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2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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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곡성 대황강길(보성강길)
강물 따라 강변길이 흘러가고 내 마음도 흘러간다

  • 입력날짜 : 2018. 06.05. 19:21
옛 압록교에서 섬진강 쪽을 바라보면 섬진강에 합류하는 대황강의 모습과 대황강 위에 놓인 철교와 압록교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사람이 걷는 길은 물길과 다를 바 없다. 물이 흘러가듯이 길도 흘러간다. 물은 흐르다가 산이나 바위가 가로막으면 돌아서간다. 길도 장애물이 있으면 에둘러가고, 산이 가로막으면 가장 낮은 고개를 선택해 넘는다. 그러니 물길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 모두 구불구불 흘러가기 마련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사람이 걷는 길은 주로 물길을 따라 형성됐다. 물가로 난 길을 걷다가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징검다리나 나룻배를 이용했다. 징검다리나 나룻배도 길의 연장이다.
여러 골짜기의 물이 모여 수량이 많아지면 강이 된다. 강변에도 예로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있었다. 강변길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간다. 강변길은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그리고 강변길은 강물의 자연스러운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어 정겹고 포근하다.

오늘은 강변길을 걸으려한다. 강의 원형이 가장 잘 유지되고 있는 보성강을 따라 걸으려한다. 보성강은 보성군 웅치면 용반리 일림산 중턱 해발 540m에 있는 선녀샘에서 시작된다. 이후 장흥과 보성의 여러 고을을 지나 순천 주암댐으로 흘러든다. 주암댐을 지난 강물은 곡성군 석곡면과 목사동면, 죽곡면을 적시며 흐르다가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서 섬진강 본류에 합쳐진다. 보성강이 곡성 땅을 적시는 구간은 18㎞에 이른다. 보성강은 장장 120㎞를 흐른 후 이름을 섬진강에 헌납한다.

보성강을 곡성에서는 ‘크고 거칠다’는 의미로 대황강(大荒江)이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황강에는 모래사장이 없다. 강바닥이나 강변에는 모래 대신 돌이나 풀, 나무들이 강물과 함께 한다. 대황강길은 보성강이 섬진강에 합류되는 압록에서 시작된다. 압록에는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맑은 강물이 흘러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용산재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탄생지를 중심으로 한 유적지다.
대황강이 합류하는 압록은 전라선 철로와 곡성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17번 국도가 지나고, 강위에는 철교와 압록교라 불리는 다리가 놓여 있다. 대황강길은 압록에서 압록교를 건너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이어진다. 지금의 압록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대황강 쪽으로 700m 상류에 옛 압록교가 있었다. 다리로서의 효용을 잃은 지 오래된 구 압록교는 근래에 철거돼 강변 양쪽에 교각 하나씩만 남겨 놓았다. 양쪽으로 20m씩 남겨둔 옛 다리위에는 전망대와 구 압록교의 흑백사진이 전시돼 있어 추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옛 압록교 400m 위쪽에 새로운 다리 하나를 더 놓았다. 최근 개설한 다리 위에서 섬진강 쪽을 바라보면 섬진강에 합류하는 대황강의 모습과 대황강 위에 놓인 철교와 압록교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섬진강 건너는 구례 땅이다. 두 강이 합류하는 모습을 구례 땅에 솟은 국사봉이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자전거도로를 따라 강변길을 천천히 걷는다. 대황강 자전거도로는 지난해 1차선 규모로 포장을 마쳤다. 포장되기 전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강변 오솔길이 있었다.

강변 밭가에는 커다란 뽕나무에 오디가 검붉게 익어간다.대황강은 소박하고 고즈넉해서 소곤소곤 얘기하며 걷기에 좋다. 커다란 왜가리가 강 가운데 바위에 앉아 유유자적하고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은 주변의 푸른 식물과 함께 생명력을 과시한다. 자전거길은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강변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지금 걷고 있는 구간은 ‘남도오백리 역사숲길’ 곡성구간이기도 하다.

대황강길은 강물이 곧바로 흐르면 곧바로 가고, 굽이쳐 흐르면 굽어지면서 강의 흐름을 따라서간다. 4대강 사업으로 보를 만들어 물 흐름이 없어지고, 강변습지를 준설해 축대를 쌓아버린 다른 강들과 달리 대황강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정감이 절로 일어난다.

강물에는 강 건너 산봉우리가 무거운 몸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산봉우리가 강물 위에 만든 반영이 우리를 포근하게 해준다. 강물이 여울을 이룰 때는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낸다. 강변에는 작은 습지를 이뤄 키 작은 버드나무나 푸른 억새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석곡에서 압록으로 이어지는 18번 국도가 강 건너로 지나지만 차량통행은 많지 않은 편이다.

