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2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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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내일은 없다, 그 말은 참이다 수필 정호영

  • 입력날짜 : 2018. 07.02. 19:53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언젠가는 닥칠 순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급작스럽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을 때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저녁나절에 병원에 들러서 아버지를 뵙고 왔었기에, 하루 동안의 소소한 일들을 말씀하시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뵈어야 하겠기에 급하게 채비를 서둘렀다. 장례식장에 입고 갈 검은색 옷들을 찾는데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가방에 넣어갈 물건들도 어디서 꺼내야하는지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먹먹한 상태에서 우왕좌왕하면서 물건들을 챙겼다. 남편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검은 밤길을 달려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장의사와 장례절차를 상의하고 있었다. 모두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서로의 등을 다독여줄 뿐 어떤 말도 나눌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더니 다행스럽게도 담담하셨다.

장례절차에 대한 상의가 끝나자 고인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가시자고 했다. 마치 주무시는 듯이 편안하게 누워계신 아버지와 만났다. 마지막으로 깊은 사랑을 담은 입맞춤을 이마에 해드렸다. 두 손으로 만져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따스했다. “아버지! 아늑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자리로 잘 가세요”하고 아버지의 돌아가시는 길이 환하게 펼쳐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작별하였다.

조문객을 대접하는 일이 바빠서 아버지와의 이별을 슬퍼할 겨를도 없는 날들을 보냈다. 친지들과 조문객들은 이구동성으로 ‘호상’이라고 말했다. 입원하신 지 하루 만에 돌아가신 ‘죽을 복’을 가지시고 ‘돌아가셔도 될 만한 나이까지 사신 복인’이라면서 우리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렇게 위로해주는 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새록새록 생각나는 그동안의 불효가 죄송해서 부시불식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고향이 아닌 타관에서 근무를 하신 탓에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오셨다. 그때마다 항상 꼿꼿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시는 모습만 보았다. 그래서 우리 6남매는 아버지 앞에 앉아있으면 늘 조심스러웠고 어려웠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부리는 어리광을 한 번도 부린 기억이 없이 자랐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명절이나 집안행사 때에 친정집에 들러서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아버지를 뵈었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건강하게 70대와 80대를 넘기시고 90대에 이르셨을 때, 조금씩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그때부터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이 들어서 친정집에 간혹 들렀었다.

그러나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들고날 때마다 아버지께는 간단한 인사말만 드리고 곧장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우리들이 노는 것을 무심히 보고 계시는 아버지는 늘 혼자셨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수발하시는 어머니의 노고를 덜어드리기 위한 방문처럼 항상 어머니하고만 지내다가 돌아왔었다.

이제 아버지가 떠나가신 집안에는 어머니만 남으셨다. 아버지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앉아계셨던 소파도, 아래층에 물 샌다고 걱정하시며 싫어했던 베란다의 꽃도, 청백리상을 탄 선비답게 간소한 세간살이도 다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공간 속에서 우리들은, 눈물을 감추고, 어머니와 즐겁고 바쁘게 돌아다닌다.

하지만 앙상하게 마른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우리들을 쳐다보고 계시던 아버지, 지팡이를 짚고 미끄러질까봐 조심스레 걸어오시던 아버지, 안방 침대에 누워서 거실에서 재잘거리며 노는 우리들의 소리를 들으셨던 아버지,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국과 밥을 떠 잡수시던 아버지, 임종하시던 날에 병원에서 또 내일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올 때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시던 아버지가 문득문득 생각나서 슬프다.

요즘엔 일요일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선산에 들른다. 공기 맑고 양지바른 자리에 생전의 성품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아버지의 묘 앞에 앉아서 “아버지~! 잘 계시죠?”하고 안부를 여쭙는다. 아! 그날 밤, 아버지 곁에서 하룻밤 머물러 있었더라면, 내일 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떠나지 않았더라면 임종을 지켜드릴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가 크다.

내일은 없다, 그 말은 참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신 분들이여, 내일은 없습디다. 지금 부모님께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아버지 묘 앞에 앉아서 “다음 생에도 다시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때는 정말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는 자식이 될게요!”라고 후회하고 후회하는 나와 같은 불효는 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내일은 없습디다.

“사랑하는 아버지! 잘 계시죠?”


<약력> 2005년 문학예술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전남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재 월야지역아동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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