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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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거요? 아무것도 없어요!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8. 11.07. 19:43
11월3일이 무슨 날? ‘학생의 날’이다.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학생들에게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1953년 10월 20일 제16차 임시국회에서 국회발의로, 1929년의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학생의날은 광주와 연관이 깊은 국가기념일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대된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1929년 10월 30일 전라남도 나주로 가는 통학 열차 안에서 광주중학 3학년 후쿠다 슈조 등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고보 3학년 박기옥 등을 희롱하였고 이를 보고 분노한 박기옥의 사촌 동생인 박춘재 등과 충돌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11월 3일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서 가두시위를 한 사건이다. 이 시위를 시발점으로 당시 전국 중등학교 이상급의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 총 8만9000여 명 중 약 60%인 5만 4000여 명의 학생(194개 학교)이 시위나 동맹휴교를 벌이는 등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퍼졌다. 광주에서 시작되어 점차 전국으로 확대된 운동은 1929년 11월 3일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 약 5개월에 걸쳐 계속되었다. 195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이 건립되었으며, 1967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회관이 건립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11월3일 학생의날을 맞아 광주에서 대규모 기념식이 열리는 시간에 서울에서 전국 각지의 여중고생들 모여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며 시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른바 학교 안에서 벌어진 미투운동, ‘스쿨미투’를 고발하는 집회를 연 전국의 중·고교 여학생모임 등 30여개 단체는 여학생의 인권을 소리높여 외쳤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제까지 여성을 위한 학교, 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었다’며 ‘학교에서 여학생은 출석번호 앞번호가 아니라 뒷번호로 불리고 운동장 전체를 누리지 못하며 남성의 부수적 존재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섬뜩했다. 1929년 11월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일본남학생이 조선여학생을 성희롱 한 것으로부터 촉발됐다. 89년후 이를 기념하는 날, 대한민국 여학생들은 스쿨미투 고발을 통해 여학생의 일상이 얼마나 차별, 혐오, 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생들이 스쿨미투에서 고발한 것은 ‘일부 교사의 비상식적 만행’이 아니라 성폭력이 상식이 돼버린 학교 현장을 얘기하고 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강점한 일본이 우리 백성에게 가한 갑질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10대 일본남학생이 조선여학생을 통학길에 성희롱했겠는가. 그에 항거한 날을 기념하는 ‘학생의 날’에 우리 여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폭력으로부터 제발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스쿨미투’는 지난 4월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이 학내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며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200여일이 지나는 동안 전국 69개 중·고등학교에서 스쿨미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재발방지 대책은커녕 피해자 보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광주에서도 스쿨 미투가 잇따라 수사가 진행중이다.

학부모들이 스쿨미투 처리 과정을 보면서 하소연하는 것은 조사 과정에서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대한 논의조차 시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폭력 가해 교사 10명 중 4명이 여전히 교단에 서 있다. 교육청 조사도 고발이 된 학교, 내용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진행된다. 학내 성평등 문제,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1월3일 서울에 모여 #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를 외친 여학생들은 ‘교사들이 예쁜 학생은 무릎에 앉히고 수행평가 만점 주겠다, 여자는 쭉쭉빵빵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가족보다 더 신뢰하던 교사한테 성추행과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 나는 거기서 계속 생활하려면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고 고발했다. ‘너희는 내 앞에서 자면 안 된다. 나는 남자고 여자가 남자 앞에서 자는 건 잡아먹으라는 이야기다’라는 고발내용도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이 스쿨미투를 제보한 65개교 가운데 전수조사를 시행한 학교는 27개교에 불과했다. 일부 사립학교는 성범죄 교사 징계 권고도 수용하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교실을 뛰쳐나와 학교 밖에서 스쿨미투를 외치는 이유다. 이날 여학생들은 ‘스쿨미투는 끝나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의 이야기는 교실 안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교문을 벗어나 세상을 바꿀 것이다’고 외쳤다. 이들의 목소리를 정말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라도 교육·사법 당국과 학교는 학생들의 요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학내 성폭력 실태조사, 재발 방지책, 피해학생보호와 양성평등문화 확산방안 등 학생들이 수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학내 구성원 전원에게 정기적인 페미니즘 교육을 시행하고, 학내 성폭력 전국 실태조사, 2차 가해 중단, 성별 이분법에 따른 학생 구분·차별 금지 등 민주적 학교 조성을 모색해야 한다.

11월3일 학생의 날에 한 여학생이 온 국민에게 말한다. ‘변한 거요? 아무것도 없어요. 가해 선생님 한 명 해고되고 말겠죠’ 1929년 나주 통학길에 일본학생에게 희롱당한 그분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그분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변한거요? 아무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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