강은 양쪽에서 산이 에워싸고 있어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강변은 주로 산비탈을 이루고 있지만 종종 작은 마을이 자리를 잡아 정다움을 더해준다.

대황강출렁다리는 2016년 11월1일 개통된 보도용 현수교로, 길이 185m, 폭 1.8-2m에 이른다.
예로부터 대황강에서는 은어, 메기, 쏘가리, 참붕어, 참게,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많이 서식했다. 지역주민들은 봄철이면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고 노는 천렵을 즐겼다. 여름철에는 횃불을 들고 물고기를 잡는 횃불놀이가 아름답다해 대황어화(大荒漁火)라 했다. 대황어화는 곡성 8경 중 하나다.

강변 산자락을 따라 걷다가 처음으로 논을 만난다. 봉두산 북서쪽 골짜기인 고치천 주변에 형성된 넓지 않은 농경지는 골짜기에 고치리라 불리는 작은 마을을 형성시켰다. 골짜기 안쪽 멀리 태안사를 품고 있는 봉두산(753m)이 포근하게 솟아있고, 봉두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이곳 대황강까지 이어진다.

강 건너에도 10여 호에 이르는 작은 마을이 있다. 북소마을로 30년 전까지만 해도 나룻배를 이용해 건너다녔다. 나는 어릴 때 이곳 북소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닌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곳에서 6㎞ 정도 떨어진 태안사 입구 마을이 고향인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곡성읍내로 중학교를 진학했다. 당시에는 우리 마을에서 곡성읍내를 가려면 압록까지 10㎞를 걸어서 가야만 했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이야기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석곡과 압록사이를 오가는 소형버스가 몇 시간 간격으로 다니기 전까지는 압록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나룻배를 탔다. 나는 북소마을과 고치리를 연결하는 고치교 다리에 서서 45년 전 나룻배로 넘어 다녔던 대황강을 바라본다. 주로 어머니와 함께 나룻배를 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자식 가르치느라고 허리가 휘었던,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콧등이 시큰거린다.

길가에서 금계국이 노랗게 꽃을 피워 환한 미소를 지워준다. 강물 위에는 푸른 나무들이 파스텔화를 그려놓았다. 이곳에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곡성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토요일에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가기 위해 압록에서부터 걸어가다가 날씨가 더우면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잠시 강변 숲길을 지나 태안사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동계천이 대황강에 합류되는 지점에 이른다. 동계천을 따라 올라가면 깊은 골짜기에 여섯 개 마을을 만날 수 있고, 천년고찰 태안사가 산속 깊숙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내 고향은 여기에서 4㎞정도 올라간다. 오늘 우리가 걷는 대황강길은 동계천을 넘어 태안사 가는 길로 가지 않고 대황강변을 따라서 간다. 840번 지방도로를 따라 700m 쯤 가면 대황강을 가로지는 태안교를 만난다.

태안교에 서니 석곡에서 흘러오는 대황강이 굽이치며 흘러오는 모습이 정답게 다가온다. 나에게 이 풍경은 대황강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곳이다. 어릴 때부터 곡성을 가거나 광주를 오갈 때 항상 지났던 곳이고, 지금도 명절 때면 산소가 있는 고향을 찾기 때문이다. 원래 지금의 태안교가 생기기 전에는 위쪽으로 강과 바짝 붙은 잠수교가 있었다. 이 잠수교는 비가 많이 내리면 넘쳐버려 안쪽 마을은 고립되기 일쑤였다. 이 잠수교도 근래에 철거되어 교각 하나만 남겨둬 옛 다리의 추억을 되살리게 해준다.

태안교를 건너지 않고 1㎞ 정도 강변길을 걸으면 비봉마을이다. 그야말로 강변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작은 마을이다. 모내기를 앞둔 무논이며 고추를 심어놓은 밭이며 감나무들이 소박한 강변마을의 생활상을 드러내준다. 흐름이 느린 강물에는 나무들이 반영을 만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왜가리 한 마리가 홀로 외롭다.

