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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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
주홍
치유예술가·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 입력날짜 : 2018. 06.28. 19:03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가 삽화와 함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와 삽화가 생생하다.

개미와 베짱이가 살고 있었다. 개미는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햇볕에서 부지런히 일했고, 베짱이는 개미가 일하는 동안 나무 그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열심히 일한 개미는 겨울에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풍요를 누렸고, 베짱이는 기타를 메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겨울 날, 배고픔에 굶주리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베짱이 기질을 타고난 나에게는 무서운 이야기였다. ‘아, 나는 노는 걸 좋아하니까 굶주리거나 가난하게 살아가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미처럼 살아가는 것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나하고는 맞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어렸을 때 읽은 이야기는 오랫동안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자 했을 때 두려웠던 것은 베짱이처럼 살아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대부분 사람들도 미술이나 음악을 전공하면 베짱이로 살아갈 것이라고 염려하며 어떻게 먹고 살려고 하냐며 발목을 잡는다. 특히, 장남이거나 남자의 경우는 스스로 예술가의 길을 베짱이라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포기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미의 삶에 가치를 두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결과다. 일개미처럼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고 베짱이처럼 즐기는 것이 인간답지 못한 것인가! 7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개미의 삶이 미덕이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창조적인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60년대만 해도 우리 어머니들은 새벽이면 일어나 물을 길러 밥을 지었고, 종일 집안일과 농사일까지 하고, 돌아와 깊은 밤이면 베틀에서 베를 짜며 새벽까지 바느질해서 직접 옷을 지었다. 나도 초등학교시절 엄마가 만들어준 반바지며 뜨개질로 짜준 옷과 모자를 썼으니, 그 시절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세탁기나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여성의 노동을 기계가 덜어주자 달라진 여성의 삶을 생각해보자. 방직기계가 공장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고 두려워했지만 베를 짜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한 기술의 발달에 감사할 일이다. 요즘은 뜨개질이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옷을 만들어 입는 것도 자신만의 독특한 멋을 살리는 것이다. 여유로운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카페에 모여서 수다도 떨고 야생화를 수놓고 있는 모습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수예작품으로 액자에 넣어 전시회도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노동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찾아서 하는 일이라면 베를 짜는 일도 예술이 되고 설거지와 청소도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집을 짓는 일도 자신이 선택해서 직접 황토로 벽돌을 만들어 쌓고 구들을 놓으며 즐거워하는 친구를 보면, ‘놀이’로 집을 짓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송정2동의 오래된 골목길에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고 있다. 송정중학교 학생들의 등하교 길인데 빈 집도 많고 골목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골목 문화를 스스로 바꿔보자는 취지로 작가와 주민이 함께 나선 것이다. 송정2동 골목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70이 넘은 분들이셨고, 그분들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골목의 놀이문화를 골목 벽화로 그리기로 했다. 골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커피도 타 주시고 삶은 옥수수도 간식으로 내 주신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시며 한마디씩 거들어주신다. “나도 저렇게 놀았는디... 참말로 잘 그리요!” 허리가 아프신지 빈 유모차에 의지해서 걸어 나오신 분도 걸음을 멈추고 “우리집 벼람박에도 좀 그려주쇼잉.” 하시며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한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통장님이 건강주스를 가져와서 먹고 하라며 말을 걸었다. “나도 이렇게 베짱이처럼 살고 싶었는데... 나는 베짱이처럼 사는 게 꿈이요.”라고 하며 그렇게 못살았다고 개미처럼 일하다가 나이 들었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이 재밌게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부부가 베짱이로 살아요.” 벽화를 그리는 일은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이다. 벽을 청소하고 밑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마무리까지. 하지만 벽화는 우리에게 놀이다. 베짱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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