린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라운드 테이블을 보는 것만 같았다. 광주의 광장은 라운드 테이블이다. ‘이렇게 1980년 오월에도 분수대를 중심으로 모였고, 누구나 평등하게 발언할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형의 구조가 주는 배치는 권위를 벗어난 평등함을 구조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라운드 테이블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이 가능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광주의 광장, 민주광장은 참으로 민주광장의 구조를 갖춘 곳이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다시 민주광장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뭔가 공통점이 있었다. 흥이 넘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흥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자발적으로 스스로 준비해서 광장에 모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의 의지로, 내적 동기로 광장에 나온 사람들, 광주정신에 동의하며 서울, 경기, 강원, 대전, 제주 등등에서 모인 작가들은 모두 광주를 민주의 성지로 불렀다. 그런 마음으로 모여앉아 한반도에 평화의 꽃이 피기를 기원하며 창작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오전에 모여 망월동 국립묘지를 함께 참배하고 5·18유네스코 기록관 등을 돌며 광주 오월에 감동했다. 광주 사람보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더 눈물을 흘렸다. 특히 미국에서 온 수잔(Susan Crosby McCloy)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퍼포먼스 작가인 수잔은 광장에 작은 담요 같은 붉은 천을 깔고 그 위에서 춤인 듯 흐느끼는 듯한 몸짓을 하다가 붓을 들고 흰 천 위에 한 줄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광장에서 그녀는 고요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다음 날 5·18묘역에서 다시 만났는데, 참배하는 동안 내내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이 광장의 이벤트에 참여하게 된 것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작가로 광주에서 5월에 작업할 수 있음에 감사의 포옹을 하고 편지와 선물을 내손에 쥐어 주었다.

5·18민주광장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올해 민주광장에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선한 눈빛과 몸짓과 노래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함께 창조한 시공간, 5월 광주 민주광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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