비봉마을을 지나자 숲으로 덮인 자전거도로가 이어진다. 조심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고요함을 깰세라 새들도 목소리를 낮춘다. 길은 한없이 한적하고 고요하다. 숲이 뿜어내는 상쾌한 기운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죽곡면소재지에 가까워지자 출렁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황강출렁다리는 2016년 11월1일 개통된 보도용 현수교로 길이 185m, 폭 1.8-2m에 이른다. 출렁다리 건너는 곡성군 죽곡면 소재지다. 출렁다리에 서니 주암호를 지나 흘러온 강물이 유유하고, 둥그렇게 강 건너 둔치를 돌아 압록으로 흘러가는 강줄기가 유려하다. 강줄기는 주변의 부드러운 산봉우리들과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화가 된다. 대황강출렁다리는 연륜은 짧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출렁다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서 이제는 목사동면을 향하여 걷는다. 여전히 강변 자전거길로 분위기는 지금까지와 비슷하다. 출렁다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자 강 건너로 눈에 띄는 마을이 있다. 은퇴자를 위한 자립형 마을 강빛마을이다. 2013년 개촌 된 강빛마을은 현재 복층 건물 109채가 들어서 있으며, 그 중 50채를 펜션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전거길은 대황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지만 우리는 강변길과 헤어져 용산재로 향한다. 용산재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로 올라가는데, 강 건너에서 강빛마을이 손을 흔들어준다. 뒤돌아보면 산봉우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첩첩한 모습이다.

“얼마나 산골이었으면 골짜기 곡(谷)자와 재 성(城)을 써서 곡성(谷城)이라 했는지 알 것 같네.”

일행이 첩첩한 산을 보면서 한 마디 한다. 강변에서 높지 않은 고개를 넘어서자 오지마을이 나타난다. 구룡리다. 마을 뒷산 비래산에서부터 마을 앞까지 큰 바위가 9개가 있고 마을 뒷산 능선이 용의 형극을 이루고 있는 것이 9개가 있다고 하여 구룡리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구룡정(九龍亭)이라는 편액이 붙은 정자가 있다. 정자를 느티나무 거목 두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줘 여름철 시원한 쉼터역할을 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구룡리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이 탄생한 마을이다. 신숭겸은 후삼국시대 궁예의 부장이었으나 918년 왕건을 추대해 고려 건국에 기여했다.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후백제 견훤군에게 포위당하자 왕건의 갑옷을 바꿔 입고 대신 전사했다.

이때 신숭겸이 “제가 대왕과 외모가 비슷하오니 제가 대왕으로 변장하면 대왕께서는 무사히 탈출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왕건과 옷을 바꿔 입었다. 그리고 왕건이 일반 군졸로 변장해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 태조 왕건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동안 신숭겸은 왕건의 행세를 하며 왕건의 백마를 타고 군대를 통솔하다가 견훤군이 쏜 화살에 맞고 전사했다. 후백제군은 그의 시신에서 머리를 베어갔다.

이후 신숭겸의 시체를 발견한 왕건은 크게 슬퍼해 송악으로 철수할 때 참수돼 머리가 없던 신숭겸의 시신에 금으로 만든 머리 모형을 끼워 넣어 장사지내고 장절(壯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용산재는 1981년 10월20일 전남도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됐었다. 1960년 지어진 용산재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탄생지를 중심으로 한 유적지다. 1868년(고종 5)에 원림과 토지를 매입해 지켜오다가 1897년 유허비를 세웠으며 1929년 단을 다시 수리했다.

솟을대문을 한 구룡문을 들어서니 정면으로 용산재(龍山齎)가 활달하게 앉아 있고, 아래 마당 양옆으로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용산재 뒤편으로 돌아가니 다시 솟을대문을 한 충절문(忠節門)이 있다. 충절문을 통과하니 자연석으로 정갈하게 쌓은 두 개의 단 위에 유허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과 신숭겸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단소(壇所)가 있다. 여기에서 후손들이 매년 음력 9월17일 신숭겸장군의 제사를 올린다. 용산재 옆에는 신숭겸 장군의 동상이 늠름한 자태로 서 있다. 천년 세월이 흘렀지만 신숭겸 장군의 기개가 느껴진다.


※여행쪽지

▶곡성 대황강길은 보성강(대황강)변을 따라 걷는 길로 압록유원지→고치교→태안교→비봉마을→대황강출렁다리→용산재까지 잇는 길로 12㎞ 거리에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용산재로 가지 않고 강변을 따라 목사동1교까지 갈 수도 있다.
▶난이도 : 쉬움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압록유원지(곡성 죽곡면 하한리)
-압록에 승용차를 두고 가는 경우 오후 1시에 목사동면소재지에서 압록방향으로 출발하는 군내순환버스를 타고 압록으로 돌아오면 된다.
-대황강과 나란히 달리는 18번 국도변에는 곳곳에 식당이 있다. 그중에서 광주가든(061-363-6700)의 민물매운탕이 맛있다. 주인이 대황강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로 끊인 매운탕은 담백하면서 개운한 맛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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