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2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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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해적의 도시였던 ‘싱가포르’ (2)
문화융합의 산물…싱가포르의 뿌리 ‘페라나칸’

  • 입력날짜 : 2018. 07.03. 19:38
동서양 문화가 섞인 독특한 페라나칸 가옥. 장식된 타일 조각이 있는 파스텔 톤 가옥이 너무 이쁘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싱가포르다. 거리를 걷다보면 다양한 언어와 사람을 만난다. 중국어가 들리는가 하면, 말레이어 인도어가 들린다. 히잡을 쓴 여인이 지나가는가 하면 인도인이 다가 온다. 물가가 비싼 싱가포르지만,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알 수 없는 곳이지만,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와 받침목은 있었다. 다름 아닌 ‘페라나칸’이었다.

▶고유의 삶 지키며 사회 지도층 부상

세계 곳곳을 다녀봐도 싱가포르만큼 특이한 나라는 없다. 싱가포르는 그야말로 혼혈족 국가다.

‘페라나칸’은 말레이 어로 ‘현지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페라나칸에는 중국계, 인도계, 아랍계, 유럽계 등 여러 부류가 있다.

싱가포르에는 옛날부터 많은 이민족들이 이주해왔다. 기원전부터 남인도인부터 시작해서, 8세기부터는 아랍인(무슬림), 15세기부터는 중국인, 16세기부터는 포르투갈인, 17세기부터는 화란인, 19세기부터는 영국인, 2차 대전 때는 일본인 등이 이곳으로 왔다.

이 가운데 중국계가 가장 큰 집단을 이루므로 ‘페라나칸’이란 보통 ‘중국계’를 가리킨다. 즉, 말레이 반도로 이주해 온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남성을 바바(baba), 여성은 논야(nonya)로 부르고 있다.

대부분 중국 남부 출신들이었다. 취안저우(泉州), 하이난(海南) 등이 그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들이 민남어(?南語)를 쓴다.

이들은 수가 많아지자 공동체를 형성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크고 확고한 세력이 됐다. 다른 종족과 결혼하는 일도 줄어들어 자기들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갔다. 페라나칸은 싱가포르 문화의 뿌리인 동시에 싱가포르 문화 자체인 것이다. 그들은 중국어보다 원주민어를 사용하는 등 어느 정도 토착 생활방식을 따랐다.

또한 가부장적인 중국인 남편의 영향으로 명절·예법·제사의례 등은 중국식으로, 음식·식기 등은 말레이식으로 하는 독특한 혼합문화가 생겨났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그들의 자녀를 서양으로 유학을 보내거나, 함께 무역업에 종사했다. 영어를 일찍 습득하고 서양문화를 접목시켰다.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했다. 17세기부터는 큰 세력이 됐다. 그들은 부유했고 인텔리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점령기에 큰 변화가 왔다. 집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모두 해체됐다.

최근 싱가포르는 사라져 가는 ‘페라나칸 문화’를 지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들의 뿌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차드로드, 에메랄드힐, 쿤셍로드 등지를 ‘페라나칸 문화보호구역’ 관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페라나칸 거주 공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페라나칸 주거공간의 탐방에 나섰다.

골목에 살짝 들어서니 ‘페라나칸 가옥’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하면서 여유 있어 보이는 집들이다.

동서양 문화가 섞인 독특한 가옥들이다. 파스텔 톤 가옥들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가득 찍었다. 집집마다 꽃과 나무가 있고, 건물에 장식된 타일조각도 너무 예쁘다. 정교한 조각장식, 각양각색의 타일, 꽃이 예쁘게 핀 화분 등으로 집집마다 예쁘게 꾸며져 있다. 형형색색 중국 고유의 화려함과 서구적 세련된 디자인에 말레이 전통문화도 깃들여 있다.

인근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쇼핑공간이면서 하나의 관광 명소여서 좋았다. 쇼핑이 여행의 목적인 사람은 이곳이 딱 이었다.

쇼핑 틈틈이 맛있는 것을 먹고 저녁때는 멋진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십 개의 대형 쇼핑몰도 모여 있다. 모두 규모가 커서 반나절은 계획을 잡아야 했다. 쇼핑 목록을 품목별로 정해 놓고 쇼핑하는 것이 좋다고 귀띔해 준다.

차이나타운만의 활기찬 시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대부분 저렴한 상품들이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페라나칸 레스토랑’. 음식에도 동서양의 맛이 가미돼 있어 세계의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음식도 융합…세계적인 ‘미식문화’ 발전

싱가포르 음식이 맛있는 이유도 페라나칸 음식문화에 있다.

