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9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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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잊힌 벗 문방사우 수필 김종훈

  • 입력날짜 : 2018. 09.10. 19:01
내 인생에 있어 문방사우(文房四友)는 나의 오랜 친구 이자 청념의 발원이요 봉사정신의 길이었다고 자화자찬을 하면 남들이 웃을까.

나의 졸필이 바깥세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5.16 군사정변이 발발하던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6개항의 혁명 공약을 선포하고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마을에 공약전문(6개항)을 써 붙이도록 했는데 ‘글을 페인트로 써야 하는데 자네 말고 누가 쓰겠는가’ 하는 연로하신 이장님의 부탁을 거역할 수 없어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함석판에 도색하는 거야 별거 아니지만 페인트로 글 쓰기란 장난이 아니었다. 붓 끝이 뭉뚝 뭉뚝 엉키는 데 글발이 받질 않는다. 뻣뻣한 몽당 붓을 다시 구해 와야만 했다.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고 한획 한획 그림 그리듯 그려야만 했다. 지금 세어보니 281글자, 페인트로 그리기엔 너무 곤혹스럽고 지루했던 며칠이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훌쩍 지나간 6년의 세월, 군 복무까지 마치고 스물 다섯 되던 해 공무원이 되어 고향 승주군청으로 첫 발령을 받았는데 당시 직원 중 붓글씨라고 쓰는 이는 없었고 흉내라도 낼 줄 아는 사람이 신입인 나와 나중에 들어 온 J둘뿐이었다.

실과(室課)마다 대민 업무가 많다보니 임명장, 표창장, 각종 표찰이나 문서 표지 등 붓으로 써야할 요인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게다가 가훈을 써달라거나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등 성서(聖書) 전문까지 부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갸륵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써드렸다.

1984년 당시 승주군에서는 먼 훗날까지를 바라보는 기념사업으로 마을이름 표지석을 군내 전역에 세웠다. 전국 최초였다. 마을 이름은 한글로 쓰되 순천시내의 서예 학원가와 군청 내 필력있는 희망자의 견본 작품을 받아 심사키로 했으나 썩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 희망하지도 않은 내 일이 되었다.

어쩌겠는가. 무릇 공직자는 자기의 안위만을 위한 몸이 아니다. 또 언제 이런 기회가 나에게 찾아 오겠는가! 495개 마을 검은 돌에 새겨진 1980여 글자가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갈지 모르지만 승주군 일대에 나의 그림자처럼 심어 둘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평소 내가 갈망했던 나의 길이고 봉사의 길이었다.

한 때는 종이, 붓, 먹, 벼루 이 넷을 책상머리에 모셔놓고 그것이 나의 본업인양 나의 천직인양 글줄을 써 내려 갔던 때가 있었다. 하루라도 빠질세라 먹을 갈고 붓을 들고 화선지 펼쳐가며 네일 내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써 내렸던 나의 일필휘지(一筆揮之)는 왜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을 친구삼아 마음을 수양하고 덕을 쌓아갈 수 있었다는데 후회는 없다.


<약력> 순천 출생, 광주문인협회 이사, 대한문학·광주시인협회·무진주수필문학 회원, 전 전남지방공무원교육원 교수(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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