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1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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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의 기막힌 이 맛일랑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86)

  • 입력날짜 : 2018. 08.07. 18:43
偶題(우제)
태재 유방선

볏 집을 곱게 엮어 지붕을 이으면서
대나무 심어 놓고 울타리 삼았다네
해마다 산중의 맛일랑 알만하네 갈수록.
結茅仍補屋 種竹孤爲籬
결모잉보옥 종죽고위리
多少山中味 年年獨自知
다소산중미 연년독자지

시인의 시상은 방안에 앉아 있어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물을 보면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잘 비벼놓아야 한다. 그러면 내(川)가 되고 강(江)이 되는 작품이 된다. 그러다 보면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우제(偶題) 또는 무제(無題)를 붙이는 수가 많았다. 산에 사는 맛이 제재(題材)가 됐으니 그 맛은 ‘참맛’이었으리라. ‘띠를 엮어서 지붕의 이엉을 이고, 대를 심어서 대나무 울을 엮어 삼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의 기막힌 이 맛일랑’(偶題)으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1388-144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다. 1409년 문망에 걸려 영양에 유배돼 서당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1415년 사면돼 원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정배된 후 1427년(세종 9) 유일로 천거해 주부 등의 벼슬을 내렸으나 더는 나가지 않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띠를 엮어서 지붕의 이엉을 이고 / 대를 심어서 대나무 울을 엮어 삼는다네 // 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의 기막힌 이 맛일랑 / 시간이 갈수록 알만하지 않겠는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뜻하지 않게 제목을 놓다 / 산에 사는 맛]으로 번역된다.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시제를 하나 더 붙였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시제를 붙이면서 시상을 일으키는 수가 있는가 하면 뜻하는 않게 제목을 붙여 시심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시인은 이엉을 이고 울을 삼았던 경험을 되살리면서 시심의 문을 두드리는 시적 지향 세계를 맛보려고 했다. 띠 풀을 엮어 지붕의 이엉을 이고, 대를 심어서 대나무 울을 엮어 삼았다는 시상이다. 체험에 의한 선경의 밑그림이다. 자연 뿐만 아니라 때로는 경험에 의한 주제가 좋은 경치구(景致句)가 되는 수가 많다.

화자는 산중에서 무슨 낙이 있어 살고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리저리한 일로 그 맛들이 감칠맛 났음을 시적 그물에 잘 일구고 있다. ‘이렇게 꽤나 한가하기만 한 산중에서 있는 기막힌 이 맛일랑, 모두가 시간이 갈수록 알만하지 않겠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이다. 딱히 누구에게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대답을 해 줄만한 사람도 없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나마 이해했으면 된다]는 한 소망을 담았을 것이다.

※한자와 어구

結茅: 띠를 엮다. 띠를 묶다. 仍: 이에. 곧 이어서. 補屋: 지붕을 보수하다. 지붕의 이엉을 덮다. 種竹: 대나무를 심다. 孤: 외롭게. 爲籬: 울타리를 삼다. // 多少: 다소, 혹은 꽤나. 山中味: 산중의 맛. 年年: 해마다. 獨自知: 홀로 스스로 알다. 스스로 터득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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