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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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충남 서천 봉선지 물버들길
풍요롭고 고요한 가을 호반길을 걷다

  • 입력날짜 : 2018. 11.06. 19:06
충남 서천 봉선지물버들길을 걷다보면 저수지 주변의 황금빛 농경지를 지나곤 한다. 구불구불한 농로와 노랗게 물든 들판이 소박하면서도 충만하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여러 번 만나다보면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동서천IC를 빠져나와 충남 서천군 한산면으로 가는 도로가 낯익게 느껴지는 것도 몇 차례 이 길을 지났기 때문이다. 낮은 산과 부드러운 산줄기에 둘러싸인 한산면은 일찍이 세모시와 소곡주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과거 모시옷은 여름철 깨끗하고 청초함을 자랑하던 고급 옷이었다. 한산면 특산품인 소곡주는 백제시대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유명한 술이었다. 2년 전 한산모시관 앞 식당에서 처음으로 소곡주 맛을 본 나는 달짝지근하면서도 묵직한 술맛에 반해버렸다.

한산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61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니 서천군 마산면이 나온다. 마산면소재지를 지나자 얕은 야산에 둘러싸인 봉선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드러운 산과 잔잔한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포근해진다. 봉선지 주변에는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공원과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봉선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봉선지 물버들길’이 그것이다.
호반의 논에서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활짝 핀 갈대는 쓸쓸한 가을정취를 풍겨준다.

벽오리에 있는 물버들 방문자센터로 들어서니 ‘서천 봉선지 물버들길’ 안내판이 길안내를 자처한다. 방문자센터 앞에 서서 봉선저수지를 바라본다. 가을하늘이 높고 저수지는 푸르다. 저수지 주변의 낮은 야산이 부드러움을 더해주고, 주변 논에서는 벼가 풍요롭게 익어간다. 물가에는 여러 종류의 수초들이 습지를 이루고, 수초 위에서 왜가리 몇 마리가 한적하게 노닐고 있다. 봉선지에는 사철 다양한 새들이 찾아든다. 특히 10월 말에서 11월 초순에 찾아오는 가창오리는 3월 이동할 때까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호숫가 임도는 호젓하고 고즈넉하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저수지는 낮은 산자락을 따라 형성돼 있어 한눈에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 볼 때 조그마한 저수지로 생각됐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이른 아침 물안개 낀 모습이 아름답다는데, 오늘은 안개가 없어 아쉽다.

호숫가에 자리를 잡은 마을들이 야산에 기대어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내 마음에도 평화가 깃든다. 고요한 호반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작은 마을을 만나고, 마을에서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야리 마을 앞을 지나 잠시 613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도로를 따라 작은 언덕을 넘으니 야산 사이에 형성된 논이 황금빛 물결로 출렁인다. 구불구불한 농로와 노랗게 물든 들판이 소박하면서도 충만하다. 하늘이 내려준 비와 햇빛을 받아 맺은 열매이기에 벼의 낱알 하나하나에는 우주의 기운이 스며있다.
봉선지에는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고, 데크다리도 만들어져 있다. 데크다리를 따라 걸을 때는 물위를 걷는 것 같다.

저수지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버드나무는 물속에서도 살아가는 대표적인 수종으로 호숫가나 시냇가에서 자생한다. ‘봉선지 물버들길’도 산책로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삼월리를 지나 자동차도로를 따라 걷는데, 길가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다. 이맘때 봉선지 물버들길을 걷다보면 입을 짝 벌린 밤송이와 땅에 떨어진 알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밤은 주렁주렁 매달린 감과 함께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삼월리에서 봉선지 제방으로 가는 도로를 걷다보니 북쪽으로 길게 뻗은 저수지의 모습이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봉선지를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봉선지 제방 옆 작은 봉우리에 있는 부엉바위가 가깝게 다가온다. 옛날 저 산꼭대기에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에서 부엉이가 살았다 해서 ‘부엉바위’라 불렸다.

저수지 제방을 따라 걷는데 둑 아래로 경지 정리된 네모반듯한 논들이 황금빛을 이룬다.

충남 서천군 마산면과 시초면 사이에 위치한 봉선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일제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금강하구에 간척사업을 벌여 1924년 옥남방조제를 만들었다.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논의 농업용수를 확보하려고 1926년 길산천 상류에 저수지를 축조한 것이 오늘의 봉선지다.
벽오리 길가 무인가게에는 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농작물을 소포장해 진열해 놓았고, 가격까지 매겨놓았다.

저수지가 생기면서 많은 마을과 농경지가 물에 잠겼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봉선지는 마치 천연호수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이리하여 봉선지는 봄이면 물버들과 야생화들이 어우러지고, 가을이면 물안개 그윽하고, 겨울철에는 철새의 군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호수가 됐다. 여기에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는 걷기 좋은 길까지 만들어졌으니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몇 군데 자동차도로를 걸어야 하는 곳도 있지만, 그것은 옥에 티 정도로 삼아도 될 듯하다.

제방을 건너 임도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그윽하고 고요하다. 시초면 봉선리를 만난다. 봉선지라는 이름도 이곳 봉선리에서 비롯되었다. 봉선리는 저수지 주변가옥들로 작은 농경지를 지닌 호반마을이다. 호반의 논에서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간다. 활짝 핀 갈대는 쓸쓸한 가을정취를 풍겨주고, 풀밭에서는 메뚜기들이 곡예를 한다. 나는 들판의 풍요로움과 쓸쓸한 듯 우아한 단풍, 억새가 있는 가을이 좋다. 여기에 높고 푸른 하늘까지 더해지니 몸과 마음이 살찌지 않을 수 없다.

길은 띄엄띄엄 한 채씩 있는 민가를 지나기도 하고, 논과 밭을 곁에 두고 가기도 한다. 민가나 농경지 아래로는 봉선저수지의 물결이 잔잔하고 고요하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갈산천을 건너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신봉리다. 신봉리에도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고, 길은 생태공원을 따라 봉선지 데크다리로 이어진다.

데크를 따라 걷는데 마치 물위를 걷는 것 같다. 상류지역이라 주변은 푸른 수초가 덮여 넓은 습지를 이룬다. 물 위에서 숲을 이룬 버드나무들이 봉선지의 매력을 더해준다. 물위 데크를 지나 호수변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다정한 사람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정다운 길은 같이 걷는 사람과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

출발했던 벽오리 앞 도로에 도착하니 길가에서 무인가게가 기다리고 있다.

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농작물을 소포장해 진열해 놓았고, 가격까지 매겨놓았다. 옆에 놓인 금고에 돈을 넣고 가져가는 ‘양심가게’다. 봉선지를 한 바퀴 돌아 출발했던 원점에 도착했다. 벽오리 마을 앞에서는 노란 물결이 출렁이고, 봉선지에서는 푸른 호수가 잔잔하다. 풍요롭고 평화롭다.


※여행쪽지
▶서천 봉선지 물버들길은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황금물결 출렁이며, 겨울에는 철새가 군무를 하는, 아름다운 봉선저수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코스 : 벽오리 물버들 방문자센터→소야리→삼월리→부엉바위→봉선리→후암리→벽오리(12.5㎞, 3시간 15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충남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봉선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한산면소재지와 한산모시관 근처에 식당이 많다. 보신정(041-953-7769)의 묵은지 닭도리탕, 산성회관(041-951-5161)의 영양돌솥밥·오리주물럭에 소곡주를 반주 삼아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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