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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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텃밭이 있는 집 수필 박용서

  • 입력날짜 : 2018. 10.01. 18:58
29년간 살던 우리 집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아파트 생활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지만 단독주택만을 고집하는 아내는 땅값이 다소 올랐을 때 집을 팔고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을 마련하자고 했다. 나와 상충한 의견이었지만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정든 집을 팔고 새집을 구하러 쏘다녔다.

집값은 예상보다 훨씬 상승해 있었고 3, 40년이 넘는 낡은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세에 어두운 나머지 살던 집을 헐값에 팔아 버린 것을 뒤늦게 알아 속상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을 저질러버린 아내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조심스러웠고 말을 아꼈다. 어떤 집은 아내가 반대했고, 어떤 것은 내 맘에 들지 않았다. 평소에 그래왔듯 좋든 싫든 간에 나의 어떤 소신은 아내의 고집스러움 앞에 번번이 무산돼버리지만 이번만큼은 무작정 아내의 뜻에 따라갈 수만 없는 일이다. 우리 생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소중한 안식처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곽으로 나가지 않는 한 텃밭이 있는 집이 어디 있을까.

이곳저곳 집들을 보러 다니다 보니 넘고 쳐져 심신이 지쳐있을 무렵에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가 원하는 그런 집이 오늘 나왔다며 빨리 와 보란다. 황망히 가보니 아닌 게 아니라 첫눈에 맘이 쏠렸다. 아내도 내 손에 힘을 주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신축한 지 13년 된 집인데 대지가 64평이다. 도심에 그런 집이 있다는 게 기이할 정도였다. 아내가 평상시 원했던 황토집이고 리모델링된 반면 아파트식의 내부와 넓진 않지만 양지바른 곳에 5평 남짓한 텃밭이 있었다. 싸게 나온 집이라며 매도자가 원한 금액에서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는 중개업자의 완강함에 그대로 계약하고 말았다. 소개받고 사흘 만이다. 이 집 주인도 우리처럼 시세를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혹시 알 수 없는 흠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닐까 해서 계약하기 전, 늦은 저녁 시간이나 이른 아침에도 집 안팎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전 등기가 끝나 건물을 인도받고 나서부터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혀 손 볼 데 없다던 아내가 욕심이 생겨 건물 뼈대만 놔두고 모두 고쳐 더 좋은 집으로 꾸며 보자는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아직은 깨끗하고 멀쩡한 것들까지 그 대상이다. 집을 사자마자 의견충돌은 피하고자 묵인하기로 했으나 과욕이고 낭비인 것만 같았다.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조용한 시간에 “앞으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소.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당신이 말했잖소. 병들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몸, 그간이라도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으니 그냥 따라주면 안 되겠소?” 한다. 가슴이 찡하게 울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그까짓 돈이 문젠가 싶었다. 그 후부터는 아내의 주도적인 작업 시행에 토를 달지 않고 따르다보니 미쳐 삭혀 내지 못한 부분이 곳곳에서 삐져나와 힘들기도 했다. 꽤 오랫동안 새집 짓듯 고쳐 나갔다. 황토집이면 그냥 좋은 줄로 알았는데 수리하다 보니 그렇지 않았다. 벽은 버석버석 흙 부스러기가 떨어져 도배할 수도 없고 방과 거실의 고르지 않은 황토 바닥엔 습기 때문에 신제품 마루를 깔 수가 없었다. 결국, 건물 내의 바닥 전체를 긁어내고 시멘트를 발라 바닥을 만들었다. 신소재 보일러 배선과 기존 붙박이장도 철거한 뒤 전체 벽면에 각목을 대고 석고 보드를 깔았다. 마당의 타일까지 모두 교체했다. 허물고 새로 하다 보니 이중 일이다. 성가신 일을 일러 ‘헌 집 고치기’라더니 이것저것 일감이 늘어나 새집 짓는 편이 수월하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우리 맘에 맞는 재료나 색깔로 해놓으니 산뜻하고 좋긴 했으나 반면에 오히려 비싼 집이 되고 말았다.

집수리가 끝나자 이삿짐을 날랐다. 늘그막에 해보는 이사는 각별함이었다. 낯선 환경에 대한 기대와 행복감에 설레기도 했다. 웬만한 물건들은 버리고 가자던 아내는 거의 버리지 못한 채 모두 들고 나섰다. 살림살이가 이토록 많았는지 차고 넘쳐났다. 장롱, 냉동고, 침대, TV거치대 등 새 가구도 들여와 물건들을 제 자리에 정리하고 보니 나 역시 맘에 들어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과욕을 부린다며 불편한 내색을 보인 점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당신 생각대로 한 것이 옳았고 잘 된 것 같소. 수고 많았소.” 하자 “내 말만 들으면 나쁠 것 하나도 없어요.”한다. 삶의 환경을 바꿔 본다는 일은 나른함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인데 아내의 지병인 기관지천식의 급박한 발작 때문에 전대병원 응급실이 가깝다는 이유로 29년 동안 한 집에서만 살아왔으니!

이제 이사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어렵게 여겼지만, 대문 앞에 주차도 무난했다. 곡성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밭갈이하며 유유자적 생활하고 있는 오랜 친구가 텃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끙끙대며 퇴비 몇 포를 갖다 주었다. 고마웠다. 흙을 갈아엎고 골을 내어 살포한 퇴비 덕분인지 어느새 싱그럽게 자란 채소들이 반긴다. 아침저녁으로 코딱지만 한 텃밭 주변을 맴돌며 풀을 뽑고 물을 주는 아내의 모습이 어린애처럼 귀엽기도 하지만 짠한 마음에 가슴 저며 왔다. 만성지병의 고통과 뇌종양수술 후유증 등 온갖 질병의 무거운 짐을 텃밭에 묻어 버리고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건강과 행복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한다. 요즘에 그는 자주 ‘내가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를 돼 뇌곤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이날까지 수많은 시간을 아내의 지병에 맞춰 수발해 왔지만, 이사를 계기 삼아 앞으로 어떤 일에서건 하고자 하는 일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며 살려고 한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더 고급스럽고 좋은 것으로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약 력> 나주 출생, 조선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조선이공대학교 정년, ‘문학춘추’ 수필등단(2017), 문학춘추 작가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共著 ‘木理로 가는 길’ 1, 2집, 현 무진주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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