요리를 잘하는 여성이 최고의 여성이었다. 때문에 요리에 정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락사(laksa), 미시암(mee siam), 나시 쿠닛(nasi kunyit), 퐁테(pongteh), 오탁오탁(otak otak), 쿠이 코치(kuih koci) 등이다. 싱가포르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중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싱가포르 여행 중 한 번쯤은 꼭 페라나칸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기에, 페라나칸 박물관 옆 ‘트루블루퀴진’이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입구에서부터 중국스러움이 느껴지는 식당이다.

곳곳에 페라나칸 문화가 스며있다. 작은 식기들부터 옛날에 사용한 주방기구들까지 볼 것들이 많다. 진열장을 들여다보니,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가격도 비싼 전통그릇이 진열돼 있다.

주문한 전통음식이 나왔다. 중국 음식 같기도, 말레이 음식 같기도 하다. 여러 나라의 고유 음식을 조화롭게 버무린 것이 특징이랄까!

바나나 꽃으로 만든 셀러드가 맛있었다. 자주 빛 꽃의 안에 들어있는 심지 같은 부분으로 조리를 한 것이다. 건나물처럼 살짝 말린 듯한 쫄깃한 맛이 나고 아삭하기도 했다. 쌉쌀한 맛에 씹히는 질감이 좋았다.

소스인 ‘삼발벨라찬’도 독특한 맛이다. 우리의 고추장 같다. 톡 쏘는 매운맛이면서도 깔끔한 맛이 좋다. 바삭한 새우에 매운 고추를 갈아 만든다고 한다.

스프도 맛있었다. 크랩과 치킨살 미트볼이 들어 있는 스프다. 국물이 진하고 담백했다

‘쿠이 코치’는 현미 찹쌀가루로 만든 피에 코코넛으로 만든 달콤한 소를 채우고, 바나나 잎을 사용하여 뿔 모양으로 감싸 만든 음식인데 먹을만 했다.

‘락사’는 일종의 싱가폴식 쌀국수였다. 신선한 해산물들이 많이 들어있다. 면은 통통하고 쫄깃했다. 코코넛 크림 육수에 레몬그라스 향이 진했다. 고소한 맛이다.

▶동서양 어우러진 독특한 혼합문화 형성

페라나칸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페라나칸 박물관’으로 갔다. 사람도 적고 조용해 구경하면서 산책하기에 좋았다.

특히, 페라나칸 인물사진 코너가 흥미를 끌었다. 2천500명 이상의 인물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싱가포르와 여러 동남아에서 사진촬영이 이뤄졌던 것들이었다.

특히 ‘페라나칸 여성의 사진’이 많았다. 논야(nonya, 중국인+말레이인 혼혈), 자위(Jawi, 아랍인+말레이인 혼혈), 치티(Chitty, 인도인+말레이인 혼혈) 등이 전시돼 있었다. 얼굴 윤곽과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와 종교, 생활풍습이 달라도 모두 싱가포르 국민이란 걸 보여주는 전시관이었다. 특히 ‘금발의 서양 여자분’에게 눈이 갔다.

이곳은 먼 태고 적부터 해상무역의 교차로에 있었다. 고대 여러 나라 무역상들이 이곳에 왔다.

그 중에는 먼 북유럽에서 온 상인들까지도 있었다. 그들 상인들은 얼마간 머무는 동안, 현지 여인들과 결혼을 했고, 그들의 후손은 페라나칸이 돼 공동체를 형성했고 싱가포르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17세기부터는 큰 세력이 되었고, 오늘날 싱가포르 건국의 밑바탕이 됐다.

한켠에 있는 페라나칸들의 독특한 ‘결혼 예물’들을 보니 신기했다. 동서양 좋은 풍습은 다 모아놓은 느낌이다. 여자(뇨냐) 의상은 혼합문화가 정체성 이었다. 몸에 달라붙는 사롱(sarong)을 입고, 고대 아랍 남자들이 입는 앞이 터진 긴 옷에서 유래된 듯한 느슨하고 긴 소매 달린 웃옷인 크바야(kebaya)를 걸쳐 입는데, 유럽풍이 가미돼 독특한 의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특별한 날에 이처럼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는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싱가포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 관광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라나칸은 그들 특유의 문화, 음식, 주택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싱가포르인들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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