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4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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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꽃을 닮은 사람들 수필 오희숙

  • 입력날짜 : 2018. 07.30. 19:27
그 할머님과는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깝게 살았다. 인터넷을 통해 살기 좋은 곳을 찾다가 우리 마을에 오신 분이다.

할머님은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계시지만, 건강하고 조용한 성품에 독서를 즐겨하신, 장차 나의 모습이길 바라는 이상형이셨다.

좋은 글귀를 담아 전해드린 한 장의 프린트 물에도 기뻐하셨고, 때론 감동스런 대목을 읽어 드릴 때면, 다소곳이 듣는 모습이 그렇게 고우셨다. 텃밭에서 일이라도 하면 어떻게 아셨는지 자녀들이 보내온 귀한 것도 아낌없이 챙겨 오셨지만, 무엇보다 제일 먼저 건네주신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은 언제나 처음처럼 나를 행복하게 했다.

고추 가지 토란 콩 등 푸성귀로 무성한 텃밭 돌담위에 새참이 차려지고, 이웃 사람들까지 집에서 하나씩 들고 나온 먹을거리로 상차림은 금세 푸짐해 진다. 서로의 안부가 오고갔던 텃밭 모임은 그렇게 유월의 나무처럼 푸르기만 했다. 텃밭에 설 때마다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님이 속이 불편하다며 식사를 거르시자, 죽을 쑤어 드리면 그런대로 잡수셨다. 병원에도 다녀오셨으니 금방 나으시려니 했다. 하지만 입 퇴원이 반복되고 자녀들의 극진한 정성에도 별 차도가 없었다. 나는 그 무렵 “이웃집 할머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갑자기 일어난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할머님께 드릴 뭔가는 그것 밖에 없었다. 그 수필이 실린 책을 들고 병문안을 갔을 때, 볏짚처럼 야위신 할머니는 겨우 몸을 가누시며 나를 반기셨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뭉클하게 솟구친 눈물을 감추며 그저 얼굴만 대할 뿐, 그 어떤 위로의 말씀도 드릴 수 없었다. 꼭 껴안을 수도 없는 가냘픈 어깨에서 영원한 이별이 느껴졌다. 그 며칠 후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집 문지방 위에 걸려 있던 사진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굳게 닫혀져 있었던 대문이 활짝 열렸다. 돌아가신 할머님의 자녀들이, 비워져 있는 어머님의 집을 손질하기 위해 온 것이다.

분기별로 정해진 날이면 한 번도 거르는 일 없이 이번에도 전원 참석했다. 의정부 안산 여수 전주, 먼 길의 피로도 잊은 채 아들과 사위들은 마당에 자갈을 들여다 깔고, 딸들과 며느리는 장롱안의 이부자리 꺼내 말리느라 바쁘다. 그동안 부쩍 커버린 손자 손녀들도 엄마 아빠를 돕는 솜씨가 제법 어른스럽다. 조용하기만 했던 집안에 훈훈한 사랑의 꽃이 피더니, 풀밭이었던 화단도 깔끔한 옛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디 한 곳 서운한 데가 없으니 사람의 손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서로 손바닥에 생긴 물집을 자랑하며 오랜만에 큰일 한번 잘했다고 시끌 벅적이다. 환한 모습들이 정말 보기 좋다. 이런 모습을 할머니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항상 형제모임을 가장 큰 행사로 삼고 있는 두터운 우애를 볼 때마다 할머님이 더욱 보고 싶어진다. 결코 흔하지 않을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족모임만은 최우선이라니 보기에도 뿌듯하고 고맙다.

“이모! 못 뵙고 갑니다.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할머님의 자녀들이 떠나면서 보낸 문자다. 아예 나의 호칭은 오래 전부터 이모로 통한다. 할머님은 외동따님으로 자매가 없으셨으니 이 또한 운명일지. 이렇듯 애틋한 인연이 또 있을까. 함께 나눈 즐겁고 유익했던 시간들도 못내 아쉬운가 보다.

자녀들이 떠난 할머님의 빈집을 둘러본다. 대문 앞부터 깨끗하다. 쓸어낸다 하면서도 미쳐 치우지 못 했던 나뭇잎들이 하나도 없다. 마당에 두툼하게 깔린 자갈들은 주인의 성품인 양 정갈하다. 이 광경을 할머님이 보셨더라면 얼마나 오져하실까.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 나오실 것만 같은데 기척이 없다. 할머님이 심어 놓은 무성한 더덕 줄기에, 많은 꽃들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나란히 앉아 손톱에 꽃물들이던 봉선화도 참 곱다. 어느 절에서 받아온 씨앗이라며 나에게도 나눠 주셨던 봉선화는 해마다 저절로 피었다 지고, 사람보다 질긴 생명력으로 빈 집을 지키고 있다. 생전에 꽃을 좋아하셨으니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 보셨을 꽃들이다. 그날의 할머님처럼 그 자리에 앉아 그분이 되어 본다. 이상하게 먼 여행에서 돌아온 듯 편안하다. 생과 사가 종이 한 장만 같다. 흔히들 말하는 삶의 무게라는 것도, 멀고도 먼 하늘 가는 길도 …

할머님의 텃밭에 옥수수가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이 옥수수들이 긴 수염 늘어뜨리며, 업고 안고 배불뚝이로 익어갈 때쯤 형제들은 또 모일 것이다. 야근을 하고 새벽에 도착했던 막내 사위는 유난히 옥수수를 좋아 한다니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나중에 추비라도 한줌 뿌려 줘야겠다.

꽃을 닮은 사람들이 실컷 먹을 수 있도록!


<약력> ‘문예사조’ 수필, ‘한국아동문학연구회’ 동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광주수필문학회 회원, 한국아동문학회 회원, 동시수필 묶음집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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