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8일(일요일)
홈 >> 특집 > 광주문인협회 문학마당

[문학마당] 소나기 단상 수필 조자영

  • 입력날짜 : 2018. 10.29. 18:35
우르르, 한바탕 소낙비가 내린다.

한 달여 최악의 폭염 가운데 찾아온 반가운 손님. 하지만, 길 위에서 속절없이 당하는 누군가에게는 무례한 불청객이다.

폐지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이 미처 피할 새 없이 흠뻑 젖고 말았다. 노쇠한 데다 젖어 무거워진 그의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보인다. 비를 한껏 먹은 종이박스들을 실은 수레가 모진 풍파에도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무게다. 오늘은 폐지를 사들이는 고물상 주인이 눈 딱 감고 꼭 저 소나기의 무게를 덤으로 얹어 값을 쳐준다면 참 좋겠다.

거센 빗줄기 속을 느릿느릿 한 점으로 사라져가는 노인의 뒷모습에 엉금엉금 기어가는 두꺼비 한 마리가 오버랩 된다. 처마 끝에서 줄줄이 내리는 물줄기는 어느새 옛 기억을 톺으며 훌쩍 그날로 데려다 놓는다.

어릴 적, 한바탕 소나기는 반가운 임과 같았다. 아버지도 그 비엔 일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쇠고집조차도 옴짝달싹 못 하도록 발을 묶어놓는 박력 넘치는 그 작달비가 나는 좋았다. 곧 쨍쨍한 햇살이 번져 올 것을 알기에 짧게 조우하는 그 시간은 귀하기만 했다.

후드득 비꽃이 일기 시작하면 훅 끼쳐오는 흙내가 좋았다. 흙내는 빗물과 섞이며 비 냄새가 되었다. 그 비 냄새는 엄마의 양수처럼 나를 편안케 했다. 그때 장독대 쪽에서 홀연히 나타나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두꺼비 한 마리. 그 둔한 두꺼비 걸음을 따라가며 난 오롯이 장대비를 맞았다. 내리꽂는 비도 아버지의 눈총도 아프지 않았다. 모진 빗줄기에도 덤벙대지 않고 의연한 두꺼비의 모습이 동요하지 않고 외길을 가는 수행자 같아서 그저 좋을 뿐이었다.

마당 귀퉁이에선 흙물을 뒤집어쓴 다알리아가 바닥을 향해 조아리고 있었다. 지은 죄 하나 없는 머리 큰 그 꽃의 어수선한 얼굴이 못내 가여웠다. 지금 생각하니 꽃은 고갱이가 꺾여 사위는 중이었다. 그 여름도 함께 기울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나는 여전히 비를 사랑한다. 소나기, 시방 억수로 쏟아지는 이 비가 세상 모든 이를 편안케 하기를 바라고 바란다.


<약력> ‘대한문학’ 등단, 광주문인협회 회원,

‘목요 에세이’ 주간.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